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인 Jun 30. 2023

나를 싫어하던 카페 매니저님의 마음을 얻은 비결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완전히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 있을까? 아주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약속시간을 어기는 일일 것이다. 특히 공적인 만남에서 약속시간을 어기는 일은 그날의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겠다는 뜻과 같을 수도 있다.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 후 첫 출근날의 내 상황이 그러했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절대 변명할 수 없이 첫 출근에 늦는다는 것은 제대로 찍혀버리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더군다나 그 카페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었고, 그만두면서 나를 추천해 준 상황이었다. 나는 카페에서 한 번도 일을 해본 적 없었지만, 성실하니 믿고 채용해도 된다고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줬다. 친구는 내게 매니저님이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절대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줬다.


출근 시간은 꼭 지키자고 굳게 다짐하고 있었으나 하늘의 장난은 너무나도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첫 출근 전날에 어떠한 급한 일이 생겼고, 왜 하필 밤을 새워야만 했으며, 왜 하필 부랴부랴 택시를 탔는데도 길은 그렇게 막혔던지.. 모든 것들이 나를 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물론 자기 합리화이자 핑계일 뿐인걸 안다.)


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대로 찍혀버렸다. 그리고 매니저님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앞으로의 가시밭길이 4D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울 수 없는 이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온몸에 긴장을 하고, 모든 것에 집중하여 임했다. 하지만 너무 잘하려는 긴장은 대부분 원하는 바와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젊음의 열정과 어리숙함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가까이서는 꽤나 꼴불견이어 보이는 상황도 많다.


5번 열심히 하고 잘하다가 1번 큰 사고를 친다. 고객들 앞에서 유리컵을 깬다거나, 헤이즐럿 시럽을 요청한 고객에게 시나몬 가루 폭탄을 건네드리기도 했다. 한번 실수로 긴장, 긴장해서 열심히, 그러다 다시 실수, 또 긴장.. 매 순간이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휴.. 이래서 남자 아르바이트를 안 뽑으려던 건데...

매니저님은 아예 들으라는 듯한 크기로 한숨 섞인 하소연을 하셨다. 그때 나에게는 2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적응하느냐, 도태되느냐.. 그리고 나는 '그래도 친구가 믿고 추천해 준 건데 적응해 보자'라는 선택을 하였다.


우선 예전처럼 계속 긴장만 하며 잘하려 해 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누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르바이트인데 뭘 그리 진지한 고민까지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세상 가장 큰 고민이었다. 왜냐하면 매번 아르바이트를 갈 때마다 까칠한 매니저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기왕 적응하기로 선택한 거 확실히 만회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카페에는 매니저님과 나 둘만 빼고는 전부 여자분들이었다. 우리 카페의 여자 직원분들은 확실히 손이 빠르고 섬세하고 고객들을 잘 상대했다. 매니저님이 남자를 잘 안 뽑으려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너무 일들을 다 잘했다. 나는 유일한 남자 직원이 나 한 명뿐이라는 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니저님은 나를 좀 시원찮게 보고 계시니, 다른 분들에게 점수를 얻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나는 슈퍼 보조가 되었다. 카페 내에 쓰레기 버리는 일, 창문 닦는 일, 힘쓰는 일은 모두 내가 도맡아 했다. 다른 사람이 궂은일을 하려 하면 내가 거의 뺏다시피 하여 이런 건 힘 좋은 내 일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그렇게 실수는 많이 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겨서일까? 여자 직원분들은 나를 많이 인정해 주었고, 매니저님께 내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날 너무 안 좋게 보지 말라고 오히려 매니저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매니저님이 내게 와서 "너 다른 아르바이트생들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라며 음모론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상황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적응되기 시작한 어느 날 매니저님과 둘이 일을 하던 날이었다. 칭찬을 잘 안 하시는 매니저님이 갑자기 말을 거셨다.


"그래도 너 보니 남자 아르바이트생 하나는 있어야 좋은 것 같다."


평소에는 까칠하신 매니저님께 이야기를 건넬 기회다 싶어 평소 좋아하는 라테아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그렇게 잘하실 수 있는지, 다른 커피숍 가도 이런 그림은 잘 못 봤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가식과 억지로 한 말은 아니었고, 약간만 과하게 표현했다.)


그 후 끊임없이 자기 자랑하는 말을 들어주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총 받는 일 보다야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날 나와 매니저님은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형 동생의 의리.. 까진 아니었지만 이후 나의 카페생활은 너무도 편안했다. 무엇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자존감 상승에도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학업으로 어쩔 수 없이 카페를 그만둘 때 매니저님은 진심으로 아쉬워하시고 나를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고난의 시작과 여러 우여곡절이 있던 나의 첫 카페 아르바이트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 같다. 그때의 커피 향이 지금까지도 기분 좋은 향기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싫어하던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커피를 만들어보며 느낀 교훈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는 무조건 좋다 나쁘다의 결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각자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진상 손님을 팬으로 만든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