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개월 11일, 이별의 과정
< 편두통 >
4년 하고도 3개월 10일의 연애과정을 한마디로 함축해 보자면, "편두통"으로 말할 수 있다.
이 걸 알면, 전에 만나던 사람이 슬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명하기 쉽게 전에 만나던 사람을 A라고 하겠다.
A의 우울증과 내 편협된 생각으로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그저 "사랑"이라는 약으로 잠시 잠재웠을지는 몰라도, 편두통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으니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정말 힘들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함께 우울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상상 못 할 고통이었을 거다.
사실 나도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은 척하며 그녀의 옆에서 있었던 것이 A를 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처럼 만들어 절벽 끝에 세웠다.
기둥처럼 단단하게 서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4년 간의 긴 싸움을 그녀가 끝냈고, 우리는 이제야 서로를 놓을 수 있었다.
2023년 1월의 뉴욕,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
< 도망 >
헤어진 직후 난, 바로 뉴욕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12박 13일 동안의 숙소를 예약하고, ESTA 비자신청과 회사에 휴원계를 작성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구입했다. 후지필름 X100V.
지금 생각해 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미국 땅으로 간다는 결정은 대담하면서도 살짝 돌아있었다.
그녀와 함께 힘들어할 때마다, 수없이 의문을 가졌었다.
아름다운 20대 청춘을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추운 밤공기, 공항에서 마저 나는 꾀죄죄한 지하철 냄새.
입국 심사대에서 세컨더리 룸으로 끌려가는 사람의 표정. 그 모든 순간들이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더 넓은 세상. 다양한 사람과 수많은 경험.
도파민 과다 분출로 내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건, 공항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깨달았다.
2023년 1월의 뉴욕, 타임스퀘어 부근
< 순응 >
우리 삶에서 이별은 필연적이다. 무에서 와 무로 돌아가는 것.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별이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결혼하자던 말을 하곤 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 혼자가 됐다.
되게 웃기고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 밖엔 없었다.
나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도, 머릿속에 있는 그녀를 괴롭힐 이유도 없다.
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느낀 점은 단 하나. "세상은 넓다"
2023년 2월의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 기념비
< 심리 상담 >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받아들여야 해요. 이별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는 걸.
상담. 심리 상담.
사실 상담을 받는다는 건 나에게는 꽤 무거운 주제였다.
이별의 아픔을 겪는 건 당연하고, 그럭저럭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용기 내봤다.
율무차는 따뜻했고, 미리 작성해 둔 내용 덕에 내 얘기가 길진 않았다.
내가 했던 말들이 귀결되는 종착진 "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요? "
돌아온 말은, " 그런 사람이시니까요 "
"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받아들여야 해요. 이별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이란 걸. "
이 말이 뭐라고, 그간의 설움이 씻겨나가는 듯했다.
2023년 2월의 뉴욕, 써밋 전망대 꼭대기
< Life >
이 글 초안을 적어두고 발행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못난 제 모습을 마주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꼭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도, 보통의 하루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파하고, 행복하고 그런 게 인생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사람의 글.
4년 3개월 10일, 연애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