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니홉 Jul 08. 2024

옆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 내가 선택한 헤어스타일은?

옆이랑 뒤를 훅 밀고 위에만 길게 남겨 묶은 '맨번스타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점점 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탱글탱글하던 피부가 탄력을 잃어, 아침에 자고 일어난 얼굴에 난 자국이 원상복구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몸에 난 털들이 점점 흰색으로 변해간다. 나는 사십 대가 되니 머리카락 중 옆 부분에서 흰머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했다. 콧 속에 코털과 수염이 하나 둘 하얗게 변했다. 아직 염색은 하기 싫은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머리 모양은 바로 '맨번스타일'이다. 외국 남자들이 주로 하던 머리인데, 옆과 뒤를 높게 밀고, 윗부분만 남겨서 한 줌 되는 그 머리카락을 묶어서 둔다. 조금은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이다.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이 할 법한 머리이다. 일반 직장인이나 공직자들이 그 머리를 하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볼 법한 머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닌다. 다행히 처음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낯설어 하지만, 조금 지내다 보면 나에게 잘 어울린다며 말해준다.


출처: 블로그, 전주신시가지감가현메이크업

  '맨번스타일'은 생각보다 편리하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말리지 않아도 된다. 머리에 있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헤어크림과 스프레이를 적당히 섞어 머리에 바른 후 빗질을 한다. 그리고 머리띠를 뒤쪽으로 높게 하고 아침에 할 일들을 한다. 아침을 먹고 옷을 입은 후, 머리카락을 묶는다. 머리를 묶을 때는 검정 고무줄을 사용한다. 머리를 빗으로 싹싹 빗어서 묶은 다음, 스프레이로 마무리한다. 이 머리는 머리카락이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듯, 머리를 말리는 수고가 없어서 좋다. 전체 모량은 머리 위쪽에 한 줌뿐이라.


  보통은 머리를 항상 묶고 다닌다. 머리카락을 풀면 단발머리처럼 된다. 그 모습을 나름 상상했었다. 슬램덩크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중 '정대만'을 혹시 아는가? 중학시절 MVP로 잘 나가던 슛터였는데, 고등학교 때 방황을 하며 머리를 기르고 다닌다. 단발머리처럼. 내가 머리를 기르면 '정대만'처럼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를 묶은 모습은 나름 볼 만하고 어울리는 듯하다. 하지만 머리를 풀어서 양갈래로 빗어 내리면, 너무나도 흉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봐도 참 흉하다. 그래서 보통 묶거나 머리띠를 항시하고 지낸다.


출처: 웹, bbs. ruliweb

  처음에는 '맨번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것이 나도 좀 어색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 머리를 계속 보는 듯하고,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머리를 계속 그렇게 하고 다니니, 이제는 별로 주변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한 번 의식을 한 적이 있다. 올해 초 학교를 옮기는 시점이 왔다. 새 학교에 가서 관리자에게 인사를 할 때 과연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볼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냥 보통의 아저씨처럼 상고머리로 바꿔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새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적이 있는 분이었고, 나의 이런 모습을 이해해 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이 머리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맨번 머리를 하고 다니면 사람들은 나를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옷을 잘 입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냥 있는 옷을 대충 입고 다닐 뿐이었다. 그런데 맨번 머리를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은 내가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다. 대충 아무 옷이나 걸쳐 입어도 '우와! 옷 입는 센스가 있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참 신기하다. 예전에도 같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때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래서 사람은 뚜껑이 중요한가 보다. 나의 뚜껑만 변했을 뿐인데, 나는 '패션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머리를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에 모양 잡을 때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 그 후에는 이발기를 사서 집에서 보석 같은 사람이 머리를 깎아 준다. 위에 있는 머리를 묶고, 옆과 뒤를 9mm로 밀고 난 다음, 가위로 살짝 정리하면 끝이다. 가끔 머리가 너무 길다 싶으면 기장을 조금 자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미용실 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물론 집에서 깎은 머리카락을 치우고 정리하는 수고가 있지만, 그렇게 돈을 아껴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을 수 있다.


  맨번 머리를 하고 난 다음,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나의 직업은 초등교사이다. 작년에는 5학년 담임을 맡았다. 별난 남자애들이 놀다가 사고를 쳐서, 불러 지도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심하게 야단을 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사실 나의 얼굴이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다. 친절한 초등교사의 얼굴과는 거리가 멀다. 그 얼굴에 맨번 머리가 합해져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그 후로 아이들에게 크게 야단을 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얼굴과 나의 머리스타일로 아이들을 지도하니 얼마나 좋은가!


  나의 머리카락은 가늘고 머리숱이 많은 편이 아니다. 예전에 머리가 짧을 때는 교실에 있는 선생님 책상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탈모예요? 가마 있는 곳에 머리가 없어요."

  "음. 아닌데. 선생님이 머리숱이 별로 없어서 그렇단다. 음음음."

  하지만 맨번 스타일로 바꾸고 난 다음, 나는 '탈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머리를 길게 해서 묶으니 정수리 쪽이 헐빈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참 다행이다.


  '이 머리모양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맨번 스타일 머리를 하니, 주변에 나와 같은 머리가 눈에 띈다. 그들의 머리를 보면 좀 철없어 보이기는 한다. 특히나 옆이랑 뒤를 너무 짧게 밀어서 하얗게 보이면. 지금 내 나이는 과연 이 머리를 하는 것이 어울리는 나이일까? 주변에서 아직은 허용적인 분위기이다. 머리를 이렇게 바꾸고 나서 더 젊어 보인다는 말도 듣는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오십, 육십이 되어도 과연 내가 이 머리를 하고 다닐까? 늙은이가 맨번스타일로 다니면 너무 가벼워 보이고, 없어 보일까? 나이가 들면 옆과 뒤를 다 길러서 도인처럼 다 묶고 다니면 좀 괜찮아 보일까? 그러면 머리 감고, 말리는 것이 귀찮을 텐데.

                                                                   

출처: 블로그, Black Scissors barbershop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내 나이는 40대. 아직은 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한다. 공무원 신분인 초등 남교사가 '맨번 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머리가 왜 저 모양이지?', '남자가 머리를 묶고 다니네.', '파격적인 스타일로 나름 잘 어울리네.'등. 처음 보면 어색하지만, 계속 보다 보면 적응이 되어서 동료들도, 학생들도 이제는 나의 머리에 대하여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내 머리를 보며, '선생님, 머리 뒤에 주꾸미 머리 같아요. 하하하.' 하며 놀리기도 한다.


  나의 사십 대 헤어스타일은 '맨번'이다. 딸이 유치원에서 가족 그림을 그렸는데, 아빠의 머리모양은 뒤에 꽁지가 있다. 아들도 나에게 말한다. '아빠, 지금 머리가 잘 어울려. 예전에는 어떤 머리였는지 기억이 안 나.' 머리 옆에 나기 시작하는 흰머리를 짧게 자르고, 머리숱이 적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맨번' 머리를 나는 계속 유지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 머리를 하고 다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사십 대', '불혹'의 의미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