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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10. 2024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이름을 들일 일이 점점 줄어듦을 느낀다.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갖게 된다. 보통은 부모님께서 태어난 자녀의 이름을 지어준다. 좋은 뜻과 음을 고심하여 그 아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만들어 준다. 그 소중한 '이름'을 갖고 한평생을 살아간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 요즘 내 이름을 듣는 일이 별로 없어 생각한 것을 글로 적어보려 한다.


출처: 포토뉴스, news.naver.com

  어렸을 때는 나의 이름을 참 많이도 듣고 살았던 것 같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아기였을 때에는 나의 부모님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많이 불러주셨을 것이다. 나의 실명을 거론하기는 좀 그래서, '정우성'이라는 이름을 예로 들겠다.

  "우성아, 맘마 먹자~"

  "우성아, 코 자자~"

  "우리 우성이 빠빠 잘 먹네. 무럭무럭 자라라."

  "우리 우성이 열이 있나 한 번 보자."


  그렇게 아기시절을 보내고 기관에 갔다. 내가 클 당시에는 어린이집이 없었고, 유치원을 다닌 후, 초등학교에 갔다. 그러한 기관에서도 나의 이름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선생님이 많이 불러 주었을 것이다. 친구들도 간혹 나의 이름을 불렀겠지.

  "정우성. 바로 앉으세요."

  "우성아, 그림 정말 잘 그렸네."

  "우성아, 나랑 놀자."


  그 후 중,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내 이름을 많이 불러 준 것 같다.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거나 노는 시간이 주로 내 일과였던 것 같다.

  "우성아, 농구하러 가자."

  "우성아, 이 문제 좀 가르쳐죠. 잘 안 풀린다."

  "정우성, 학교 마치고 뭐 할 거야?"


  대학교를 가서는 같은 과 동기나 선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후배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후배들은 그냥 '선배, 선배님'이라 부르고, '우성선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멜로영화에서 예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친하지 않을 때, '00 선배'라고 부르는 장면을 가끔 보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남자 후배들은 친하면 '형님'이라 불렀다. 그렇게 내 이름을 자주 듣는 나이는 끝이 났다.


출처: 블로그, 블랑부케'story

  소위계급장을 달고 군대를 가니, 나를 부르는 호칭은 '정소위', '2 소대장'이었다. 주로 '2 소대장'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병사들은 나를 '소대장님'이라 부르고, 나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점점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줄어듦을 느낀다. 친분이 있는 동료 장교 중 한 형님은 나를 친근하게 '우성아!'라고 불러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형님이 지금 우리 아파트 옆에 산다. 가끔 그 사람과 통화를 하면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어 내 이름을 듣기도 한다.


  군제대 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이제는 나의 호칭이 바뀌었다. '소대장님'에서 '선생님'으로 변경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를 때, '정선생님', '정우성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정말 친한 직장 동료 선배뿐이다. 술자리에서 술이 얼근하게 취하면 선배 교사가 내 이름을 크게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우성아! 맥주 두 명만 더!"

  그 사람 말고는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직장에 없다.


  점점 나이를 먹어 내 호칭이 또 변경되었다. 학교사회에서는 '교사' 다음에 '교감'이므로, 그 교사들 중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부장교사', '부장님'이라 부른다. 나는 '정 부장', '정 부장님'이 되었다. 사실 정말 부장직을 맡지 않아도, 그 정도의 연배가 되면 다들 존중하는 의미로 '부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불러주는 분위기이다. 직장에서 내 이름을 듣는 경우가 딱 한 가지 있다.

출처: 블로그, 희망!전북새마을운동

  직원체육 할 때이다. 배구할 때 내 이름을 가끔 듣는다. 예전에는 과동기, 학군단 동기인 친구랑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다. 배구를 엄청 잘하고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였다. 거의 배구선수 수준의 실력을 갖춘 그 동기와 한 팀이 되어 경기를 뛰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이다. 그 친구가 배구할 때 내 이름을 크게 불러 주었다. "우성아, 파이팅!", '우성이, 나이스~'.


  지금 학교에서도 배구할 때 내 이름을 가끔 듣는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대학교 후배인데, 나보다 열 살 많은 누님이다. 그분은 나를 이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내고, 예전에 같이 동학년도 했었던 사람이다. 눈이 초롱초롱한 그분은 현재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나는 사십이 넘었지만, 나를 보면 대학교 다닐 때의 정겨움을 표현해 준다. 나를 친근하게 여기는지 배구할 때 '우성아' 하면서 내 이름을 불러준다.


  전담실을 같이 쓰는 선생님 중에 나와 동갑이 있다. 하루는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말을 놓아보자고 하였다.

  "우... 성... 아... 무슨 커피 줄까? 따뜻한 거? 시원한 거?"

  "응... 지.. 현.. 아... 고마워. 난 따뜻한 커피를 좋아해."

  이건 뭐. AI로봇도 아니고. 너무나도 어색하게 둘이 말을 주고받고 있다. 아마 신규 때 만나서 알게 된 사이라면 서로 말 놓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지금 사십 넘어 만나 말을 놓으려니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어느덧 내 나이 마흔 살이 넘었다. 내 삶 속에서 내 이름을 듣는 경우는 이제 손에 꼽는다. 동기들을 만나서 동기모임을 할 때, 내 이름을 불러주는 동기가 있다.

  "우성아, 잘 지냈나? 애는 잘 크고?"

 병원에서 진료 순서가 내가 되었을 때, 내 이름이 들린다.

  "정우성 님, 00 진료실로 들어오십시오."

출처: 블로그, 긍정의 향기

  그것 말고는 내 이름을 들을 일이 없다. 집에서는 '아빠', 여보'라고 불린다. 첫째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나를, '행복이 아버님'이라 부른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나를, '사랑이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내 이름 '정우성'은 이제 들을 수 있는 곳은 병원 아니면, 동기모임뿐이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내 소중한 이름을 앞으로 더 들을 날들이 없을 것 같다. 나이가 오십이나 육십이 되면 나를 '우성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동기나 친구뿐일 것이고, '정우성 님'이라 불러주는 곳은 병원 밖에 없을 것 같다. 불현듯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

  "우성아, 뭐 하노?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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