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여행을 가서 점심식사를 할 때 젊은 여자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 전에 부모님이랑 여행 많이 다니세요. 나중에 결혼하면 같이 가기 힘들어요."
"이번에 엄마랑 둘이 베트남에 같이 갔다 왔어요."
"아빠는요? 아빠랑은 둘이 여행 가나요?"
"아빠랑은 가족 다 같이 갈 때요. 하하"
"아빠도 좀 챙겨주세요. 하하하."
보통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대화를 나누면 또래끼리 이야기할 때와는 다르다. 젊은이가 아주 싹싹해도, 연장자가 말이 잘 통하고 유쾌한 사람일지라도 뭔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내가 젊은이였을 때 선배교사들과 이야기할 때 '편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해.'라고 말하는 좋은 선배도 약간의 부담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내가 그 약간의 부담감을 주는 선배교사의 위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참 어렵다. 너무 친한 척을 하기도 그렇고, 너무 무게를 잡고 있기도 좀 그렇다. 적당히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유쾌하면서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과연 나는 잘하고 있을까? 아니 잘할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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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내가 젊은 시절에 만난 선배교사 중에 대화가 잘 통하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즐거웠던 사람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반대로 뭔가 부담스럽고 답답한 것이, 대화할 맛이 안 나던 사람도 떠올려 본다. 그러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 같다. 내가 즐겁고 편안한 대화를 했었던 그들의 대화법을 본받아 실천하면, 나와 대화하는 젊은이도 그때의 내 마음처럼 유익한 선배와의 대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규 시절 만났던 조부장님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우선 조부장님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고 항상 나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잘 들어주신다. 가끔 내가 하는 말에 맞장구도 쳐주시고, 크게 웃기도 하신다. 그러면서 내 얘기가 끝나면 본인의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분량으로, 솔직 담백한 대화를 이어가신다.
대화의 물고를 트고 나면 나도 질문을 하고 조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패턴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조부장님과의 대화는 항상 편안하고 유쾌했다. 거기에 술 한 잔이 더해지면 더욱 즐겁다. 연장자는 우선 후배에게 발언권을 주고, 그 후배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면 대화가 잘 이어지는 것 같다. 물론 처음 던지는 질문은 쉽고 가벼운 질문으로.
조부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 그 말이 생각난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도 좋아요."
사람들은 보통 대화를 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서 말한다. 그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은 맞장구, 칭찬, 공감의 표현들이 아닐까?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수룡교장선생님과의 대화도 생각해 본다. 그분은 참 생각이 젊으시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패턴을 보면 본인의 이야기를 마지막에 하신다. 한 가지 주제로 설전이 이어지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신다. 반짝이는 눈으로 가끔씩 '으음, 오호'하는 감탄사를 하시며 듣는다. 그러면 말하는 사람은 더욱 말을 하고 싶어 진다. 높은 사람이 내 말을 이토록 잘 들어주니 신이 나서 떠든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술자리는 참 유쾌하고 즐겁다.
교장선생님이 다음 해에 바뀌었다. 남교사 모임을 갖자며 술자리를 마련한다. 그 교장선생님은 본인이 계속 말을 하신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다들 듣고 있다.술을 권하거나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 말고는 계속 앉아서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다. 나중에는 듣는 척을 하고 있다. 계속 말을 하던 교장선생님은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다른 주제로 또 말한다. 일방적인 대화에 익숙한지,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보기 싫은 것인지,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다. 술자리가 재미없고 곤욕스럽다.
나이를 먹어 지금보다 더 연장자가 될 것이다. 내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젊은이들은 나를 대함에 부담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동학년 선생님 중 젊은 사람과의 대화, 각종 모임(지금은 안 나가지만)에서 후배들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잘 이어가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말하게 되면 나는 말을 많이 하고, 젊은 사람은 계속 듣는 패턴의 대화만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젊은 사람은 겉으로는 나의 말을 듣고 맞장구치며 웃고 있겠지만, 속으로는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젊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일까? 지금은 체육전담교사를 하며 전담실에서 나와 연령이 비슷한 선생님들과 생활하여 젊은 교사와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십 대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나중에 담임을 하고, 학년에서 어떤 위치를 맡게 될 것이다. 학년부장이 될 수도 있고, 학년에서 부장을 도와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교사들이 나와 대화함에 있어서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대화의 기술을 연마해야겠다.
출처: 블로그, 오늘의 하로그
'낄낄 빠빠'라는 말도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 눈치 있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특히 술자리에서 1차를 마치고 2차로 이동할 때 '함께 가시지요!'라고 말은 하지만, 젊은이들끼리 2차를 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연장자가 어느 선까지는 함께 있어도 좋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젊은이들이 피곤해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낄낄 빠빠'를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할 것이다. 대화의 주제, 내용, 화자의 발화 분량 등을 잘 파악하며 대화해야 언제 내가 빠질지 정할 수 있다. 그래야 주책바가지라는 말을 피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어떻게 귀담아들을지를 고민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 주책바가지를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