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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나 May 31. 2023

[비평]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가

무용 '춘향 : 날개를 뜯긴 새'

공연 <춘향 : 날개를 뜯긴 새>는 ‘정절을 지켰던’ 또는 ‘단지 사랑에 빠진’ 여인 춘향이 아닌, ‘사회의 부조리한 관습과 억압을 향해 주체적으로 저항’하고자 했단 한 사람으로서의 춘향을 그린다. 널리 알려진 고전을 주체적인 여성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춘향과 몽룡에 더욱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몽룡을 기다린 춘향의 모습이 단순히 정절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을 지키고자 했음이 강조된다. 


본 공연은 지난해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공연이 취소되고, 2023년에 초연됐다. 작품에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이외에도 뮤지컬 연출가와 ‘연희집단 The광대’가 함께해 무용과 전통연희의 새로운 감각을 선보였다.

凸모양의 무대 바닥에 LED가 화려하게 펼쳐지며 극이 시작한다.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가 중앙에서 춤을 추고, 그 주변으로 연주자가 빙 둘러앉는다. 그 여인은 하늘에 간절하게 애원하고 빈다. 그리고 곧 그의 사랑스러운 딸, 춘향이 등장하며 하늘을 향한 월매의 기도는 춘향을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원작에서는 타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강했던 월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그림으로써 세상에 나가는 순간, 춘향이 느끼는 좌절감이 더욱 극대화된다.

‘섬집아기’ 멜로디가 나오면서 연꽃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엄마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춘향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때 천으로 만들어진 푸르른 색의 그네를 타며 즐겁게 노는 춘향의 모습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그려짐으로써 그녀의 행복이 지켜지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곧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부터, 나에겐 자유가 없었다”라는 춘향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녀가 기녀였던 엄마를 따라 기녀가 되어야 하는 순간부터 무대 영상은 암울하게 바뀌고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자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날개가 꺾인 새처럼, 춘향의 날갯짓은 번번이 꺾인 채 펼쳐지지 못하는 것이 무용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한순간 나무에서 떨어져 날개를 다친 새끼 새처럼, 푸드덕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고자 하지만 끝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난 나로 살 수 있었으니까"


자신처럼 날개가 꺾인 몽룡과 우연히 만나면서 춘향과 몽룡은 서로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가 가진 아픔을 치유해 나간다. 신분이 달랐던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었던 만큼, 현실을 보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서로의 눈을 가린 채 사랑을 나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는 달빛과 은하수 등의 영상에 흰 조명과 꽃잎이 휘날리며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때 연두색 등이 수놓아지는데,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의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봤을 때 극초반 월매의 기도와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들을 지켜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춘향은 빨간색, 이몽룡은 파란색 조명이 사용되며 두 사람이 함께하는 순간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여 보라색이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슬퍼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애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다가온다.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던 원이 사회에 의해 파괴되며 몽룡이 떠나고, 타악의 울림이 강하게 진행되며 심장의 고동이 뛰기 시작한다. 불안함이 증폭되며 네 명의 북 연주자가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파스텔톤이 인물의 의상과 무대 전반을 이루었다면, 사또 변학도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검은색과 빨간색과 같은 원색으로 전환된다. 전반적으로 움직임은 택견, 태권도 등이 연상되는 무술적인 동작을 취함으로써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마치 절대 깨질 수 없는 견고한 사회제도를 의미함과 동시에, 변학도가 춘향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변학도가 춘향에게 수청을 들 것을 요구하자, 춘향은 이를 적극적으로 거절하지만 점차 권력의 억압에 숨이 조이게 된다. 이것을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이는 동작을 통해 극대화된다. 반복적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자 하는 새이지만, 사회적인 억압에 날개가 꺾여 날아가지 못하는 춘향의 모습이 나타나며 하늘이 아닌 땅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강조된다.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춘향을 고문하고, 이후 변 사또는 장대 막대기를 이용하여 춘향을 가두고 끊임없이 괴롭힌다. LED는 블랙홀로 바뀌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하며, 심벌즈와 사물놀이패가 등장하여 불안함과 비극을 고조시킨다. 


춘향이 감옥에 갇혔을 때, ‘쑥대머리’(옥중가)가 나오기 시작하며 피리의 음색이 강조되고 춘향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몽룡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전개된다. 몽룡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춘향을 찾아오고, 몽룡은 분노하며 감옥을 넘어 춘향에게 가고자 계속해서 시도하나 실패한다. 하지만, 결국 암행어사가 된 몽룡은 위기의 순간 춘향을 구하게 된다. 이때 춘향과 몽룡의 극적인 만남에 전자음악이 전개되고, 꽃잎이 휘날리며 몽룡을 상징하는 파란색 조명이 전체를 지배하면서 희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특히 몽룡과 춘향은 이전에 계속 견우와 직녀로 비유되어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생이별을 한 신세였는데, 비로소 까마귀와 까치 떼를 밟고 서로 만나는 장면을 전개하여 두 사람의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

고전을 바탕으로 무용극을 전개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극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도가 높으며, 보다 수월하게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듯 극이 끝나고 관객석에서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나왔으며, 옆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들도 연신 굉장하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반적으로 극은 국악, 전자음악 등 동서양의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현대적인 감각으로 <춘향전>을 풀어가며, 이는 춘향의 주체성을 강조한 것과도 잘 어울렸다. 또한 바닥에 화려한 LED를 사용하여 동양의 오방색을 바탕으로 꽃, 은하수 등의 영상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하면서도 춘향, 몽룡 그리고 사회적 억압으로 비유되는 변 사또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기녀라는 신분적 세습에 매여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던 춘향의 모습이 날개가 꺾인 새로 표현되다가 마지막 몽룡과의 재회를 통해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위기를 극복하여 자신의 자유를 지켜낸 주체적인 춘향의 모습이 강조된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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