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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nker May 29. 2023

외로움

외로움을 고독으로 치환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외로움은 감정의 영역이고 고독은 이성의 영역 아니냐더라.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성으로 감정을 감쪽같이 다스리며 사는지도 모르겠더라.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붉어오면 아주 잠시 해소할 시간을 주었다가 이만 이성으로 다독이고 정리하고 매듭 지으며, 그렇게 하루가 저물기 전에 외로움을 고독으로 감쪽 같이 치환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고 다행히도, 나는 그 일에 너무 능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이상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약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이다가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나아가고 싶었다. 필사적으로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내 사전에 약함을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다그쳤는데 어느 순간에는 다그침이 필요하지 않아졌다. 아이가 떠나가라 통곡를 하다가도 너무 크게 다그쳐지면 딸꾹질도 삼켜버리듯이, 어느 순간 약함은 쥐 죽은 듯 딸꾹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기댈 곳도, 호소할 곳도, 털어놓을 곳도, 안길 곳도, 무엇도 필요하지 않아졌다. 강함 외의 모든 언어는 무용해졌다. 구태여 해야 하는 불필요한 말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말이 줄었다. 필요하지 않는 말, 구태여 해야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목적 있고 명분이 있는 말만 하게 되었다. 그 외로는 서로에게 부담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어색해졌다. 낯설어 졌다. 고독과 무언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여기서 안정을 찾았다. 그 안정이 평안은 아닐지도 모르면서.


서늘한 무언가를 선선하고 안온하게 담아내는 글자 위로 부스러지는 햇빛과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순간 나는 안정을 평안이라 착각하고 외로움을 고독이라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약함이 소리를 잃어 내색을 못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그 실어에 그만 정착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알 수가 없어서 모르겠다는 말로 많은 것을 대신한다.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글에 부담을 주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글에 보여준다. 그 너머로 누군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은 그만 모른채 할련다. 눈 감을련다. 내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소리를 저 너머 누군가도 그만 모른 채 해주기를, 그만 눈 감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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