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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 Dec 07. 2023

켜켜이 쌓인 시간이 나를 만들다.

슬픔과 근심조차도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

오랜만에 나와 더불어 나이 들어가는 낡고 오래된 나의 책장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았다. 쉼 없이 달려온 1년, 책장에 쌓여가는 먼지조차 돌아볼 틈도 없을 만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책장을 닦다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 있는 나의 일기장을 수년만에 펼쳐보았다. 컴퓨터로 일기를 쓰기 전까지 어릴 적부터 손글씨로 틈틈이 써왔던 일기들이다.     


나의 어릴적 이야기들이 담긴 일기장들


제목 ‘인생이란 무엇일까?’ 초등학교 4학년때 쯤인가 썼던 노래가사가 쓰여있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 학교 준비물로 산 리코더로 어설프게 불어가며 썼던 기억이 난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아무도 모르고 / 그냥 그냥 흘러간다. 

인생길 인생길 / 내가 걸어르리.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뭘 알았을까 싶다. 우스운건 인생의 반백년을 산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때 고민한 인생길을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헤매고 있고, 여전히 지금도 나의 인생길을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복되는 실수를 하며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스스로를 의심하며 그저 늘 공부하며 노력할 뿐이다.     

 

부모님 도움 없이 어렵게 대학 공부를 했고, 학비 마련 생활비 마련을 위해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결혼한 지금도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으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랑하는 딸아이를 위해 모든 나의 시간들을 채우고 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힘들게 아이를 낳았고 키우면서 처음으로 행복하다라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힘듦은 당연한 거라 여기며 책임감에 감내하면서 지냈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아이의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었으며 나의 꿈이나 나의 시간들은 저 끝 어딘가의 뒤안길로 밀려나 있었으며, 그 시간들은 온통 엄마라는 이름의 시간들로만 채워지고 있었다.     


근래 내가 과연 잘살고 있는 건지 이것이 맞는 삶인지 헷갈리고 혼돈일 때가 많았다. 내가 혼돈하고 있는 이 시간도, 행복했던 시간들도, 아이의 아픔으로 밤새 걱정하고 근심으로 채웠던 시간들도, 아이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그 웃음을 온통 나의 행복으로 채우며 행복해했던 시간들도, 


그리고... 엄마 아빠의 생의 뒤안길을 나란히 지켜보며 인생의 삶과 죽음을 눈물의 시간들로 채워나갔던 시간들도,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는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다. 아마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어쩜 내 처지나 원망하며 세상이나 원망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못하는 철없는 인간으로 반백년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새 12월, 올해도 이제 달력 한 장이 남아있다. 그러나 내일 2024년이라는 새날이 다시 시작이 될 것이며,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행복했던 시간들뿐만이 아닌 슬픔과 분노조차도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들이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반백년을 이제 한 장 남은 달력을 두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하얀 종이 위에 써보고, 다시 써보고를 반복되며 남은 인생을 설계해본다.      


인생은 무엇일까? 어릴 적에 고민하던 걸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고민하는 걸 보면, 아마 수학 문제 풀듯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오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언젠가 내가 꿈꾸는 삶이 올 날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기안84와 포르피가 함께 찍은 사진 Ⓒ MBC


얼마 전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프로그램에서 기안84와 포르피와의 만남을 아주 감동적으로 보았다. 포르피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안84와의 만남이 인연이 되었던 볼리비아 사람이다. 포르피는 아들 둘과 어린 딸 아내와 함께 문명과는 단절된 산속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기안84와의 잠깐의 인연이 그에게 참 말도 안되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게 했던 것이다.      

  

나도 여전히 나의 인생을 새롭게 그려나가기 위해 늘 도전하고 고민한다. 비록 그것이 실패를 할지라도 말이다.


포로피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참 말이 안된다. 인생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쩜 나의 내일이 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저 그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이 순간조차도 헛되지 보내지 않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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