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2집 곡 별 코멘터리
지난 화 : https://brunch.co.kr/@xeudamusic/24
지난달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읽었어. 심시선 씨의 자손들이 돌아가신 심시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모이는 이야기였지. 사건의 발단은 시선할머니의 죽음 이후 시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자손들 모두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 각자 심시선씨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져오기로 해. 책의 말미, 각자가 가져온 시선의 조각을 모아 큰제사상을 차려 놓고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면서 마치 나도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같은 기분도 들더라.
책을 읽는 동안 너무너무 따뜻한 시간을 보냈어. 그렇게 책을 읽고 책모임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마치 나도 심시선씨의 자손이 된 냥, 그와 나눴던 추억 조각을 나누러 가는 기분이 들더라고. 내가 본 시선 할머니는 당차고 강한 멋진 여성이었거든. 나 역시 시선으로부터 많은 용기와 힘을 얻어서, 내가 얻은 멋진 말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났어. 내내 유쾌하고 호탕한 시선의 말에 죽죽 밑줄을 그어가며, 어떤 말을 담아 가면 좋을까 이리저리 마음을 굴리는 게 퍽 재밌었어. 내가 제일 멋진 말을 내놓겠다는 승부욕도 일고 말이야!
많은 문장이 있었지만 유독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하라는 말이 자꾸 남는 거야. 나는 언제나 이런 말에 조금 두근두근한다. 하도 눈치를 봐서 그런가. 그래서 눈치 보지 않고 멋지고 큰사람이 되어 큰 노래 만들고 싶었는데..
안되더라.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
시선의 조각을 받았지만
여전히 나는 약한 사람이야.
때 되면 울고, 할 수 없을 거라 절망하고, 웅크리고, 외면하고, 좌절하지. 아무리 멋지고 좋은 걸 본다고 해서 갑자기 멋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어. 정말 어떻게 하면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걱정하면서,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책에 종종 나와!) 겨우 그렇게만 살아가고 있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면서, 그래 억지로 멋진 사람이 되지 말자고 생각하다가 만들게 된 노래야.
너무너무 괴로워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어? 잊으려 해도 정말 끈덕지게 남아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그 시절의 내가, 감정이, 고통이 그대로 다시 느껴져 버리는 때가 있어? 나는 가끔 그랬어.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분명 햇살이 내리는 밖으로 빠져나왔는데도 갑자기 그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하더라. 그때 한 친구에게 엉엉 울면서 다 털어놨던 적이 있는데 말이야.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구가 그러더라고. ‘그랬구나, 고생했어.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하고.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기곤 꼭 안아주었지. 근데 그러니까 갑자기 지난날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냥 뿅 하고 사라져 버렸어. 눈물도 뚝 그치고 그동안 뭐 때문에 힘들었더라? 까먹어버리고선.
그제야 나는 가슴이 터져 죽지 않을 수 있었어.
2024. 5
노래를 만들 당시 적었던 글입니다. 저는 늘 멋진 사람이 되고자 꿈꾸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걸까요? 멋진 척을 하려고도 노력해 봤습니다만 항상 실패하고 맙니다. 지난 EP앨범 <꿈, 칼, 숨>도 그랬지요.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겠다고 시작했지만 결국 그냥 제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토해내버리고 말았죠. (#2 칼 다시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QRGV7KqvB9A )
이 곡도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심시선 할머니의 멋진 모습은 간데없고 연약하고 작은 사람만 남아 있어요. 다만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니 타인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게 일어난 불행이 아주 별거 아닌 게 되더라고요. 엉엉 울다가 엥? 하고 깨버리는 느낌을 상상하며.. 아주 밝은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코드와 진행으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때 사실 2집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있었고, 수록곡도 정해져 있었는데요. 정해놓은 수록곡들 중 한 곡이 잘 어울리지 않고, 앨범 전체의 연결을 도와줄 곡도 부족하던 찰나에 이 노래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급하지만 작업해 볼 수 있을까? 하며 명환에게 보내주었고. "누나 저는 이 노래가 제일 좋은데요?"라는 피드백과 함께 바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밝고 경쾌한 밴드사운드로 편곡이 되어 앨범의 말미에 들어가게 되었고 앞서 늘어놓았던 사랑을 마무리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저는 이 곡이 너무 신나고 밝은 느낌이라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아무도 신난다는 피드백은 잘해주지 않네요. '신남'이라는 것은 대체 뭘까. 아무래도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PUZFj8_davc?si=k3zT-8rHTEhkSwBl
<쓰다 - 시선의 조각>
어젯밤에 나는 또
사랑밖에 없는 듯 굴었어
내일 밤엔 아마 똑같이
사랑밖에 없는 듯 울겠지
어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할까
가슴이 터져 죽어버릴까
정말 꼭 그럴까
나를 꽉 안아줄래요
그럼 그새 또 괜찮아져요
그렇게 별거 아닌 듯
웃어줘요
나를 더 꽉 끌어안아줄래요
당신의 조각을 나눠주세요
그럼 외로움에 멈춰버린
내 마음도
함께 뛸 거예요
가방에 잔뜩 구겨 넣은 울음이
비실대며 삐져나올 때
더 단단히 잠글까
그냥 열어버릴까
나를 꽉 안아줄래요
그럼 그새 또 괜찮아져요
그렇게 별거 아닌 듯
웃어줘요
나를 더 꽉 끌어안아줄래요
당신의 조각을 나눠주세요
그럼 외로움에 멈춰버린
내 마음도
함께 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