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2집 곡 별 코멘터리
지난 화 : https://brunch.co.kr/@xeudamusic/26
무언가 강하게 믿어본 적이 없는 저는 기도를 드려본 적도, 간절히 바라본 적도 없었습니다. 절도 교회도 구경은 가보았지만 마음을 담아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갔던 여행길에서 처음 마음속으로 기도라는 걸 해보았습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말도 안 되는 기도가 제 인생 처음으로 마음을 담아본 일이었어요.
다정한 사람이 된다는 건 뭘까요? 제 생각에 다정한 사람이란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우선 들어주는 사람 같았어요. 나에게 먼저 다정해야 타인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나의 욕구를 먼저 챙기지 않고 타인에게만 다정한 사람이라면 그건 그저 눈치 보는 사람에 불과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1집의 설명에는 눈치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는데, 2집으로 넘어오며 조금 극복해 낸 것 같기도 하네요.
어느 날, 언젠가. 내가 꿈꾸던 미래가 올까요? 내가 바라던 내가 될까요? 요새 이 노래를 부르기 전 꼭 덧붙이는 말입니다. 곡을 쓸 때에는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고요. 녹음을 하면서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어요. 발매를 하고 난 지금은 정확히 뭘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문장을 비워두니 들어주시는 분들의 '어느 날, 언젠가'가 깃드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실제로 이 노래는 발매할 생각이 없었던 곡이기도 한데요. 팬분들의 강력한 요청(?)에 힘입어 제작한 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여러분들과 연결된 기분이 들기도 해요.
https://youtu.be/ghnJCvHRxwk?si=zOJACvJHw3_JbAnp
< 쓰다 - 어느 날 언젠가 >
어두운 밤 숨소리도 없는 날
홀로 남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내 심장을 잡고 앉아 울어
어느 날 언젠가 이 마음 털어내면
서서히 서서히 빛이 내릴까 여기도
어느 날 언젠가 너에게도 닿을까
내 심장을 잡고 앉아 물어
비워내고 털어내고
지워내고 덜어내면
그제서야 채워지는
텅 빈 마음
비워내고 털어내고
지워내고 덜어내면
그제서야 채워지는
텅 빈 마음
더듬더듬 손을 뻗어
허공에서 잡아챈 건
작고 작은 나의 어깨
어느 날 언젠가 이 마음 털어내면
서서히 서서히 빛이 내릴까 여기도
어느 날 언젠가 너에게도 닿을까
내 심장을 잡고 앉아 물어
2023. 04
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맑게 갠 광화문 광장이 눈 안에 가득 찼다. 오래 공사 중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완공이 되었는지 탁 트인 시야에 기분이 좋다. 광화문 너머 보이는 저 산은 북악산이었던가, 원래 저렇게 컸었나,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새잎은 왜 이렇게 선명한 연둣빛일까? 부드러운 봄 햇살이 나무 위로 부서져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게 서울의 봄인가. 벌써 몇 년째 맞는 봄이건만 이렇게나 낯설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음악적 성취, 하고자 하는 말,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한 시간가량 떠들고 나니 어쩐지 속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애써 외면해 오던 마음을 가감 없이 들켜버린 것도 같았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다고 자조를 섞어 얘기해 왔지만 사실은 간절하게도 음악을 해오고 싶었다고 나의 음악을, 삶을 나는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고 결국은 돌고 돌아 같은 말을 반복했던 거야. 그렇게 모든 말과 정념을 쏟아냈다.
싹 비워내고 나니 드디어 봄바람도 햇살도 선명한 색채도 들어온다. 느닷없이 찾아온 봄이 너무 아름다워 괜히 울컥했다. 봄은 언제나 여기 있었는데 그저 내 안에 들어올 자리가 없던 건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