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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Aug 16. 2023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앞 호텔 주인이?

이스라엘과 수십 년간 분쟁을 이어온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한 호텔이 있다.

호텔 바로 앞엔 이스라엘이 세운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생뚱맞은 곳에 들어선 호텔 주인은 생뚱맞게도 뱅크시(Banksy)다.


뱅크시.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그라피티(graffiti) 예술가라고만 말하기엔 활동 영역이 너무 넓은 예술가.

나이는 1974년 출생으로 올해 49세 추정.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는 공식적으로 대중과 미디어에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세계 미술계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최근 영국에 와서 우연히 어쩌다 보니 런던 쇼디치(Shoreditch) 지역에 가게 됐고 예전 TV에서 본 뱅크시의 작품을 보게 됐다.

미술에 문외한인 난 뱅크시를 잘 몰랐다.

쇼디치에서 본 뱅크시 작품엔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한 투명 플라스틱이 입혀져 있었다.

길거리 작품에 보호막이라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영국 쇼디치에서 만난 뱅크시 작품. 훼손 방지용 플라스틱 판이 입혀져 있다.

난 애초 벽에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그라피티에 거부감이 있었다.

1960~1970년대 미국 슬럼가에서 시작됐다는 그라피티는 그 자체로 반체제, 반사회적인 저항 예술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이 다 비슷한 거 같고 그냥 기존 그림을 모방해 확대 재생산되는 느낌이 강했다.

하나의 문화로는 인정하지만 나에게 하나의 작품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뱅크시 작품을 보는데 뭔가 달랐다. 기존의 알록달록하고 둥글둥글한 그라피티가 아닌 판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팔레스타인 장벽에 스텐실 작업하는 뱅크시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실제 뱅크시는 그림을 그린 뒤 칼로 공간을 낸 두꺼운 종이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스텐실(stencil)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빠른 시간 안에 벽이나 건물 등에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터다.

사유물이나 공공물에 그림을 그리는 건 타인과 공공 재산을 훼손하는 엄연한 불법 행위이다.

작업 중 경찰과 맞닥뜨리거나 체포되는 일이 다반사인 그라피티 예술가에게 스텐실 기법은 예술적 목적도 있겠지만 그림 효율을 높여 재빠른 도주가 가능해 검거 가능성을 낮추는 기능적 효과도 있을 것 같았다.

히피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브리스톨 그라피티 문화 속에 자란 뱅크시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작업을 이어왔다.

유명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거는 뱅크시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대영박물관, 영국 자연사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품을 몰래 걸어두고 나와 세상에 '뱅크시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유명 박물관, 미술관에 걸린 작품만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도 예술이라는 일종의 항의로 이해됐다.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 기간 뱅크시가 베니스에 몰래 그린 벽화. 난민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듯했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쥐나 원숭이 등 동물, 어린이, 경찰 등을 그림 소재로 많이 사용했고 주제는 난민, 전쟁, 기후위기, 여성, 소수자 등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형태가 많다.

벽화뿐 아니라 영국 도심의 빨간 공중전화박스를 통째로 들고 가 자른 뒤 사선으로 이어 붙여 제자리에 갖다 놓는 스트리트 아트를 벌였다.

(사진=https://www.banksy.co.uk)

마스크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채 심야 런던 지하철에 잠입해 창문과 출입문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뱅크시가 기존 예술가와 다른 건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던지려 했다는 점이다.

(사진=www.banksy.co.uk)

그 속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엔 온기가 느껴진다.

SNS에 공개한 자신 집 화장실에 그린 그림을 두곤 '아내가 싫어한다'는 캡션을 달기도 했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그래서인지 뱅크시가 출연한 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가 미켈란젤로도 아닌 뱅크시라고 홍보했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뱅크시는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데 지난해엔 우크라이나에 나타나 러시아 전쟁을 반대하는 벽화 7점을 남기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라피티를 엄격히 금지하는 나라라는데 뱅크시 작품은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푸틴을 어린이가 업어치기 하는 벽화는 우표로 만들어졌고 포격으로 불탄 창문 옆에서 방독면을 쓰고 소화기를 든 여성 벽화는 통째로 도난당할 위기에 처하자 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뱅크시 그라피티 (사진=www.banksy.co.uk)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저작권에서도 애매모호한 그의 작품을 두고 소유권 논란이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뱅크시는 자신의 홈페이지 혹은 SNS를 통해 입장을 밝히곤 했는데 주로 벽화가 그려진 건물 주인의 편을 들거나 공공시설의 경우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엔 '뱅크시의 세계'라는 이름의 전시공간이 있어 한번 가볼까 싶었는데 이건 원제작자인 뱅크시 동의 없이 애매한 저작권의 허점을 이용한 사적 전시였다.

버젓이 돈도 받고 있어 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사거나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pestcontroloffice.com(사무실 홈페이지)라고 한다.

뱅크시가 지금까지 연 공식 전시회는 고향인 브리스톨, 미국 LA 등 3번에 불과했다.

대형 코끼리까지 등장한 미국 LA 전시회엔 브래드 피트, 앤젤리나 졸리 등 많은 유명인이 참석하고 많은 작품이 팔려 대성공을 이뤘다.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5억원이 낙찰된 뒤 파쇄되는 '소녀와 풍선'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많이 알려진 대로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시장에서는 뱅크시 작품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경매에 '소녀와 풍선'이라는 뱅크시 작품이 나와 15억원에 낙찰되자 뱅크시는 미리 작품 속에 설치된 파쇄기를 작동시켜 그림 절반이 그대로 파쇄기를 통과해 소더비 측을 멘붕에 빠지게 했다.

2020년 제작된 뱅크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파쇄기를 작동시키는 소형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뱅크시는 경매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파쇄기 버튼을 누르다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뱅크시는 돈만 밝히는 미술계를 풍자하려 했지만 3년이 지나 '사랑은 쓰레기 통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재경매에 부쳐져 20배인 약 300억원에 팔렸다.

이러니 자본가와 부자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가 뱅크시라는 말까지 나오는 게 아닐까.

(사진=www.banksy.co.uk)

뱅크시 그림으로 희비가 교차한 이들도 있었다.

뱅크시는 자신의 그림을 뉴욕 거리에서 한 노인에게 한 점당 60달러에 팔게 했는데 몇 점 팔리지 않았다. 이 그림을 산 어느 여성은 뱅크시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 가격의 수십 배에 작품을 되팔아 대박을 쳤다.

(사진=https://www.banksy.co.uk)

브리스톨의 한 오르막 길 옆 주택엔 한 노인이 틀니가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재채기를 하는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졌는데 집값이 4억원에서 72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고 한다.

뱅크시는 영국의 한 농가 벽면에 마치 커튼을 연상케 하는 구겨진 양철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커튼을 걷으며 기지개를 켜는 듯한 그림을 남겼는데 집주인이 뱅크시 작품을 몰라보고 얼마 뒤 집을 허물어버렸다.

(사진=https://www.banksy.co.uk)

그렇다고 뱅크시가 미술계를 비난만 한 건 아니었다. 경매에 자신의 작품을 팔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도왔다.

작품으로 큰돈을 번 뱅크시는 팔레스타인에 Walled Off Hotel을 짓기도 했다.

앞서 팔레스타인 높은 분리장벽에 풍선을 매달린 소녀, 장벽 이면에 파라다이스가 보이는 등의 벽화를 그리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그린 벽화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www.banksy.co.uk)

뱅크시는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으로 벌어들인 거액으로 2017년 그 분리장벽 앞에 호텔 문을 열었다.

호텔방에서 이 분리 장벽이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뷰를 가진' 호텔이라고 홍보하면서 말이다.

왜 하필 팔레스타인일까.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팔레스타인에게 '우릴 도와주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오히려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 일부를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시켰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유대인 혐오를 불러일으켜 전대미문의 학살을 저질렀고 전쟁이 끝난 뒤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에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각각의 나라를 만드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오랜 세월 핍박받던 유대인들은 재빠르게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 등으로 쫓아냈다.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랜 피의 분쟁을 겪어왔고 급기야 이스라엘은 테러 공격을 막는다는 이유로 가자지구 서안을 둘러싸는 714km 분리장벽을 세웠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난과 아픔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영국의 원죄가 있는 셈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뱅크시는 호텔을 열어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을 알리고 그 수익을 지역에 재투자하고 있다.

호텔 안은 뱅크시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이 호텔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번갈아 여행하면서 말이다.


뱅크시는 화가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업을 도와주며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던 미국 친구가 있었는데 영화 제작과 영상 편집에 영~ 재주가 없자 직접 감독으로 나선 것이었다.

2010년 제작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영화는 주로 예술로 드라마틱하게 성공한 미국 친구의 이야기를 담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넣었다.

뱅크시는 직접 영화에 출연한다. 얼굴은 후드티로 가렸지만 목소리는 나온다.

뱅크시 (사진=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2022년 개봉한 뱅크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옷으로 가리긴 했지만 눈과 눈썹 부위가 선명하게 공개됐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활동 중인 뱅크시 주변 인물이라면 뱅크시를 알아볼 중대한 단서가 노출된 듯하다.

물론 거리 예술을 하며 뱅크시는 지인이나 스탭 도움을 받고 있는 듯해 소수의 인물은 이미 뱅크시 존재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뱅크시 신원이 베일에 싸인 건 지인과 스태프의 철저한 보안이 있기에 가능할 듯 싶다.

뱅크시를 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술가로 활동하는 것도 나름 장점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라피티라는 불법 장르의 속성 때문에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이고 신비주의로 얻는 마케팅 효과도 만만치 않다.)

하고 싶은 말이나 그리고 싶은 그림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으니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뱅크시 전시회 포스터

현재 이번 달 28일까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뱅크시의 네 번째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다.

진작에 매진이지만 미리 알았다면 한 번 가보려고 노력은 해봤을 텐데 아쉬웠다.

뱅크시가 대중에 노출되지 않고 오래도록 소신을 펼치며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길 기원한다.

뱅크시 작품이 조만간 유명 박물관에 걸릴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여력이 된다면 우리 집 외벽에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조그만 쥐 그림이라도 하나 그려준다면 여한이 없겠다.ㅎㅎ


(# 영화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동아엠엔비 카드뉴스 '10장면으로 보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역사, www.banksy.co.uk, 뱅크시 관련 기사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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