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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Dec 12. 2023

추락하는 출산율보다 무서운 건?

'올해 1∼3분기 누적 출생아 수 17만7천명.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

'결혼한 지 5년 이하 신혼부부가 지난해 낳은 자녀 수 평균 0.65명. 201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저.'


최근 다시 언론들의 출산율 위기 보도가 줄을 잇는다.

출산율 관련 통계청 발표가 나오거나 몇몇 언론이 중요한 팩트가 담긴 출산율 보도를 하면 줄줄이 유사 기사가 쏟아진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기에 이런 경고성 보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경고만 하고 해법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정치권에서 내놓는 출산율 해법도 매달 아이 한 명당 100만원 지원 등 현실성 없고 포퓰리즘적 발상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취업이 잘 안 되거나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테다.

미래가 불안하니 결혼하지 않고 설사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그럼 출산율을 높이려면 청년 취업률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되지 않나.

이런 명확한 해법이 있는데 왜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는 갈수록 성장이 더디고 비정규직은 늘고 거기다 집값은 치솟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정치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출산율 해법은 몇 가지로 압축되는데 세계 어느 정부도 이걸 해결할 방법을 못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출산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역할은 사실 출산 이후부터라고 본다.

결국 아이를 낳는 건 부부의 결단, 의지 문제이고 낳아서 키울 만하다고 생각되면 낳을 것이고 키워 보니 제법 괜찮다 싶으면 그땐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때 통상임금의 100%, 80%를 급여를 주고 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한액에 막혀 있다.

2023년 기준 출산휴가의 경우 상한액 210만원, 육아휴직 상한액은 150만원이다.(부모 양쪽이 모두 혹은 번갈아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상한액이 최초 3달은 200만~300만원으로 늘어나긴 한다.)

월급을 아무리 많이 받더라도 이 금액 이상 못 받는다는 말이다.

상한액이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육아휴직 기간 경제적 쪼들림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원금이나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양육가정은 쉽사리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어느 정치인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자고 말해 무척 답답했다.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집이나 직장 근처에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리고 출근을 앞당기거나 퇴근을 미룰 수 있는 유연근로제나 주 40시간 이하의 노동으로 부모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 급식에서는 별도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고 방과 후 체육, 음악 활동 등도 저렴한 비용으로 하면 좋겠다.

또 부모들이 고정비를 뺀 가계 소득의 1/4, 1/3 심지어 1/2 이상을 아이들 사교육에 쓰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공교육만으로도 아이들이 충분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취업할 수 있는 세상이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을 낳지 않을까.


다시 말해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 지급, 무상 급식 지급,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무상 의료, 방과 후 활동 비용 보장까지 포함한 무상 학교 교육, 청소년 대상 학업기간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 정도는 해야 추락하는 출산율 그래프의 방향을 좀 돌려세울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너무 이상적이라면 학비 보조금 지급, 저소득층 아동수당 지급, 주부 휴가제 도입, 전면적 아동수당 지급, 교육 보조금 지급, 가족 상담원제 실시, 9년 의무교육제 실시, 아동 가정 주택 보조비 지급, 출산 유급 휴가제 실시, 부모 보험제 실시 등은 어떨까.


앞서 말한 건 노벨경제학상, 노벨평화상을 각각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 알바 뮈르달 부부가 1930년대 출산율 저하 문제로 스웨덴 사민당 정부에 제안한 정책이고, 뒤에 언급한 것은 스웨덴 정부가 이를 직간접적으로 받아들여 시행한 복지정책이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정책이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뤄졌고 한때 위기의 스웨덴 출산율은 반등해 현재도 유럽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스웨덴 출산율은 1.67명으로 우리나라 2022년 기준 0.78명보다 거의 1명이 많다.

뮈르달 부부가 1934년에 발간한 책 '인구 위기'에는 당시 스웨덴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한 제언으로 가득 차 있다.

거의 90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그 혜안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올해 7월 뮈르달 부부의 '인구 위기'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인구문제를 해결할 방도와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강건히 발전시시키는 길이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고 말했다.

출산율 정책이 곧 복지정책이라는 말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난 아내와 함께 스웨덴에 1년간 살면서 아동수당, 아동 가정 주택 보조비를 매달 받으며 스웨덴 출산율 정책, 복지 정책 일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 대한민국 육아휴직자로 살며 한 달 최대 250만원, 최소 90만원가량의 휴직급여를 받은 나는 스웨덴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이 약 532만원(43,750크로나)이라는 걸 알고 허탈해했던 기억도 있다.


누구는 그런 정책을 펴는 데 필요한 예산을 어디에서 충당할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우리나라가 스웨덴처럼 조세 징수율 40%에 육박하는 나라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이번 정부에서 각종 예산을 뭉텅이로 깎는 것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예산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예산이라는 것도 결국 쓰기 나름이고 사용처에 의지가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출산율이 낮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관련 정책을 만들지 않고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결국 의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스웨덴의 출산율 해법과 역사적 과정을 몰라서 안 하는 것일까.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은 수시로 스웨덴 현지에 사는 전문가를 뽑아 분야별 정책 모니터링을 하고 국내로 리포트를 퍼 나르고 있다.

주요 부처 국가직 공무원은 2년 주기로 스웨덴에 해외 연수를 와서 관련 리포트를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행이 안 되는 건 그 리포트가 윗선까지 올라가지 않거나 귓등으로 흘려듣거나 아님 구색 맞추기 제도일 뿐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 많은 출산율 해법 전문가나 교수들은 뭐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의지가 없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출산율 문제에서 가장 두려운 건 여성 혹은 남성, 아님 부부가 아이 없는 삶의 기쁨을 알아버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데 왜? 굳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신인류의 출현이다.

아이를 낳고 싶은데 못 낳는 것과 아이를 낳을 충분한 여건이 되는 데도 낳지 않는 건 엄청 큰 차이다.

이는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스웨덴에서 최근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현실과 맞물린다.

자발적 출산 파업에는 백약이 무효다.


세계에서 57번째 행복한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드는 환경은 한번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뮈르달 부부가 제언했던 출산율 정책만 시행해도 이 나라의 보편적 복지는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덩달아 국민 행복도 순위도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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