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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Nov 15. 2023

항상 높았던 콜레스테롤이 낮아졌다

2021년 256.

2022년 249.

올해엔 198.

이거 정말이야? 내 몸에 무슨 일이?


최근 집으로 도착한 건강검진 결과책의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수치를 보고 또 봤다.

인쇄된 숫자들이 믿기지 않았다.

매년 건강검진만 하면 항상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를 훌쩍 넘었다.

회사 선후배한테 물어봐도 대부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고지혈증은 직장인들의 고질병인가 보다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고지혈증은 혈액에 기름 찌꺼기가 많아 혈관이 좁아지거나 심하면 막힐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인데도 건강검진 때마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수치만 보면 고지혈증 위험군이거나 이미 고지혈증 환자였던 셈이었다.

이번에도 큰 기대 없이 검진지를 펼쳤는데 결과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작년보다 무려 50이나 낮아졌다.

아슬아슬하게 정상 범위 내로 진입한 것이 아니라 제법 여유 있는 안착이었다.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를 높이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60 가량 낮아졌고, 심장 보호 기능이 있다는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13 상승했다.

이런 수치 변화는 10여 년 직장생활 이후 처음이었다.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해 검사결과와 비교해 체중이 4kg 정도 감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올해 검진에서 인바디 검사 오류로 체지방률, 복부비만율이 나오지 않아 지난해와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없었다.

건강검진 결과가 도착하기 전 의사가 연락해 주요 특이점을 알려줬다.

의사는 체중이 갑자기 왜 빠졌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동안 몸무게를 재지 않고 살았다.

그러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줄었다면서 좋은 현상이라고 그랬다.

의사한테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면서 기분 좋긴 처음이었다.

의사는 무슨 운동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답했다. 매일 조깅한다고.

의사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하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콜레스테롤 수치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설명해 줄 만한 것은 사실 하나밖에 없었다.

최근 1년간 내 신체활동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달리기.


지난 1년간 스웨덴에서 살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숲을, 강변길을, 도심 속 녹지를 달리는 모습을 봤다.

이 사람들 도대체 왜 뛰는지 궁금했다.

궁금해서 뛰어봤다. 뛰면 그 기분과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난생 처음 스톡홀름에서 10km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고 연습한 뒤 참가했다.

첫 대회는 죽도록 힘들었는데 왜 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다가 두 번째 10km 마라톤 대회도 완주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뛰고 있다.

그냥 경험만 해보자 싶었는데 아직 뛰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 두 달간 일주일에 4~5번 적게는 4~5km, 많게는 10km를 꾸준히 뛰고 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30분 정도 뛰고 출근하는 루틴이다.

주말엔 시간 여유가 있어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뛰고 온다.

이전보다 하루의 시작이 개운하고 힘찬 느낌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달리기 통계를 보니 올해 82번을 뛰어 누적 거리는 500.57km였다.

부산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정도의 거리다.

한 번 뛸 때 약 6km를 뛴 셈이었는데 모아놓으니 꽤 많이 뛴 것 같다.

1~3월, 8월은 거의 뛰지 못했지만 올해 달리기 입문자로서 나름 열심히 뛴 것 같아 만족한다.

애플워치에 기록된 월별 달리기 누적 거리

1년 전 만해도 땀 흘리며 돈까지 내면서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살다 보니 내가 돈 내고 땀 흘리며 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는 규칙적인 습관이 하나 생긴 듯해 기분이 꽤 좋다.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매일 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걸 알게 됐다.

매일 각각의 생각과 마음으로 새로운 레이스를 펼치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발 한발 내딛는 러너와 마주칠 땐 '파이팅'이라도 외쳐주고 싶은데 부끄러움에 그러질 못했다.


지금까지 두 발로 쉼 없이 달리며 심장 박동을 느끼고 달린 후의 상쾌함이 좋았는데, 확연히 낮아진 콜레스테롤 수치를 보니 달리기의 과학적, 의학적 효능까지 더해져 더 큰 동기가 부여된다.

그저 기분 좋은 감정과 느낌뿐이었던 달리기가 과학적 신체운동으로 진화한 것 같다.


최근 날씨가 춥고 일출시간도 늦어지면서 아무래도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단 10여분 만 뛰면 온몸에 피가 돌고 열이 난다.

몸은 정직하다. 뛰는 만큼 더 오래 잘 달릴 수 있다.

추워서 뛰지 못할 혹한이 올 때까진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운동 중에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달리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저 뛰기만 하면 되는 무척 간단한 운동인데 첫 결심이 의외로 쉽지 않다고들 한다.

마냥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단순한 메커니즘이라 재미없고 따분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혹은 달리면 무릎이 망가져 고생한다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달리기를 아예 쳐다도 안 보는 분도 봤다.

고작 달린 지 1년도 안 된 내가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없겠지만 그 말에 현혹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단 뛰어보고 그만둬도 늦지 않다.

한번 뛰어보면 생각보다 그 매력이 대단해 멈출 수 없을지 모른다.

달리고 싶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km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는 이런 글도 남겼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자,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다시 한번 뛰어볼까.

나 역시 신호등에 멈춰서지 않는다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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