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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Nov 21. 2023

맞벌이의 비애...아이가 아프면

10월 26일 OOO 소아과 방문 / 편도염, 목 붓고 밤에 고열.

이후 일주일간 유치원 안 가고 집에서 요양.

11월 4일 OOO 소아과 2차 방문 / 이번엔 콧물이 나고 기침. 기침이 한번 나면 멈추지 않음.

11월 13일 OOO 소아과 3차 방문 / 빈도는 낮아졌지만 기침이 계속됨.

11월 19일 현재 / 여전히 기침이 한번 터지면 2~3회 반복. 다시 소아과에 가야 하나 고민 중.


유치원 다니는 막내의 올 겨울 감기 일지다.

감기가 정말 안 나았다.

특히 막내의 폐를 찢는 듯한 탁한 기침 소리를 들을 때면 너무 가슴 아팠다.


아이가 많이 아플 때는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게 맞다.

아내와 나도 이번에 막내가 고열에 목이 너무 아픈 듯해 일주일 통째로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감기가 3주가 훨씬 넘도록 낫지 않을 줄 몰랐다.

집에 막내가 하루 종일 있으니 맞벌이 부부인 우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너무 힘들었다.

보육기관인 유치원에 가지 않으니 돌봐줄 사람은 없고 쥐어짜 내듯 어찌어찌 겨우 일주일을 견뎌냈다.

어느 정도 나았다고 생각해서 다음 주 막내를 유치원에 보냈는데 이번엔 콧물이 나고 기침을 시작했다.

아... 어떡하지?

고민 끝에 막내를 유치원에 계속 보내기로 했다.

일단 상태가 호전됐고 무엇보다 지난주에 이어 회사일을 하며 다시 막내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완전히 낫지 않은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미안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막내는 계속 기침, 콧물이 나고 감기가 도저히 낫지 않았다.

한 번은 주말, 또 한 번은 오후 늦게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소아과를 더 갔다.

엄마 혹은 아빠 손을 잡고 온 어린 감기 환자들이 정말 많았다. 1시간 이상은 기다려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항생제를 포함한 약을 받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막내에게 먹였지만 그다지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기침은 계속 됐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다.

뭔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감기가 안 낫는 거지?

막내에게 물었다.

"유치원에 감기 걸린 친구들 많아?"

막내는 "음... 몇 명 빼고 다 감기야"라고 말했다.

막내가 감기를 옮긴 걸까 싶어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소아과에서 본 것처럼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던가.

이미 유치원은 감기 바이러스가 득시글거리는 소굴일 가능성이 컸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서로 바이러스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감기가 떨어질 틈을 주지 않는 게 아닐까.

바이러스들의 이합집산 교류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겨나지 않는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1년 전 스웨덴 시한부 거주자일 때 유치원, 국제학교 입학식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한 말 중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아프면 아이를 학교에, 유치원에 보내지 마세요.“

이런 부탁은 코로나19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은 강력한 방역정책 대신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집단면역을 추진하며 2022년 초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포스트 코로나를 선언한 나라다.

집단면역은 구성원 상당수가 감염으로 항체를 가져 더는 유행병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다.

스웨덴은 코로나 유행 초창기부터 종식 때까지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닌 자율이었다. 정부는 기껏해야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을 뿐이었다.

집단면역에, 마스크 착용까지 자율에 맡겼던 스웨덴에서 아프면 아이를 보내지 말라고 강조하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실제 스웨덴 유치원과 학교는 아이가 조금 아픈 듯 보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를 데려가라고.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십중팔구 아이가 아프니 얼른 데려가라는 확률이 컸다.

이 때문에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기 전 아이가 아프면 학교에서 전화가 올 정도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약간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아이가 등교, 등원하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아이를 데려가라고.

그렇게 전화를 받다 보니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전화가 올 만한 상황과 오지 않을 만한 상황 말이다.

이건 우리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다른 학부모에게도 모두 적용됐다.

아이가 아프면 보내지 말라는 말 속에는 당연하게도 내 아이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입거나 호흡기 질환 등의 감염이 확산하거나 (기침을 많이 할 경우) 수업에 방해될 수 있으니 집에서 데리고 있으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코로나 집단면역의 나라에서도 나름대로 철저한 감염 예방, 분리 정책을 펴왔던 게 아닐까 싶었다.

 

스웨덴에서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육아휴직자였고 아내 역시 연수자 신분이라 학교나 유치원의 예기치 않은 아이 귀가 요청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전화가 오면 대부분 5분 대기조처럼 학교로, 유치원으로 달려가서 아이를 받았다.

그런데 현지 학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받을 수 있을까.

스웨덴은 성인 여성의 취업률이 80%에 육박해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일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현지 부모들은 육아휴직자인 나처럼 일과시간에도 아이들을 잘 데리러 왔다.

이 사람들 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루한 기다림'...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아동병원 대기실

올해 초 스웨덴에서 아내는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 팔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둘째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동네 병원 초진 후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서 의사 문진을 받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각각의 과정마다 장소를 옮겨다녀야 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받아든 엑스레이 결과지를 가지고 다시 의사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장장 3시간을 대기한 뒤 병원 측으로부터 들은 말은 "오늘 더는 진료를 볼 수 없으니 내일 다시 오라"였다.

아내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조차 안 나왔다고 했다. 그러려면 진작에 알려주든지.

100% 공공인 스웨덴 선진 의료의 고구마같이 답답한 대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다음 날 오전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시 갔다.

어제 함께 기다리며 함께 퇴짜를 맞아 동지애를 느꼈던 다른 부모와 아이도 와 있었다고 했다.

우린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상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이틀 연속 병원에 온 스웨덴 부모는 회사도 안 다니는 건가.

회사를 다닌다면 자주 사무실을 비울 수 있는 여건인가.


한국에 돌아와서 막내는 유치원에, 첫째 둘째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스웨덴처럼 '아이가 아프면 보내지 마라'는 말을 의무사항처럼 듣지 못했다.

물론 아이가 많이 아프면 학교나 유치원 측은 아이를 데려가라고 연락하거나 그 전에 부모가 자체 판단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다.

문제는 많이 아프거나 아프지 않은 상태, 그 중간쯤 어딘가다.

맞벌이 부부는 웬만큼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 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매번 휴가를 낼 수도 없고 일을 제쳐두고 집에 오기도 쉽지 않다.

한국에서 회사원 대부분은 아이가 아프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죄인이 된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도 어쩌다 한 번은 모르겠지만 거듭되면 눈치가 보인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 자체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지만 한편으론 이걸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편이 낫다.

어쩌면 잠시 부모의 책임을 내던지고 유치원에 아이를 떠넘기는 것과 같다.

유치원도 이런 부모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과 아이 친화적이지 않은 노동환경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프면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는데 아이는 누가 볼 것이며 그걸 알기에 웬만큼 아프지 않고선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스웨덴과 달리 아픈 아이에 대한 명확한 등교, 등원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 게 아닐까 나 홀로 생각해 봤다.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아동병원

스웨덴 유치원과 학교에서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 돌봐야 한다.

그건 부모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학교에서 감염 등의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는 조치다.

그 전제는 아이가 아프면 일과 중에라도 일터를 벗어날 수 있는 근무환경이나 유연한 노동시간이다.

그래야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려올 수 있을 테니.

병원에서 3시간을 기다린 뒤 진료 퇴짜를 맞고도 다음 날 다시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 진료 받을 수 있는 사회.

아이가 아플 때 전화 한 통만 하면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회.

그렇기에 입학 때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아프면 아이를 보내지 마라'고 자신 있게 당부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 기준 세계에서 6번째 행복한 나라, 스웨덴 보육의 한 단면이었다.


세계에서 57번째 행복한 나라 학부모로서 건강보험제도와 공립·민영이 조화를 이룬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진 의료 체계를 누리고 1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저렴한 비용으로 당일 소아과 진료와 처방약까지 받을 수 있는 건 분명 복이고 행운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까지 느낀다.

허나 그 당당한 자부심에도 회사원으로서 평일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기는 결코 쉽지 않아 행여 아침마다 곤이 잠든 아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곤 한다.

환절기나 겨울철, 수두룩한 꼬맹이 감기 환자들과 하루 종일 생활하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든다.


병원 진료는 더디지만 아이를 이유로 업무에 융통성이 있는 사회, 진료는 빠르지만 시간 빼기 힘든 사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음... 진료도 빠르고 업무와 근로시간의 융통성도 있는 사회 어디 없을까.

안타깝게도 스웨덴도 한국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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