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기도
미국의 연방정부가 부채한도 협상을 하는 동안 이번 달은 관련 뉴스로 뉴스레터 메일함이 가득 찼습니다. 미국이라는 슈퍼파워의 디폴트를 놓고 긴급속보부터 팟캐스트까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디폴트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났지만 앞으로 미국경제, 그리고 세계 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입니다.
저번주 미국대통령 조 바이든과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의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Fiscal Responsibility Act of 2023"이라는 이름으로 6월 1일에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그 결과, 2025년 1월 1일, 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부채한도를 유예하며 1월 2일부터 새 부채한도를 조정하여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미국은 헌법에 부채한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끌어 쓸 수 있는 돈을 법으로 정해놨는데 이제 나라에 현금이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이 파산한다니 생경한 이야기 같지만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 때도 엄청난 파산위기가 있었습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16.39조 달러의 부채한도를 찍고 파산위기에 갔었지만 미국 납세자 구제법 "American Taxpayer Relief Act of 2012"를 제정하면서 미국에 한시적으로 재정적 여유를 주게 되어 디폴트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난리라 부채한도 한번 올리는 것이 엄청난 일 같지만 31번째 대통령 때부터 모든 대통령은 부채한도를 조정하였습니다. 이 한도가 100번 정도 올라갔다고 하는데 바이든은 36번째 미국 대통령입니다.
미국의 부채는 현재 31조 4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는 2011년 15조 달러의 두 배에 달하며 올해 1월에 이미 31조 달러에 달해서 내무부에서 이미 '이러다가 우리 이제 파산한다'라고 경고를 날리고 있던 상태였으나 지난 4달간 협상이 지지부진했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협상과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부채에 고조된 상황과는 다르게 이미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전부터 우리는 디폴트를 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서사한 바 있습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도 디폴트를 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본인들의 양보라는 식으로 밝혔으며,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는 1일에 "We are not defaulting"이라고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솔직히 본인들이 가장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데 잘 돌아가는 나라를 파산시킬 이유는 없겠죠.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양극화되어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줄다리기에 모두가 마음을 졸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본인들이 연방정부와 민주당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였다며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시사하였으나 결론적으로는 통과하였습니다.
애초에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일정기간 동안 없애는 대가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에너지와 채석 관련 프로젝트 허가 완화
- 300억 달러 코로나 관련 잔여 지원금 회수
- 의료지원 프로그램 "Medicaid" 자격요건 강화 - 자녀가 없는 성인에 한해서 일자리 혹은 트레이닝 필수
- 급식카드 "food stamp"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근무조건 변경
- 2024년 연방정부 재정을 2023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
- 인플레이션 감소 방지법에 포함된 전기차 세금혜택 조건 재검토
현재 "Fiscal Responsibility Act of 2023"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운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 허가 타임라인 완화
- 급식카드 정부지원에 해당하는 계층에 업무 요구조건 강화. 현재 자녀가 없는 18-49세 정부지원을 받는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50-54세까지 포함, 2023년 회계연도부터 적용
-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국세청을 강화하고자 민주당이 배정한 14억 달러의 자금을 철회하고 향후 2년 동안 200달러의 예산의 용도를 변경할 것
- 대출자 구제를 위해 도입한 학자금 대출상황 동결 취소
- 연방정부에서 사용하지 않은 코로나 지원금 300억 달러 회수
미봉책을 내놓으며 당장 닥친 위기 파산위기는 넘겼습니다.
부채상한선 협상과 앞으로 미국경제에 관해서 애널리스트들과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갈리고 있습니다. 그중 주류의견은 부채협상 자체에 관하여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국가의 부채한도의 상승이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의 대출을 어렵게 하고 경제성장을 침체시키며, 그리고 빠른 인플레이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태를 보며 2008년의 경제위기에 인용된 "Too big to fail"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은 2008년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인해 리먼 브라더스를 포함한 수백 개의 금융 회사와 은행을 구제하였습니다. 비록 실패한 부동산 시스템을 만든 은행들의 문제였지만 이 모두가 한꺼번에 붕괴되었을 때의 효과가 매우 컸기에 미국 연방정부는 이를 구제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남겨진 건 부동산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집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일반 미국 시민들과 이로 인해 타격을 입은 해외 기업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법안은 일단 부채한도를 유예하면서 파산은 하지 않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부채가 생긴 이유는 소비가 세수보다 크기 때문인데 공화당은 일단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협의안에서 세금 확보를 위한 국세청의 예산을 다시 줄인 것을 포함하여 공화당이 기업에 대한 세금 삭감을 위한 정책을 다시 지지할 것으로 보여 부채한도의 문제는 머지않아 다시 재조명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의 인허가 타임라인을 줄이겠다는 것도 추후 갈등의 전초선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반면, 공화당은 화석연료와 친환경에너지를 모두 포함시키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추후에 화석연료와 관련된 지속가능발전 정책과 관련하여 갈등을 빚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부채에 대한 이자도 소비의 일부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기준, 미국 정부는 8%의 예산을 이자 지급에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꽤 큰 금액입니다.
미국정부의 부채인 재무부 어음 및 채권은 국제 은행 규정에서 위험 가중치가 0에 수렴하는 안전 자산입니다. 외국정부와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7조 3천억 달러의 미국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시장에서 재무부의 약 30%의 재산에 달하고 그 중 일본과 중국은 총 2조 달러 상당을 보유한 미국 정부 부채의 가장 큰 외국 투자자입니다. 만약 미국 재무부가 정말 파산을 했다면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져 두 국가의 경제상황에도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 위험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죠.
일본정부에서도 그 우려를 표해왔으나 그와 다르게 중국은 미국 부채와 관련하여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think-tank Atlantic Council은 미국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위험은 코로나 이후 중국의 취약한 경제 회복에 특히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중국은 청년실업률의 급등과 디플레이션의 위험 증가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국제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많은 학자들과 미디어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때문에 중국이 피해를 입는다니 의외이지만 이를 통해 세계 경제가 연쇄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경제에 폭탄을 떨어트릴 뻔했던 미국의 부채한도 드라마는 한시적으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며 부채상황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달러가 입지를 잃어간다 한들 대체로 여겨지는 유로화와 위안화는 여전히 뒤떨어져있습니다. 미국의 부채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부채상한선 드라마는 미국 달러가 가진 막강한 힘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킬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참고문헌
https://www.cfr.org/backgrounder/what-happens-when-us-hits-its-debt-ceiling
https://edition.cnn.com/2023/05/25/economy/japan-china-us-debt-default-intl-hk/index.html
https://www.nytimes.com/2023/05/29/us/politics/debt-ceiling-agreement.html
https://www.congress.gov/bill/118th-congress/house-bill/3746
https://www.whitehouse.gov/cea/written-materials/2023/05/03/debt-ceiling-scen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