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식 이야기
람프레도또(Lampredotto).
우리나라에서 곱창버거 또는 내장버거로 알려져 있는 이 음식의 정확한 명칭은 람프레도또 빠니노(Panino al lampredotto)이다.
피렌체 사람들에게는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고, 관광객들에게는 피렌체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재미난 먹거리이지만, 나에게는 눈물 젖은 빵이자 추억을 더듬어 먹는 영혼의 푸드이다.
학생으로 시작한 내 피렌체 살이에서 일주일에 4-5번은 람프레도또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까이 있었고 또 좋아했다.
람프레도또가 무엇인가.
소의 네 번째 위인 ‘막창', 위산이 분비되는 가장 중요한 소화기능을 하는 부위이다. 내가 자주 가는 독산동 단골집 사장님께는 ‘홍창’이라고 말해야 내어주신다. 소의 막창과 돼지의 막창은 다른 부위이기 때문에 용어를 달리하는 모양이다.
이 홍창은 한국의 슈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는 어느 마트에 가도 살 수 있다. 대부분 익힌 채 진공포장되어 육류코너에 진열되기 때문에 냄새도 거의 없다. 아무튼 소의 대장이나 똥 들어있던 곳은 아니니 기분 좋지 않은 상상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요리 프로에 자주 출연하시는 백사장님이 시칠리아에서 드신 내장버거는 람프레도또와는 다른 부위로 만든 것이다. 람프레도또(막창 또는 홍창)는 피렌체에서만 먹는 재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피렌체의 3대 음식으로 Bistecca alla Fiorentina(피렌체식 스테이크), Pappa al podomoro(심플한 토스카나 빵을 넣어 만든 토마토 수프), 그리고 Panino al lampredotto(곱창버거)가 있는데, 내 일 순위 메뉴는 두말할 것 없이 람프레도또이다. 내게는 메디치 가문이 도시 밖으로 못 가져나가게 하는 조건으로 피렌체 시에 기증한 우피치의 그림들과도 같은 존재랄까.
람프레도또의 어원인 람프레다(lampreda)는 이탈리아어로 '칠성장어'를 뜻한다. 영국왕 헨리 1세도 반해서 너무 많이 먹다 돌아가셨다는 이 귀한 칠성장어의 이름을 붙여 "육지의 칠성장어" 람프레도또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농업이 융성하고 소를 귀하게 여겨온 토스카나에서는 이 내장으로 만든 음식을 중세시대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언제부터 피렌체 노점에서 팔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레시피 또한 피렌체 구역별로 다르고, 반케또(푸드트럭) 집들마다 많이 다르다. 옛날 우리 가양주 만들던 것만큼이나 비밀스럽고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걸 집에서 해 먹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2-30대를 피렌체에 살면서 왠 간한 람프레도또 집은 다 섭렵한 나는 잘하는 집들의 맛은 웬만큼 꿰뚫고 있다. 내장을 야채와 함께 삶아내고, 살사베르데(Salsa verde) 소스와 소금 후추를 치고, 매콤하게 먹고 싶으면 페페론치노 오일(Olio al peperoncino)을 첨가하는 심플해보이는 레시피이지만 맛깔나게 만들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한국에 와서 람프레도또를 잊지 못한 나는 홍창을 주문해서 직접 만들어먹기 시작했고,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했다.
빵도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다. 모양 때문에 거북이 빵이라고도 불리는 로제타 빵(Rosette di pane)을 사용하는데, 소금기와 버터 느낌이 전혀 없어 그 맛이 볼품없게도 느껴지는 전형적인 토스카나 빵이지만 소스나 짠 음식들과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담백함에 반하게 되면 또 답이 없다.
손바닥만 한 빵의 배 속을 파내고 그 안을 소의 배 속 고기로 채워 넣는 것, 그리고 내 배고픔을 위해 그 음식을 먹고 나의 배 속 내장을 불린다는 것, 람프레도또는 지구의 에너지 사이클과 아주 밀접한 지구 순환적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람프레도또는 다른 빠니노들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람프레도또가 그로테스크한 음식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햄버거랑 레드와인이 잘 어울리는가?
참치 샌드위치와 스파클링 와인이 당신이 원하는 죽이는 페어링인가?
람프레도또는 심플한 키안티 레드와인과 먹어도, 산미 좋은 화이트 와인과 먹어도 다 좋다. 이 내장으로 만든 빠니노만큼은 그래도 와인이랑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맥주도 안된다. 사이다도.
코카콜라는 양보하겠다. 마실 것 없이는 목이 매이니까.
피렌체에 간다면 람프레도또 하나씩 그리고 와인 한잔씩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