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식 이야기
얼마 전 다녀온 이탈리아 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방문했다. 얼마나 자주 갔나 하면, 올해만 4번째이다.
방문한 날 중 하루는 점심과 저녁을 모두 그 집에서 해결했다. 해결했다고 하기에는 사실 예약이 필수이고, 얼굴도 텄으니 갈 때마다 인사 정도는 해야 하고.
“Sora Maria e Arcangelo”
가게 이름에서 보이듯이 마리아와 아르칸젤로 씨가 시작한 식당이고, 현재는 손자이자 셰프인 조반니 밀라나가 운영하며, 아직도 그의 어머니가 와서 식당 일을 돕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시골 식당의 모습이다.
창립자 부부는 로마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식당 문을 닫았고, 전쟁이 끝난 1949년 즈음 로마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산동네 ‘올레바노 로마노’로 와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손자인 조반니는 처음부터 이 식당에서 일한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셰프로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이 작은 마을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았다. 조반니는 가족의 역사가 있는 식당에서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이 동네와 이 공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이런 고행을 하려고 할까.
이곳의 요리는 단순하지만 미묘하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요리법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있지만, 하나씩 먹어 보면 섬세한 맛의 조화와 창작의 노력이 느껴진다.
메뉴 이름은 매우 길다. 어디에서 온 재료이며 어떤 식으로 조리한 음식인지 나열하는 작명법이다. 이곳의 오랜 단골이자 나와 일하는 와인생산자 알레산드라와 지안카를로도 요리 이름만 보고는 정확히 어떤 맛일지 상상하기 힘든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그럼 당신이 이곳에 가서 음식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어를 완벽히 한들 본인들이 상상하는 음식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어떤 메뉴를 시키더라도 실패는 없을 테니 마음 놓고 시켜보길 바란다.
나는 일단 이 집의 명물 칸넬로니(Canelloni)를 시키고 와인 한 병을 마시며 허기짐을 가라앉힌다. 그러고는 메뉴판을 다시 정독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소믈리에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오늘은 뭘 먹어야 될지 선택을 한다.
돌체(디저트)는 섣불리 시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얼마나 큰 배를 갖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메인요리가 나온 후 상태를 보고 시키길 바란다. 그런데 난 무조건 시킨다. 상상하지 않고 재료만 보고 일단 시켜본다.
난 아직도 이 집 음식을 연구 중이다.
와인리스트는 사실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이 모든 매력에 반해 가지 않아도 될 이 지역을 일부러 들러 식당을 방문한다.
운전을 해야 돼서 또는 음식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런 이유들로 와인을 소비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이곳 음식에 와인이 빠진다는 것은 아메리칸 피자에 콜라나 맥주가 빠지는 거랑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셰프와의 기념사진은 갈 때마다 버릇처럼 찍어내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유명인 사인받는 거랑 같이 셀카 찍어 올리는 거였는데, 웃기는 일이다.)
가족 형태의 비즈니스로도 볼 수 있는 이런 좋은 트라토리아 문화가 음식에 진심인 한국에서도 잘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식당을 소개해 준 올레바노 로마노의 와인 생산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