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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포 오 May 26. 2023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 와인 시장을 어떻게 바라볼까?

2023년 상반기 와인박람회 출장기


올해 2월에서 4월은 출장의 연속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어 컨벤셔널 와인과 내추럴 와인 시장을 살펴보기 좋은 비니탈리(Vinitaly)와 빈나투르(Vinnatur)는 이탈리아 와인을 한다면 빠질 수 없는 박람회이다. 올해는 자주 가지 않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내추럴 와인 페어들도 모두 참가해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간 김에 소도시들 구경도 하고 왔다.


내추럴 와인 페어(소규모 생산자 페어)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작년을 끝으로 올해는 아시아 관계자들이 안 보인다고 생산자들이 입을 모아 볼멘소리를 한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와인 시장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 신규 진입이 적은 영향이 있겠고, 한국의 경우는 현지 에이전트들이 활동하여 와인을 셀렉하거나, 혹은 수입사들이 트렌드를 따라 다시 컨벤셔널 와인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와인 시장이 형성되는 중이라 경험적은 수입업자들이 내추럴 와인까지 신경 쓰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만난 중국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줄 내추럴 와인 전문가를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들보다 조금 일찍 내추럴 와인을 도입한 한국의 경험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프랑스 지방 도시에서 개최된 와인 페어들. 박람회장뿐만 아니라 마을회관, 동굴 등 특색 있는 장소가 행사장으로 활용되었다.



대학에서 와인을 배우던 시절 나는 와인 마케팅 수업을 좋아했다. 와인 마케팅에서의 주요 논제는 <시장에 어떤 타입의 와인들이 수입(수출)되느냐>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트렌드는 아니지만 각 시장의 특성을 볼 수 있어 통계가 나오면 가장 눈여겨보는 자료이다.


올해 비니탈리에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와인 매거진(이탈리아와인조합 발행)에서는 아시아 와인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통계와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 몇 년 간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하는 와인 중 레드 와인이 80% 이상 비율을 차지하던 것이 무너지며, 한국의 경우 레드와 화이트(로제는 레드로 남겨둔다) 비율이 거의 같아지고 있고, 중국도 화이트의 비중이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인 수입의 역사가 긴 일본은 제외하겠다.


자국 생산 와인의 6-70%를 해외로 수출하는 이탈리아에서, 이미 손꼽히는 와인 소비국이 된 중국과 와인 수입이 급증하는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세계 3대 와인박람회 비니탈리의 회장이 이탈리아 와인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세계 주요 와인소비국 트렌드를 상세히 분석한 이탈리아 와인 매거진. 1면부터 한국의 와인 트렌드를 언급하고 있다.


한국 와인 시장을 다룬 이 기사를 보고 좋지 않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2007년 나는 카메라 한대로 와인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피에몬테의 가비 와인을 만드는 유명 와이너리 오너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오로지 화이트 와인만을 만들던 그 와이너리의 오너는 내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넌 어느 나라 출신이고, 이 다큐를 어디에 보일 계획인가?”


“나는 한국 출신이고, 이 다큐를 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이 목표다.”


“레드 와인만 수입하는 나라에서는 내 와인을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니 거절하겠다. 그리고 충고하건대 너희 나라 사람들은 매운 것을 많이 먹는데 레드 와인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화이트는 맛보지도 않는 나라에 특히나 내 비즈니스가 없는 나라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


와인업계에서 동양인으로 일하며 셀 수 없는 차별과 텃세를 겪었지만 한국을 노골적으로 폄하한 그의 발언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의 와인은 현재 대형 수입사에서 들여와 비싼 가격으로 한국에서 팔리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와인은 부잣집 도련님이 마셨다가 들여와봐라 해서 한국에 들어온 거라고 하니 끼리끼리 논다가 갑자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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