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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Jun 26. 2023

0. 퀴어로 살아가기

대한민국에서 퀴어로 살아간다는 것

 

지금 이 나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다소 특수하게 주변에 앨라이들이 많고, 성소수자 지인들이 많다 해도 쉽진 않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동성결혼이 불가능하다. 생활동반자법도, 차별금지법도 없다. 매년 지역별로 한번 있는 퀴어문화축제는 집회신고를 하는 것에서부터 난항을 겪는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근처에서 우리를 죄인이라 호명하며 지옥에 갈 거라고 외친다. 그들의 생각에 동성애는 죄악이고 에이즈는 신벌이다. 그들에게 (항문) 성교를 하지 않는 퀴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비단 이건 일부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다. 퀴어문화축제에는 늘 '문란한' 혹은 '과도한 노출'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은 그저 개개 판사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며 과정은 역시 험난하다. (판사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있지도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비수술 트랜스젠더에게 성별정정은 하늘에 별따기에 가깝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제도상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성소수자는 얼마나 될까? 가족이 아니라 친척,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그 외에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며 상호작용하는 이들 등등로 범주를 바꿨을 때 과연 100%가 나오는 집단이 있을까? 없다. 

 하다못해 같은 성소수자 내에서도 혐오는 존재한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 뿌리 깊은 이성애중심주의(나아가 유성애중심주의), 성별이분법, 연애 정상성에 얽매여 있다. 지금 이 사회에서는 시스젠더-모노아모리-헤테로로맨틱-헤테로섹슈얼-바닐라만이 정상이다. 


 당장 나만 해도 학과나 초/중/고등학교 동창들, 가족, 친척 등등의 대부분 집단에서 나의 퀴어성을 공개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런 공간에 가면 벽장 안에 있으며(이전보다는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누군가 강제로 문을 열고 끄집어내진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중에 글로 쓸 일이 있겠지만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에게 무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면전에서 "그건 아니지." 란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혐오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혐오 집회를 열고, 노골적인 모욕을 주는 것만이 혐오가 아니다. 정상성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며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혐오다. 혐오는 주로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일어난다. 성소수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상하고 특이한' 것으로 취급된다. 명백히 존재하지만, 너무 쉽게 사회에서 지워져 버린다. 이것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며 나와 같거나 다른 퀴어들의 일상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상인들에 비해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을. 하지만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크고 작은 혐오들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승리의 날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은 승리들이 언젠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써 내려가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섹슈얼리티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슬픈 이야기도, 분노하는 이야기도, 연대하는 이야기도, 웃긴 이야기도, 어설프고 미숙한 이야기도 모두 담아내보려 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나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그리고 어느 날 방황하는 미래의 나에게 자그마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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