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기말고사 끝 무렵이 되니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아서 쓰러져 잔다.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고개를 든 채 자는 아이도 있다. 엄마가 되어 이런 아이들 모습을 보자니 너무나 안쓰럽다. 차라리 어디 누워서 제대로 등이라도 펴고 자면 좋을 텐데... 그런 공간까지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 기분까지 든다. ‘공부하기 힘들지? 하루 이틀이면 이제 끝이다. 힘내라.’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다.
그렇게 시험 기간이 반짝 지나고 나면 남는 손님들은 이제 공부가 주업인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인 사람들.
기본적으로 좌석을 채우는 것은 역시 수능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대한민국 사람이 12년에 걸친 정규교과과정 끝에 보게 되는 큰 시험, 하늘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올스톱 시킨다는 그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아무래도 현역인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준비하다 보니 스터디 카페 정기권에는 재수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수업이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자리에서 맞는 인강을 골라 들으며 공부하는 학생도 꽤 있다. 나도 고3 때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했다. 학원에서 80% 이상은 다 아는 내용까지 듣고 앉아있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 출제 경향이라는 게 계속 바뀌는 지라 그때의 방법이 지금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정부에서 킬러 문항 배제한다는 조치가 공식적으로 나올 정도로 학원들의 예상 문제 뽑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하니, 그런 학원을 다니는 게 더 이득일지도?
두 번째는 각종 시험과 자격증을 준비하는 성인 회원들이시다. 챗GPT가 나온 후 AI 발전으로 인한 공포에 사로잡혀서 관련 서적이며 유튜브를 들이 파던 시기가 있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AI로 인해 직업의 안정성은 완전히 떨어진다.
대체되는 직업군도 많아진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늘어난다.
그러므로 평생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직해라.>
이런 빌어먹을! 거기 앉아서 그런 소리 하는 너님은 공부가 취미인 교수고 머리도 좋은 세계적인 석학이니까 그렇게 그냥 닥치는 대로 새로운 거 공부해도 다 손쉽게 좋은 결과받고 먹고살겠지만, 세상엔 안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거든요?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더 많은데 평생 공부하고 평생 직업교육 받아서 평생 이직하며 살라니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올 이야기인가요? 직업의 안정성은 주거의 안정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거든요? 나는 분노에 차서 외쳤지만 그런 사회는 사실 이미 시작된지 오래이고 스터디 카페에는 공부하는 성인 회원분들이 늘 있다.
공무원 시험은 오픈 초에는 준비하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확 줄었다. 각종 기사 자격시험이나 투자자격증, 간호사, 간호조무사 자격증 준비하는 분들이 눈에 띄고 공인중개사 시험도 많이들 준비한다. 이분들이 공부하는 뒷모습에서는 반드시 붙어야 한다는 비장미와 사회인의 피곤이 함께 느껴진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이 <자격증>을 최종적으로 받지 못하면 그 노력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수능시험을 칠 때에는 수능만 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인생에는 시험을 쳐야 하는 순간이 늘 있고 모든 시험은 그날 하루에 결과가 결정이 난다. 그리고 처음에 말한 대로 AI의 발전은 이런 자격증 시험, 이직 준비를 더더욱 부채질하겠지.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보자면 사실 장기로 공부하는 회원이 있으면 좋다. 정기적으로 장기권을 끊어주니까 어느 정도 보장된 수입원이 되기도 하고, 길게 공부하는 성인 회원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잡아 주어야 어린 학생들도 슬금슬금 눈치 보며 공부하니까.
그러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쭉 장수생 손님으로 오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공부는 끝이 없다지만 그건 도서관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찾아보고 유튜브와 구글에 질문해 가며 하는 진짜 공부 이야기고, 스터디 카페에서 하는 공부는 끝이 있어야 한다. 이 공부는 모두 목표값이 명확하고 목표를 달성하거나 실패하거나 하면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성공을 빌어줘야지.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당연히 좋은 결과 얻어야지. 이곳에서 공부한 회원분들 모두 시험 잘 쳐서 한방에 합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