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빼곤 안 훔쳐간다는 대한민국이지만 훔쳐갈 건 훔쳐간다.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홍석천은 처음 개업했을 때 마련했었던 고급 커트러리 세트가 삼 개월 만에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가게 앞에 화분을 내어놓았더니 밤 사이 다 없어졌다는 미용실 사장님의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린다.
사실 스터디카페는 훔쳐갈 것이 별로 없다. 비치된 비품이 별 것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자기 뇌를 쥐어짜며 혼자 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용자들은 기본적으로 각자 자기 공부 관련 물품은 알아서 챙겨 온다. 스터디 카페에 비치된 것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간식, 커피믹스와 아이스티, 독서대, 그리고 멀티 충전기 정도다. 노트북은 혹시나 훔쳐갈지도 싶었는데 출력과 간단한 인터넷 서핑만 가능할 수준의 싸구려 보급형을 가져다 놓았더니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종이를 훔쳐 가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스터디 카페에는 손님들이 오가며 문서 출력을 할 수 있도록 보급형 노트북과 프린터기, 그리고 출력용 A4용지가 비치되어 있다. 그 아이는 그중 A4 용지만을 집어가기 위해 오는 아이였다. 스터디 카페 출입 기록을 살피던 중, 이상하게도 입실하고 5분 이내로 퇴실해 버리는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물함을 쓰기 위해 시간권을 결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앞 미용 학원을 다니며 관련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사물함만 쓰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CCTV를 살펴보니 키오스크를 누르고 들어와서는 냉큼 종이만 한 뭉치 집어 들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바로 출입 차단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그 종이를 왜 들고 갔는지 물을 기회를 놓쳤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아이는 한 번도 들어와서 공부하지 않았고 애초에 책가방조차 들고 오지 않았다. 오로지 새하얀 A4용지만을 집어 들고나갔다. 요즘 아이들이 공부할 노트가 부족할 리도 없는데 그걸 들고나가서 과연 무엇에 썼을까.
커피 믹스라든가 아이스티 믹스를 집어가는 것은 어느 정도 각오한 바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중, 고등학생들은 아이스티를 엄청나게 마신다. 한 번에 네 개씩 때려 부어서 먹는다.) 사실 믹스 한두 개는 운영에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 시간당 천 원짜리 스터디 카페의 운영에 타격을 주는 것은 멀티충전기 분실이다.
요즘 학생들은 핸드폰은 물론이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사용도 필수다. 때문에 처음 오픈 당시 멀티 충전기를 20개 사서 비치해 두었는데 어느 날 세어보니 10개 정도만 남아있었다. 두어 개는 누군가의 사물함 안에 들어갔을 것이라 짐작하더라도 나머지 8개는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이 멀티충전기는 코드 하나에 핸드폰 C타입 2개, 아이폰용 하나 8핀 하나가 달린 것으로 한 개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반복하며 시험 기간에 중, 고등학생들이 몰릴 때마다 비치해 둔 충전기의 반 정도가 사라졌다. 나는 중학생일 거라 했고 남편은 고등학생일 것이라 했지만 실제 도난 현장은 한 번도 잡지 못했다. 다만 그다음 구매 때는 멀티충전기 겉면에 크게 써 붙였다. [훔쳐 가지 마시오!]
하지만 과연 핸드폰, 에어팟, 카드지갑은 훔쳐 가지 않더라. 아이들은 청정 지역 대한민국에서 자란 이들 답게 책상 위에 태블릿, 노트북은 물론이고 지갑이며 에어팟도 그냥 두고 다닌다. 요즘 아이들은 하나씩 다 갖고 있다는 명품 브랜드 카드지갑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어 당황한 내가 책 아래로 숨겨준 적도 있다. '너희들 그대로 외국 나가면 큰일 당한다.' 예전 유럽에서 가방 째 탈탈 털린 적 있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보지만 어쩌랴, 그들은 자전거 빼곤 아무것도 훔쳐가지 않는다는 이 땅에서 자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