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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원장 Feb 14. 2024

박재혁 _1

짝사랑과 불륜의 사선에서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슬프지 않았고, 부자친구들을 부러워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초등학교시절 장미맨션에 사는 부유한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친구랑 딸기 먹을래."

금세 정갈한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담겨 거실 응접실에 놓였다. 괜스레 시큰둥하게 먹었지만, 어린 맘에 부럽고, 분이 났다. 새빨간 딸기가 왜 그리 달던지.


몇 해 후에 세상 모든 여자아이들은 부츠신기대회를 하는 마냥 길바닥 신발들이 다 길쭉길쭉한 가을이었다. 그러나 내 신발만은 발목에 걸린 시장브랜드 운동화였다. 그래도 난 엄마에게 입도 뻥끗 안 했다. 왜냐!! 괜찮았다. 그까짓 거. 도덕시간에 물건은 비싼 것보다 깨끗하고 용도에 맞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배웠고,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까짓 부츠 없어도, 나는 세상이 만만했다.


그러나 첫 시련은 16살에 찾아왔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아빠가 대학 보내기를 포기하셨고, 실업계로 가기를 원하셨다.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엄마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

"제발, 인문계 가게 해 줘, 엄마. 제발"

엄마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늘 큰소리 뻥뻥 치던 허풍스럽던 아빠는 그날만은 불쌍한 목소리로 대학을 보내지 못하는 가난하지만 착한 아빠를 연기하고 있었다. 가증스러웠다. 울어도 소용없는 일임을 나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내겐 힘이 없었고, 실업계로    진학했다.

그렇게 인생이 갈림아래로 향했다.


다행히 장학금을 받았고, 3년 후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딸기처럼 싱그러운 20살, 싱그러운 청춘을 잊고 기계처럼 일했다.

끊이질 않는 전화를 받아 응대하고 컴퓨터화면을 보며 직원들의 거친 문의와 요구를 분주하게 처리한다. 본사의 지침에 따라 전국적으로 동시에 운영되는 실시간 시스템을 이용해 정확한 차종과 칼라를 순서대로 입력하고 생산라인을 확인한다. 최단시간에 출고가능한 코드를 뽑아 고객을 유도하고, 출고일을 받아 울산공장으로 기사를 보내는 일련의 일들을 기계처럼 해 나갔다.

나름 책임감 있고 비중 있는 보직을 맡았고  받는 돈에 상응하는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젊음을 기계부품처럼 돌리고 돌리며  좋은 아침이라고 억측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세뇌시켰다.

"계약서 주시고요, 코드 미리 적으시고, 이 색상 안 나와요, 고객 설득하시고요. 선루프옵션 넣으면 이번주 나와요. 예! 예! 오케이. 잡았고, 수요일 출고합니다!!"


입사 후 두세 군데 지점을 옮겨 발령을 받았다.

그를 만난 건 입사 5년 정도 되었을 무렵, 공항 근처 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5살, 이 얼마나 사랑만 할 때인가?

그래서 사랑을 쉬지 않고 했다. 그 당시에는

조인성을 닮은 신입사원과 연애 중이었다.

비주얼이 정말 최상이었고, 외모에 비해 착한 성품을 가진 연애초짜였다. 매일 출근이 즐거웠고, 퇴근 후 바로 데이트가 시작되는 굉장히 가성비 좋은 연애를 사내에서 비밀리에 이어가고 있었다.


진짜 그는 이제 등장한다.

그는 그 지점 과장으로 새로 발령을 받아왔고, 제주에서 온 분이셨다. 과장이라 함은 으레 그렇듯이 40대 정도이고, 유부남이다. 젊은 아내와 어린아이의 사진을 책상 앞에 세워둔다. 눈에 빛이 점점 사라지고 얼굴거죽이 점점 칙칙해진다. 마시다 남긴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연신 담배를 비벼 끄며 다른 커피를 털어 넣는다. 담배와 믹스커피가 그들의 생명을 중독시킨다. 그들에게 이곳은 아편굴이다.

지점장과 영업사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느라 늘 줄담배를 피워야 하는 스트레스가 큰 보로 제주분이 오셨다.


어린 나에게 그는 그냥 아저씨였고, 안쓰러우면서도 성가신 상사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그랬다.

월말마감으로 업무과직원 전체가 늦게 까지 야근을 하고 늦은 밤에 다 같이 계단을 내려와 퇴근하는 참이었다.

그가 어두운 밤, 낡고 어둑한 가로등 불빛처럼 초췌한 낯빛으로 기운 없이 내뱉는다.

"아 진짜 피곤하네. 집에 가면 애 봐야 되는데.. "

나는 그가 제주에서 혼자 대구에 와서 숙소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가족이 모두 왔고 어린아이도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과장님, 같이 술 한잔 하러 가실래요? 승우 씨랑 같이요?"

내가 예의상 가볍게 물었다.

"안돼, 안돼, 우리 와이프 힘들어서 , , "

다정한 말투로 '와이프'라는 단어를 말하는 뉘앙스가 너무 따뜻했다.


낯설었다.

결혼한 남자들이 자기 부인을 타협이 불가능한 극성스러운 존재로 지칭할 때 사용하는 [ 몰라.. 마누라가.. 또..  ]로 시작하는 어조에 익숙해 있던 나였다. 여기는 대구니까.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다정한 말투로 [우리 와이프]라는 단어를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어둔 밤거리로 총총 사라져 갔다.

'좋은 사람인데!! 오'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제주에서 어린 딸 둘을 데리고 그를 따라온 [우리 와이프]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서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했을 아내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성실하게.


작은 체구에 높낮이가 없고 감정이 배제된 정갈한 어투가 아주 이색적인 남자였다.

이 기업의 남자직원들은  천편일률적인 이미지로 고정화되어 있었다.

성급하고 이기적이며  고성을 내지르고 때로 폭력적인 언사를 스스럼없이 행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마초적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조직이었다.

마초세상에서 그는 부드러움을 가진 남자였다.


그가 좀 한가한 오후시간 불쑥 물어왔다.

"지영 씨, 교회 다니지? 성경책 다 읽어 봤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종교는 직장생활에 여러 가지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었고, 서로 조심스러운 화제였다.

"아니요. 아직 다는 읽어 보지 못했어요, 과장님도 교회 다니세요?" 

괜히 좀 부끄러운 맘에 짧게 대답하고 되물었다.

"아니, 교회는 안 다니는데 성경이 궁금해서 군대 있을 때 끝까지 읽어 봤었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청년이 군대에서 궁금증이 생겨 성경 통독을 한다?

그에 대한 이미지가  유별났던 것은 이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25살이었고 그는 40살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지점으로 발 났고 그를 대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가 승진해서 어딘가의 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었을 때, 적성에 맞지 않는 조직에서 분투하면서 결국 지점장의 현판을 획득한 그가 안쓰럽게 여겨졌다.


나는 결혼 후 출산  퇴사를 했고, 11년의 긴 직장생활은 끝이 났다.


다음회->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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