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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원장 Feb 19. 2024

박재혁, 만나기_3

짝사랑과 불륜의 사선에서

제주공항 1번 게이트의  문이 열리고 제주의 7월 여름공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우주 전체의 부피로 나를 감싼다.


 은 아침, 그를 만나러 대구공항으로 간다.

지칠 대로 지쳐서,다시 살아보려고 날아오르던 제주비행길이었다. 지친 일상을 뒤고 하고 도피하던 제주행 비행기가 오늘은 용도를 변경하여  섬사람을 만나러 간다.

렌터카도, 일정도 없이 근처 익숙한 약속장소로 향하듯 공항으로 향한다.


몇 달 전, 그와의 통화는 어색했지만 짧지는 않았다.


카페에서 통화를 하는 동안 창 밖으로 기차가 길게 지나 산 뒤로 사라져 간다.


그렇게 이미 사라져 없어져버렸던 25년 전 기억이 예기치 못한 바늘에 걸려 낚싯대가 휘도록 묵직하게 걸려 올라온다.


수면 아래 잠잠히 유영하던 시간을 지나, 어느날 낚시바들에 입이 물린 물고기는 수면에 가까울수록 펄떡거리는 거대한 몸뚱아리로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파란 바다가운데 하얀 구멍을 만든다.

그렇게 사라졌던 기억들은 하얀 구멍에서 한 끄트머리가 들려 올려, 거대한 몸통이가 송두리째 갑판 위에 놓여 진다.


비늘조각 하나하나가 여름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그의 목소리가 낮은 톤으로 흥분되어 있다.

"지영 씨, 승우 씨랑 사귀고 있었잖아? 사실 직원들 다 알고 있었어. 근데 헤어졌나 보네.

혹시 제주 온 건가 했지. 간혹 제주 와서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하는 동료들이 있거든."


내가 어디인지? 결혼은 누구와 했는지?

그의 질문은 지금의 나와 25년 전의 나를 만나게 한다.


"네, 대구예요. 다 알고 있으셨군요. 네. 헤어졌어요.

결혼은 소장님 모르는 사람이랑 했어요...

오래전인데 저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혹시 기억 못 하실까 봐 걱정했어요"


"그러네, 지영 씨랑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은 기억이 안 나는데, 지영 씨는 기억이 나네."


"제주 여행 오면 연락해. 지영 씨"


그 마지막 말을 붙들고 두 달이 지난 6월 중순에 다시 톡을 한다.

남편이 사라진 내 삶은 옛 상사가 남자라도 찾아나설 수 있게 되었고, 예전 기억과 그의 목소리로 더욱 견고해진 그에 대한 신화가 사실일지 환상일지 그를 한번은 만나봐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같이 생겨났다.


#대구--->

소득세신고 6월에 끝나면

바쁘신 거죠?


저도 학생들 기말고사가

6.28일에 끝나서 7월에는

여유가 있어요.


수요일마다 휴무라 7.5일에

제주여행 겸  소장님도 뵐 겸

제주 갈 계획을 혼자 세워봤네요.


시간 괜찮으세요?


특별하거나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25년 만에 옛 직장상사를

만나러 제주까지 가는 게

살짝 오버액션 같기도 합니다만~ㅋ


제주니까~핑계 삼아

옛 시절도 추억할 겸

날아가겠습니다.


#제주--->

나도 시간 괜찮아요. 누구랑 같이 와요?


#대구--->

혼자 갑니다


#제주--->

가족과 같이 안 와요? 숙소는 정했어요?


#대구--->

당일 계획이라 숙소는 없고

혼자 갑니다~


#제주--->

그래요. 하여튼 도착하면 연락해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하루 전날,

7월 4일, 수업 중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급한 일이 생겨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아 든다.


"지영 씨? 내일 오는 거 맞지?

렌트하지 말고 와요. 내일 내가 태우러

나갈게." 


"예. 소장님. 감사해요. 내일 공항도착하면

문자 드릴게요. 내일 봬요!!"


렌터카를 취소하고 그날 저녁,

당일여행이라 짐이랄 것도 없이 가볍게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 넣는다.


그저 학창 시절 유달리 따뜻했던 은사를 찾아뵙듯이 특별히 기억에 남고 연배가 있는 상사의 안부를 묻고, 그 시절 모습을 꺼내며 추억하고 싶은 가벼운 맘으로 시작된 일인데,  진짜 바다를 건너서 그를 만나게 되는 날이 코앞에 다가오니 살짝 현실감이 사라지고 망설여졌다.


한 권과 이어폰을 끝으로 가방을 근다.

'모르겠다. 자자'


이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상한 일탈이 왠지 모르게 설레기도 한다.

한편 추억 속에 잘 포장된 그분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만남으로 깨지고 오히려 내 추억이 오염되고 소실되는 슬픈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시간이 이끄는 데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에 도착해 5번 출구 렌터카 셔틀버스를 타러 가던 반복된 제주 여행과 달리,

오늘은 제주공항 1번 게이트로 향한다.


제주 사람, 그가 기다리는

제주공항 1번 출구 문이 열린다.


7월 제주의 여름 공기를 깊이 들어마시며 긴장을 풀어보지만 몸의 말초기관들이 이상한 떨림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몸에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지 이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모른 척 여유로운 표정을 만들며 문 밖으로

발을 디딘다.


문을 나서자 길에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앞질러 출구 쪽으로 다가오는 차 한 대가 보이고 창문이 내려지고 그의 얼굴이 보인다.


"지영 씨?!!"


다음회->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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