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속 응보의 실현
철저하게 무너진 드라마의 가해자와 달리, 현실의 학폭 가해자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연진이 말처럼 세상에 인과응보, 권선징악은 없는 것 같아서 힘이 쭉 빠진다(연진이 입으로 뱉는 대사라서 더 끔찍하다). 그럼에도 드라마 속에서 동은이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복수하는 장면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한치도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위로와 어떤 가능세계에서는 우리의 세계에서 불가능한 복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의 매개가 되었다면, 이는 픽션만이 갖는 힘이 위대하게 발휘된 순간일 것이다. 불가능한 일을 likely한 인물들이 likely한 공간 속에서 likely하게 실현시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채워지지 못한 욕망이 실현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구나 그 일에 관해 저마다의 견해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실제로 더 글로리 방영 이후 눈에 띄게 학폭 공론화가 많이 되었고, 학폭에 대한 경각심도, 학폭 가해자에 대한 반감도 많이 올라갔다(정순신 아들, 황영웅, 유튜버 하늘 등). 이게 현실의 정치, 사회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픽션이 세상에 가질 수 있는 위력이다.
사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중심축으로 다룰 거라고 예상했던 주제는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였다. 그런데 적중률 0%였다. 작가는 철저하게 피해자의 편에 서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미행과 협박, 거짓, 어둠의 세력과의 결탁, 의료권 남용 등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더 큰 악을 벌하기 위해 피해자들이 그것보다는 조금 더 약한 악을 십분 활용한다는 점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는 이걸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구도에서 무조건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뻔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행위가 복수가 아니라 응보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공권력과 신이 미처 바로잡지 못했던 잘못을 참다 못한 피해자가 바로잡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가상한 용기에 박수 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적격의 조력자가 등장하고, 악역들은 필요한 순간에 동은이의 바둑알처럼 움직여주고, 신이 개입하는 순간도 머무는 것이다. 제목이 더 글로리인 이유도 어렴풋이 알겠다. 세상의 교정되지 않은 악에 대해 가장 연약한 인간이 응보의 정의를 구현한 영예. 신도, 현실의 우리도 완성하지 못한 일을 증오와 상처를 딛고 용기 낸 한 인간이 완성한 것에 대한 찬사의 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