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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꺼내다

강보라의 <바우어의 정원>을 읽고

by 임가영

지역업체도 사업 수주 능력이 충분한데 지자체가 지역 업체가 아닌 의도적으로 외지 업체 물품을 수주한다는 게 제보의 주된 내용이었다. 지자체가 입찰 공고 시방서에 특정 업체 규격이나 모델 등을 제시해 놓아 특정 업체 아니면 진입조차 못 한다며 A 씨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당시 기자 초년생이던 난 A씨의 사무실에서 속성으로 지자체 입찰 계약 기준과 특혜 논란 배경에 대한 내용 등을 숙지한다. 사무실에 와서 관련 서류들을 찾아가며 이것저것 공부한다. 보다 충분히 내용 전반을 파악하고 취재에 들어갔으면 그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나의 어리숙함과 무지에 대해 몇 번이고 후회했다. 취재 아이템을 발제하자마자 데스크는 무조건 오늘 방송이 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부딪혀 보라고 한다. 31살이었다. 카메라 기자와 호기롭게 지자체 사무실로 들어간다. 난 공무원에게 입찰 공고부터 사업 선정까지 과정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팀장쯤이었던 것 같다. 어린 여기자를 대하는 사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공무원의 말투와 표정에선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시방서에 특정 업체 제품만 사용하도록 적시한 건 밀어주기 아닌가요?"

테이블 하나를 두고 고성이 오갔다.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느물 느물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취재차에 탔는데도 한동안 분함이 가시지가 않았다. 사실여부를 떠나 날 바라보는 그의 불쾌한 시선이 잔상에 남았다. 사무실에 들어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사 작성을 하기 시작한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랫배에 기분 나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쾌한 통증이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다급해진 난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 제사라서 아빠와 함께 시골에 있다는 거다. 근무 중인 b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안과 초조가 몰려와 블랙홀 같은 구멍에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무지했다. 신혼이었던 난 임신 사실조차 몰랐다. 퇴사를 하면서 모 선배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날 자기 차에 울고 있는 날 태우고 허둥지둥 산부인과에 데리고 간 사람은 부모도 b도 아닌 그 선배였다. 고마운 마음을 잊고 있었다. 의사에게 유산이라는 말을 듣고 짐승처럼 울었던 기억이 있다. 꼭꼭 숨겨놓았던 10여 년 전 슬픈 기억이 작은방을 비집고 툭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을 읽다가 젊은 날의 나와 마주했다. 방 안 가득 눈물 콧물로 범벅된 휴지가 널브러져 있다. 그날의 축축한 공기 냄새와 거울 속 비친 퉁퉁 부은 눈을 한 퀭한 내가 오버랩된다. 결혼 후 처음 갖게 된 첫 아이가 유산된 후 충분한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새 생명이 찾아왔다. 지구가 멸망할 것 같던 슬픔도 새 생명이 찾아오자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다.




10년 전쯤부터 매년 문학동네에서 제정하는 젊은작가상작 수상작품집을 사서 본다. 소설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좀 더 긴 호흡의 서사로 풀어낸 젊은 작가들의 글을 보며 감정 이입이 되곤 했다. 팩트 너머의 내가 알지 못했던 소설 속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어둡고, 복잡하게 돌아간다는 거를 매번 깨닫곤 했다. 그러다 생긴 의문 중에 하나가 왜 젊은작가상 수상작가들은 대부분이 여성일까?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수상작품 중에는 사회의 부조리와 성차별, 페미니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지극히 여성, 소수자의 관점에서만 부각되어 표현돼 좀 아쉽기도 했었다. 꼭 a는 선이고 b는 악으로 치부되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나 역시 여성이기에...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내 안의 잊혔던 아픈 기억이 꺼내지기도 한다. 당시에 못 견딜 것 같던 그 순간도 시간의 흐름 속에 무뎌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그들의 글 속에서 위로받고 세상살이에 더 단단해진 날 발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7편의 글 중 강보라의 <바우어의 정원>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가끔 눈물을 흘린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습기가 마음까지 스며서일까? 비 오는 날 미술관에 가면 백발백중이다. 독자는 살아가며 느꼈던 자신의 경험이 작품 속에 투영된 것을 마주할 때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힌다. 결코 잊을 수 없어 꾹꾹 감춰놓았던 기억의 생채기가 작품 속 글과 함께 떠올라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이 글이 그랬다. 잊혔던 슬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바우어의 정원>의 주인공인 은화는 제법 알려진 배우이다. 한참 활동하던 시기 3년 동안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 함께 연기를 하던 남편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연기학원 강사를 했다. 안정적인 남편이 있었기에 연기를 할 수 있던 은화는 배우로서 명성은 얻었지만 3년이란 시간 동안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점점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꽤나 긴 공백 기간을 깨기 위해 은화는 연극 오디션의 참여한다. 오디션 주제는 살면서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를 독백의 연기로 들려주는 것이었다. 은화는 연기자로서 성공을 위해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부해 놓았던 유산의 슬픔을 독백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


문득 제 몸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마신 상한 우유가, 그 조그만 벌레들이 제 몸 어딘가를 돌이킬 수 없게 망가뜨려버린 건 아닐까 하고요. 황당한 생각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한번 그렇게 생각하니까 멈출 수가 없었어요.

강보라의 <바우어의 정원> p75


주인공인 은화와 그의 남편인 무재, 은화처럼 유산을 경험했지만 아직 뜨지 못한 배우 정림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단 건 연극영화과를 나온 대학시절의 경험, 두 여자의 슬픔을 나 역시 겪어봤다는 연대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살면서 숱하게 마주하는 아픔과 상처, 그 속에는 앞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기에 더 몰입해서 읽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파란색 사물만을 모아 둥지를 꾸미는 호주 동부에 사는 수컷 새 새틴 바우어처럼,

누구에게나 각각의 정원이 있겠지?

함께 실린 강보라의 작가노트 <새 자국>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나 또한 저마다의 정원이 안녕하기를 기도했다.


<바우어의 정원>을 쓰는 동안, 하늘로 향한 시선을 거두고 땅을 자주 내려다보았다. 충돌의 충격을 고스란히 안은 채 하강하는 새의 이미지가 그 가을 내내 환영처럼 맴돌았다. 이름 모를 존재의 내부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새......... 너는 다쳤을까. 혹 죽었을까.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친 몸으로라도 어떻게든 살아냈으면 좋겠는데.
돌이켜보니 그것이 내가 지난 계절의 한 일의 전부인 것 같다. 자국을 들여다보는 것. 상처 입은 존재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
부디, 우리의 정원이 안녕하기를.

강보라의 작가노트 <새 자국>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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