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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도둑맞는 일

by 임가영

매일 저녁마다 취재원 관리를 하는 남자 기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당시 네 살, 여섯 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내게 살림과 취재를 병행하던 일이 꽤나 버겁던 참이었다. 굳이 여기자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취재 현장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뭔가 불리한 게임을 이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억울함이 곧잘 밀려오곤 했었다. 간혹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던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져 어디로 튈지 모르던 시기였다.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궁리 끝에 내린 결정이 sns활동이었다. 육아 때문에 후순위로 밀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퇴근 이후의 인간관계를 접근성이 편한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보자는 취지였다. 어릴 때부터 줄곧 일기를 써온 좋은 습관 덕에 매일매일 일기 쓰듯 나의 일상을 sns에 올렸다. 출근 전 아침 상차림부터 올망졸망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 취재 현장 스케치, 가끔은 새벽 감성이 묻어나는 말랑말랑한 글과 사진까지.... 꾸준한 sns 활동 덕에 내 계정 팔로워 수는 급격하기 늘어갔다. 단, 취재원 관리를 위해 sns 친구 맺기는 내가 활동하는 지역으로 한정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지역 돌아가는 상황을 굳이 발품을 팔지 않고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가상공간 속 게시글에 달린 댓글의 파도를 타고 좋아요를 꾹 누르는 일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함께 약간의 희열까지 맛보게 했다. 꼬박꼬박 올리는 다양한 콘텐츠에 어느새 팔로워 수는 4,500명을 이르렀고, 제법 친한 친구도 생겼다. 수 천명이 올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사진과 최근 근황으로 보니 지역의 소식을 인터넷 속도처럼 빠르게 알 수 있었다. 난 이 공간을 '파랑 일기장'으로 불렀다. 막막했던 사회생활의 연결고리를 sns를 통해 찾게 되자 자연스레 인맥도 넓어지고 제보도 전보다 많이 들어왔다. 내가 올린 게시물의 좋아요 수를 보며 슬며시 웃기도 했고, 댓글이 좀 부진하다 싶으면 게시물을 꼼꼼히 살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 안에 샘솟는 인정 욕구를 도닥이며 sns 활동을 한지도 10년 차 정도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핸드폰 화면을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나의 글과 사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의 게시물로 둔갑한 것이 아닌가? 단순한 게시물 공유가 아니라 내가 찍은 법주사 풍경 사진과 나의 하루 일과를 꼭 자신의 경험처럼 포장해 타인이 올린 것이다. 더구나 프로필을 보니 전직 교사로 되어 있어 충격을 더했다. 문제를 삼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친구 끊기로 마무리를 하고 분한 마음을 달랬다. 혹 자는 단순한 게시물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하루 중 찰나의 소중한 기록이 낯선 타인에게 도난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몹시도 불쾌한 경험은 되레 타인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와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젠 취재 기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며 취미 삼아 독서 에세이를 쓰고 있다. 감명 깊은 책 문구를 소개할 때가 종종 있는데, 책을 인용할 때마다 그때의 일이 종종 떠올라 출처 표기를 명확히 하는 일을 다시 한번 체크한다. 나의 창작물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창작물 또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권리이니까.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은 다른 이의 시공간과 기록을 훔치는 일이다. 난 오늘도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나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저작권 보호를 받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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