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완의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를 읽고
살면서 속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좀 늦게 알아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끙끙 싸매다가 나 스스로 문제가 정리가 되고 나서야(그놈의 자존심)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라며 털어놓곤 했다. 이런 성격 탓에 사춘기 시절엔 마음속 힘든 얘기가 도저히 입 밖에 나오지 않아 몇 달간 입을 닫고 산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리 힘든 일 같지도 않은데, 뭔가 혼자 해결해 봐야겠단 강박도 있었고, 좀 예민한 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지금도 매사 좀 예민하긴 하다. 그래서 기자란 직업이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 힘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매사 기민하게 반응하고, 왜 그럴까 생각하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솔직히 좀 골치 아프게 살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남들 보기에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늘 마음 깊은 곳엔 인간 본연에게 닥친 풀리지 않은 숱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계절이 바뀌면 공회전하듯 반복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쯤에선 날 좀 이상한 애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냥 여러 해 동안 그랬다.
그러다 종교가 생기고, 직업이 바뀌고, 마흔여섯 해를 보내면서 조금씩 이대론 안 되겠다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힘이 들 땐 힘들다고 울어도 되고, 기쁠 땐 제 본연의 성격대로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크게 웃어도, 세상은 여전히 돌고 돌아간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정작 지금은 나의 이런 솔직한 면이 혹여나 직업적으로 좋지 않게 비칠까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평상시엔 예전보다 훨씬 더 내 감정을 누르고 사는 편인데, 가끔 현타가 올 때면 내 쏠 메이트들에게 sos를 친다.
30년 지기 찐친 몇 명과 지역 사회 현안을 함께 나누며 우리끼리 대화 삼매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기자 선후배(가끔 욕도 하는데 그럴 땐 속이 뻥 뚫린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인생 멘토 몇 분. 문제의 스펙트럼 영역에 따라 sos를 구하는 사람도 달라진다. 영역별 인생 멘토들
에게 묻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건가요?"
얼마 전에는 성질을 죽이느라 곧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일이 있었는데, 다소 긴 내 얘길 다 들어준 a는 내 생일 선물로 사두었던 책을 미리 줄 걸 그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보내 준 사진 두 장.
솜털같이 귀여운 냥이 사진과 함께 그가 보내준 책은 하태완의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와
<초역 부처의 말>, "선배가 하나님 믿어서 왠지 이 책은 안 샀을 것 같았어요"란 귀여운 멘트와 함께^^
살면서 가끔 속이 터질 것 같을 땐 혼자 짊어지지 말고, 가족에게, 친구에게, 선배에게 손을 내밀어 보자. 함께 해야 덜 힘들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니까.
이렇게 말하기까지 나 역시 빙빙 돌아서 왔다.
그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 엊그젠 케이크 초 개수가 너무 많아 적잖이 당황했지만(우리 방 김 모 군이 하나를 더 챙김) 이 모든 게 감사한 마흔여섯 살 생일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