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다초이 Jul 01. 2023

사랑에 빠져버린 노마드 : 칠레 편 02

그 해 내가 칠레에 도착한 2019년 7월, Nadia는 나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었다. 호스텔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대신 여기에서 일하는 동안 숙식제공은 해주겠다고. 같이 일하는 현지인들과 스페인어를 어쩔 수 없이 쓰게 될 테고(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이 상당수였다) 생각해 보니, 다양한 국가 친구들을 만나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산티아고에 있는 Tranqui Hostel이라는 곳에서 약 6개월 정도 Volunteer로 생활하며 친구들과 중장기 여행도 가능했고 한국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원화벌이도 하고 있었기에 한국보다 저렴한 물가로 남미생활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처음으로 화폐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당시 칠레의 최저임금은 원화로 약 2,6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칠레는 남미 국가들 중에서 OECD 1위인 국가로 부유한 나라에 속하는데 최저임금은 고작 2,600원이라니..? 처음에는 남미는 원래 이런가? 아, 원화나 달러를 벌어야 내가 원하는 생활이 가능한 얘기겠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칠레의 물가 수준은 최저임금에 비해 그렇게 또 저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칠레 서민들은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더 궁금해졌다. 


좋아! 나 여기서 지내고 싶어!


Nadia는 나에게 여기에 지낼 동안 머무를 공간을 소개해주고 이미 거기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하게 될 Lynda 야! 한국에서 왔어” 


그곳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Rosio, 베네수엘라에서 온 Maria, Moi 에콰도르에서 온 Jenny, 브라질에서 온 Daniel, Henry, Eduardo, Cesar, Henrique and Sarah.. 까지! 

말은 100% 안 통했지만 남미 특유의 친화력(어마어마함)과 유일하게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있는 Nadia 덕분에 남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매주마다 호스텔 매니저가 업무 스케줄을 짜주는데 대충 이랬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주 4일 근무에 2인 1조를 이뤄서 게스트&호스텔 식구들을 위한 조식 준비, 침대정리, 청소, 그리고 호스텔 식구들을 위해 마켓에 가서 장을 보고 점심을 만드는 것. 보통 한국일은 칠레에서 하루일과를 마친다음에 했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한국은 칠레보다 13시간 더 빠르다.) 휴무인 날이면 산티아고 시내를 둘러보러 나갔고, 차를 타고 더 멀리로 나가서 근교 투어를 갔다 오기도 했다.



산티아고 시내 마켓. 매일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 과일들이 많다.


사고 싶은 만큼 골라서 그램 수를 재고 돈을 지불하면 된다.

 

산티아고 시내 한가운데 있는 Santa Lucía Hill. 정상에 올라가면 안데스 산맥과 아름다운 산티아고 시내를 볼 수 있다.


나의 친구 Nadia와 함께 Santa Lucía Hill. 정상에서. 늘 고마웠어!


맛있는 엠빠나다와 과일 주스.


산티아고 시내에서 좀 떨어진 Mirador De Cóndores의 정상에서 찍은 린다초이. 다시 봐도 넘.. 멋지다. 물론 나 말이다.


해가 질 때쯤 우린 하산했고 이 고운 빛깔의 하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유 없이 속상한 날(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향수병이었나 싶다.)이면 항상 그들의 방식으로 기분을 달래주었고(맛있는 요리를 해서 기분을 달래 준다던가, 엉뚱한 짓을 해서 웃겨 준다던가 등..) 누구의 생일이 있는 날은 파티를 열어 함께 축하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항상 채워주고 있었다. 마치 가족처럼. 나는 그것이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호스텔 가든에서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Mapuche)족의 국기를 달고 있는 호스텔 게스트.


Tranqui Hostel의 내부. 주로 게스트들을 위해 조식을 준비하고 먹었던 곳이다.


가든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Tranqui Hostel 식구들.


칠레의 아침은 늘 파란 하늘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있는 내내 비는 거의 온 적이 없었다. 그만큼 칠레는 일 년 내내 건조하고 햇살이 매우 강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일과를 마치고 쉬러 가든에 가보니 호스텔 식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지하철 이용료를 인상했다는 소식이었다. 5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는 산티아고에서 서민들과 중산층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 말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이미 그전에 몇십 페소를 인상한 적이 있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또 한 번 인상을 했다고 한다. 나야 뭐 지하철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몰랐지만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빠른 교통수단이 이것뿐일 텐데 최저임금은 그대 로고 교통비만 올랐다면 나였어도 가만있을 것 같진 않았다. 


부당한 정부의 행동을 표현한 칠레 예술가들의 벽화. 그림 속 기름통을 들고 있는 남자는 전 대통령. (Miguel Juan Sebastián Piñera Echenique)


어리석은 칠레 정부의 결정과 무관심에 서민들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10월 중순쯤 반정부 시위가 더 거세졌다. 처음에는 무슨 우리나라 촛불시위 정도로 생각했지만.. 어라..이건 진짜 어마어마했다. 경찰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진압이랍시고 물대포를 쏴대고 무자비하게 폭행한 탓에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감옥을 갔고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를 하다 한쪽 눈을 잃었다. 매일매일이 Breaking news였고 시위가 더 심해지자 저녁 8시부터 아침 5시까지 계엄령이 내려졌다. 우리는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이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진 현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에 빠져버린 노마드 : 칠레 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