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서의 두 번째 이륙, ‘카페, 춘포’ 최희서 대표의 이야기
에디터의 말
도시에서 살아온 지 장장 이십삼 년. 숨 막히는 불빛과 도로의 경적에서 빠져나와 익산으로 향합니다. 춘포라는 작은 마을 속에서 카페 하나를 찾습니다. 계절 한가운데서 느끼는 수많은 감각을 응축해 둔 듯한 공간. 어깨를 감싸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처음 맛보는 달콤한 ‘쉼’에 빠져듭니다.
이토록 편안한 공간의 비결이 무엇이냐며, 사장님께 말을 붙입니다. ‘나’다우면 된답니다. 좋아하는 걸 그대로 좋아하면 된답니다. 간단한 일인데 왜 이리도 어려울까요. 여태 나는 좋아하는 것들에 솔직할 수 있었는지, 아리송한 마음을 품고 발길을 돌립니다. 비슷한 고민의 기로에 서 있는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요즘, 어떤가요?
기쁜 일에는 잘 웃고 있나요, 이따금 슬픔을 삼켜버리진 않나요.
나는 표정을 숨기는 그대를 볼수록 애가 탑니다,
제 색을 찾지 못하고 돌연 마침표를 찍지는 않을까 하여.
바라는 것이라면 글쎄요,
하릴없는 걱정에 휩쓸리지 않길,
행복한 순간에는 그저 미소 지을 수 있길 원할 뿐입니다.
쉼표를 그려 문장을 잇는 방법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나’를 찾는 여행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요.
내리는 햇살에, 잔바람에 잠시 기대어도 괜찮아요. 오늘은 하늘이 무척 맑으니까요.
유달리 따뜻한 햇살이 앞머리를 간지럽히던 날, 익산 춘포면에 다다랐습니다. 높다란 하늘 아래, 자박자박 자갈 밟는 소리 투명하게 들리는 마을. 잎사귀 사이 스민 볕뉘를 구경하며, 소박한 마을의 정취에 쉬이 정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시간의 유속이 빨라지는 걸 느낍니다. 성가신 생각들을 꼭꼭 씹어 넘겨야 하는 우리네 삶이기에 그럴까요. 마음속에 꽁꽁 뭉쳐 둔 한숨을 – 저기 날갯짓하는 나비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갖은 상념에 잠길 때야말로 비워내야 할 순간이지요. 그저 기분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날의 햇살을 닮은 이와도 마주쳤고요.
따사로운 햇살을 그 품에 가득 담은, 카페 춘포의 대표 최희서 님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익산으로 돌아와서 ‘카페 춘포’와 게스트하우스 ‘금촌농장’, 디자인 업체 ‘독개비하우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최희서입니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행사에서 일했고, 항공사 승무원으로도 근무했습니다.
Q. 익산으로 와야겠다는 확신을 가진 계기가 있었을까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가 일하던 여행사 또한 타격을 받았는데, 당시 함께 일했던 친구가 먼저 익산으로 와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저보다 어리지만 참 어른스러운 사람이죠. ‘대한민국에서 나 하나 먹고 살 일이 없을까!’라며 말하는 당당한 모습에, 이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든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결과 직장 동료 네 명이 모여 카페 춘포를 만들게 됐습니다.
Q. 처음부터 카페 창업을 고려하고 있으셨던 걸까요?
원래는 게스트하우스인 ‘금촌농장’만 운영하려고 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포함한 여러 공간으로 채워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춘포의 사랑방이라는 느낌으로요.
‘춘포의 사랑방’이라는 표현에는 정성을 다해 맞이하겠다는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고향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오는 많은 이들이 아늑함을 찾아 모여드는 공간이겠군요.
아, 저기 나른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고양이 손님도요.
Q. 춘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용도에 맞도록 세심하게 꾸며진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본래 공간 창업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일단 공간을 만들어 두고, 하나하나 꾸며 가는 과정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실은 별다른 계획 없이 지은 공간이에요. 처음에는 지금의 카페 춘포와 금촌농장이 된 두 건물뿐이었는데, 이제는 전시 공간으로 이용하는 ‘춘포 오피스’나 온실, 창고를 개조한 디자인 작업실도 생겼죠. 바닥에 깔린 잔디밭도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만든 거랍니다. 단골 손님들은 이 공간이 점점 재미있어진다며 좋아하세요.
– 그렇죠, 없었던 것들이 계속 생겨나니까요. 어떻게 보면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네, 특히 춘포 오피스는 꽤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어요. 회의나 미팅을 위한 대관도 이루어지고, 전북 청년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요. 안쪽 벽에는 메모를 써서 붙여 두었는데, 손님들이 방명록처럼 쓰고 가시니까 참 예쁘더라고요.
Q.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작업실도 있다고 소개해 주셨는데, 직접 활용하시는 걸까요?
네, ‘독개비하우스’라는 제 작업실이에요. 숙박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화를 전공했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해요. 공간에 분위기를 더하려면 디자인 측면에서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밖에도 마을 곳곳 붙어 있는 지도같이, 춘포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들을 꽤 많이 제작해 왔어요.
Q. 처음부터 회화라는 전공을 살린 일을 하시지는 않았으니, 예술에 대한 이끌림이 조금은 남아 있으셨던 걸까요.
당시에는 다들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되거나, 취업을 택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림 그리는 걸 계속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아서 항공사에 취업하기로 했습니다.
– 그렇다면 카페 춘포에서는 예술적인 열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셨던 것일지요.
맞아요, 제가 추구하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이 공간에 많이 깃들어 있어요. 서울에서는 펼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춘포에서 도전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독개비하우스’라는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었고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편안한 감각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았기에 조금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맞아요. 그럴 때 더 자연스럽게 정을 붙이게 되니까요.
무결하지 않은 인간이 무결함을 추구하다 보니 늘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모두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요? 자연스러운 것들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말이죠.
Q. 카페 춘포를 운영하면서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을까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라든지, 에피소드가 있을지요.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닌데 카페 춘포까지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모두 감사한 마음이죠. 그래도 특별한 경험을 하나 꼽자면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어요. 늘 블로그에 창업 과정을 기록해 왔는데, 제가 쓴 일기를 보고 처음 카페를 연 날 선물을 들고 찾아와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했고 참 감사했죠. 아직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고, 카페에 찾아오시기도 하세요.
Q. 창업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저와 제 동료들이 원래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쉽지 않은 점이 많았어요. 같이 일하다가 부딪히는 날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조율하는 과정이 참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서로서로 부족한 점들을 채워 주는 단짝이 되었네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다 해결하려는 성향이었어요. 시간도 의견도 맞추어야 하다 보니, 에너지를 쓰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창업이란 건 혼자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에요. 함께 일할 때 어려운 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더라고요.
Q. 협업의 가치를 여실히 느끼신 것 같아요. 동료가 있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참 좋아요. 힘들었던 기억은 이야기하면서 털어버릴 수 있고,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면 더 즐거워지니까요.
오만하게도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습니다. 함께일 때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그다지 옳은 생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Q. 저는 오늘 처음 춘포와 만났습니다. 긴 시간 동안 춘포가 걸어온 역사가 궁금해지는데요.
춘포에 온 뒤로 이 지역과 관련된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춘포는 호남 지역의 근대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란 걸 알게 됐어요.
춘포는 호남평야가 있고 만경강이 가까워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곡식 수탈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저희의 게스트하우스인 금촌농장을 비롯한 이 공간도 일본인 지주 ‘이마무라’의 농장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창고 건물에서 춘포역으로, 춘포역에서 군산으로, 군산에서 일본으로 쌀이 옮겨졌다고 해요. 많은 일본인이 춘포에 와서 부를 쌓아 갔고요. 철도와 도로가 확장되면서 근대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동시에, 수탈의 아픔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기에 이곳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은 해사한 햇살 가득히 들어차 내내 평화가 흐르는 이곳이, 차가운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말에 놀라운 동시에 마음이 아려 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춘포의 쌀도 판매하고 있어요. 근처에 백반집이 있는데 쌀밥이 정말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웃음) 언젠가는 춘포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춘포에 애정을 지니신 분들이 꽤 많아요. 춘포가 고향인 분들이 지역에 관해 쓰신 블로그 글을 여럿 보기도 했고요. 작년부터 저희는 ‘춘포 포럼’을 열기 시작했어요. 제가 지역 공부를 하려고 읽었던 책을 쓰신 작가님부터 만경강 새 박사님까지, 많은 분이 오셔서 춘포 이야기를 나누고 인연을 맺었습니다.
Q. 춘포라는 공간을 놓고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참 인상적이에요. 춘포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애정을 갖게 될까요?
조용한 마을 안을 골목마다 돌아다녀 보면, 상당히 예쁜 구석들이 많거든요. 이곳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참 좋아요. 또 익산이나 전주 시내에서 그리 많이 떨어진 곳이 아니니 접근성도 좋고, 춘포역 같은 문화재가 남아 있기도 해서 조용히 구경하고 갈 수 있다는 게 춘포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도시와는 다른 한적한 매력이 잘 느껴지는 곳이군요.
특히 춘포에 있으면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거든요. 여기서는 매일 새 소리도 들리고, 점점 초록색으로 짙어지는 잔디도 보게 되고, 여름이면 살구랑 복숭아가 열리고… 한적한 마을에서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 아, 이 자연스러움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편안하고, 평화롭고…
서울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춘포에 오니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다소 진부하긴 하지만 ‘힐링’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을 아직도 찾지 못했네요.
그래서 춘포를 소개할 때, 저는 늘 ‘만경강 옆 힐링 마을’이라는 말을 써요. 카페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강이 보이는데, 봄에는 벚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을 구경할 수 있어서 참 아름답습니다.
– 마음 놓을 수 있는 공간이네요. 자유로운 감각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은 물론이고, 철저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채워 갔던 공간이니 조성하는 과정부터가 자유로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춘포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버린 것인지, 저도 모르게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분명 자연 속에 있다 보니 불편함도 있는 공간이에요. 그런데도 늘 찾아 주시는 단골손님들이 있고, 처음 방문하시고서 카페 춘포가 정말 좋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이런 자연스러움에 끌리는 것 아닐까요.
Q. 춘포가 지닌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잘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춘포에서 느낀 감각 그대로를 제가 좋아하는 느낌대로 만들어 두면, 누군가는 그걸 좋아해 주더라고요.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추려 하면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러니 제가 좋아하는 걸 계속 이어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Q. ‘나’다움에서 출발한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과 후, 본인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가요? 무엇이 대표님을 성장하게 했나요?
경쟁이 불가피한 서울에 살 때는 조금 날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도 저에게 여유를 좀 가져 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곳 춘포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 보니, 지금처럼 여유를 갖고 만족하며 살게 되었어요. 제가 많이 편안해진 것 같다고들 하세요.
– 춘포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있었나요.
시내가 아닌 춘포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카페 춘포는 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제 의견이 빠르게 반영되는 곳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가 이곳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줘요. 고향인 춘포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무척 뿌듯해요. 제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라 더 좋아하게 됩니다.
Q.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공간을 운영해야 할지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타인의 의견에 너무 휩쓸려 다니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우리 본연의 색을 잃지 말자는 거죠.
– 그 또한 ‘나’다움을 유지하는 것이겠군요.
Q. 승무원 일을 하셨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아무래도 첫 비행이네요. 오클랜드에 갔었어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즐길 틈도 없었네요. 아직도 담당 강사님과 면담할 때, “좋은 승무원이 될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셨던 게 기억이 나요. 저는 그렇게 되지 않았거든요. 모두가 똑같이 해야 하는 조직 생활, 그리고 저 하나 없어도 돌아가는 그 시스템에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웃음)
–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공간’인 카페 춘포 덕분에,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됐다고 말씀하셨던 게 더 와닿게 되네요. 공간으로부터 정말 좋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제 능력으로도 빛을 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 반대로 낙담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을까요.
춘포의 장점이자 단점이죠,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익산 자체가 흥미로운 것들로 많이 알려진 지역이 아니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아요. 근처에 다른 가게들도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춘포를 좋아하니까, 그걸 바깥 사람들에게도 알려서 함께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계속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치를 찾아가는 공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카페 춘포 덕분에 이곳을 알게 된 저처럼 말입니다.
Q. 비행이라는 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행을 하며 새로이 알게 된 점이 있을까요?
시야가 정말 좁았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해외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겪는 것과는 매우 달랐거든요. 그동안 보고 싶은 것들만 보면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Q. 카페 춘포를 제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대표님의 ‘또 다른 비행’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익산이라는 도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솔직하게 말하면 춘포는 청년들이 많이 떠나고 있는 도시예요. 젊은 층을 공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희 카페를 찾아 주시는 분들도 대부분 중장년층이세요. 시에서도 청년들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대부분 프로젝트 성격인 사업들을 오래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 그럼에도 카페 춘포 같은 공간이 존재함으로써 지역의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로컬의 가치를 알리려는 작은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 결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네, 큰 효과를 기대하고 만든 공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춘포’ 하면 저희 카페를 떠올리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올해에는 한 브랜드 자회사에서 익산을 주제로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마케팅 프로모션을 시작했는데, 그중에 카페 춘포도 포함되어 있어요. 다시 한번 로컬의 가치를 알릴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요즘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요. 대표님 또한 ‘개척가’의 면모를 지닌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삶의 방향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언가를 개척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봐요. 좋아하는 것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 그 분야에 능통해질 수 있고, 더 멀리 나아갈 기회가 생기기도 하니까요. 저 또한 ‘창조’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기에 카페 춘포의 공간을 아름답게 꾸며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억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대신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 보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취향이 생겨나니까요. 옆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색깔을 찾게 되는 거죠.
– 누구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찾아서 드러내려 노력하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 그런 마음가짐이 취향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또 다른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는 것도 그 취향을 유지하는 길이 되어 주곤 합니다.
Q. 카페 춘포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한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도심에서의 바빴던 시간을 잊고, 잔디에 앉아 하늘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고양이도 만나면서 마음을 편안히 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치유’와 ‘힐링’이라는 표현도 떠오르고요. 몸과 마음을 안정하여 휴양한다는 ‘정양’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발음하기가 어렵고, ‘해방’이라는 단어는 왠지 거창한 것 같고…
…쉬었다가 가는, ‘쉼표’라고 해도 좋겠네요. 실은 저희 카페의 정식 명칭이 ‘카페, 춘포’거든요. 이름을 정할 때 그 의미를 고려해서 중간에 쉼표를 넣었어요.
누군가의 일상 속 쉼표가 되어 주겠다는 온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이름이네요.
Q. 카페 춘포의 대표가 아닌, ‘최희서’의 비전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어요.
아직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카페 춘포를 운영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제 디자인 브랜드인 독개비하우스를 더 전문화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고요. 카페 춘포가 제게 주는 원동력이 있기 때문에, 저 자신이 이곳을 더욱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Q. 자신이 몸담은 업을 먼저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세로 대해야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되는 것이라 하더군요. 그런 애정은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요? 더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오히려 완전히 몰입하기보다 잠시 시선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애정을 붙이겠다는 의무감을 느끼기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지내는 게 애정을 오래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어떤 시선에서 봐도 이 공간은 자연스러움이 핵심인 것 같네요.
네, 여전히 다른 것들로 채워갈 수 있는 미완성의 상태여서 더 아름다운 것처럼요.
Q. 끝으로 사심을 담은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만, 카페 춘포의 대표 메뉴는 무엇인가요?
춘포의 역사가 담긴 쌀을 써서 음료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쌀 시럽과 쌀 크림이 들어간 ‘춘포 커피’와 ‘쌀 라떼’를 판매하고 있는데, 인기 있는 메뉴랍니다.
–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쌀 라떼를 하나 주문해도 될까요? (웃음)
달콤한 음료 한 잔 곁들여, 나긋하게 햇살 내린 춘포를 다시금 눈에 담았습니다.
드넓은 창공을 가로지르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제는 맑은 하늘 아래 자신만의 색으로 작은 쉼표를 그리고 있는 –
그대의 새로운 비행을, 늘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글: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김서정 에디터
사진: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김서정·정회하 에디터, 카페 춘포 최희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