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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03. 2024

다시, 익산으로


“청년 이탈률 1위”

세상이 전북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체 인구의 4.6%, 청년 인구의 18.8%가 전북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온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외부인으로 존재해야만 하기에 마음 둘 곳 없는 서울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느새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서울을 뒤로한 채, 무작정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을 갖고 돌아오기에는 현실이 무거울 테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사랑하는 고향, 익산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저마다의 목표를 갖고 익산의 내일을 밝혀나가는 청년 창업가, 박진영, 임재곤, 최상은 대표를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라면, 당차게 고향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10월 6일 일요일, 보슬비가 내리는 익산역은 상쾌한 아침 공기로 가득했다.


익산의 청년 창업가들이 한데 모인 팝업스토어 슈퍼스피릿에서 익산의 'JYP', 박진영 대표와 익산의 캘리그라퍼 임재곤 대표를 만났다. 슈퍼스피릿은 익산역 바로 앞, 중앙동에 위치해있다. 

두 대표는 현재 익산을 기점으로 여러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박진영 대표 |  지역의 자원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재가공해서 전시회나 축제를 만드는 로컬브랜더, 박진영입니다.


임재곤 대표 |  익산에서 손글씨 쓰고 있는 캘리그라퍼 임재곤입니다. 글씨도 쓰고, 디자인도 만들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익산 중앙동을 밝히고 있는 두 대표는 모두 디자이너 출신. 

박진영 대표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익산으로 돌아왔다. 

많은 전북 청년이 꿈꾸는 서울을 뒤로하고 ‘다시’ 익산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박진영 대표 |  원래 직장은 양재동과 성내동이었어요. 밤을 새우는 날도 많고 생활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그 상태로 아이를 보니까 병이 났죠. 그래서 건강을 회복하려고 2009년에 익산으로 내려왔어요.



반면 임재곤 대표는 익산에서 태어나 익산에서 쭉 살아온 ‘익산 토박이’.

임재곤 대표가 익산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임재곤 대표 |  그냥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에서 많은 돈을 벌지만, 더 많은 돈을 쓰면서 살 것인가, 익산에서 적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지만 생활비를 아끼느냐의 차이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실적으로 지역 내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택했고요. 그 덕분에 시간이 남아 캘리그라피를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제가 타지에서 살았으면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생각도 안 해봤을 것 같거든요.




서로 다른 곳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두 대표는 어떻게 익산에 자리 잡고, 함께 창업하게 되었을까? 


박진영 대표 |  원래 본 직업은 사회 현상이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을 제공하는 디자이너였어요. 그 경험이 도시재생 구역인 중앙동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업을 풀어가는 로컬브랜더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됐고요.


임재곤 대표 |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문화센터 강좌에 캘리그래피가 있길래 ‘이거 한번 해봐야지’ 해서 배웠어요. 그 후 캘리그라피 작가가 됐어요. 회사도 그만두게 됐고요.


박진영 대표 |  전주시에 돌아다니는 버스에 있는 전라북도 캐치 프라이즈 글씨도 이 친구가 쓴 거예요.



박진영 대표 |  익산에 내려와서 인구 소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 해서 청년 희망 네트워크라고 시에서 청년 모임을 만들었어요. 특히, ‘모여져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제안한 뒤로 도시재생 구역인 중앙동에 모이게 됐고, 네트워킹이 만들어졌어요. 여기 있는 임재곤 대표도 그렇게 같이 사업하게 되었어요. 




박진영 대표와 임재곤 대표는 현재 중앙동을 기점으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익산의 도시 중, 중앙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박진영 대표 |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중앙동에 처음 왔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명동 같았어요. 근데 대학교 갔다 와서 여기(중앙동) 앞에서 모였는데 1980년대에서 멈춰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중앙동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거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박진영 대표 |  중앙동 도시재생 사업은 시민 주도형 사업이 목적이어서 행사 등을 전부 주민들이랑 같이했어요. 어르신들이 말을 잘 안 듣거든요. 그래서 동네 다니면서 “이거 뭐예요?” 말 걸며 라포를 형성했어요. 화단에 꽃이 많은 공방 선생님은 자기 꽃을 알아봐 주는 걸 좋아하고 음식을 만드는 사장님은 자기 음식이 정성스러웠다고 칭찬해 주는 걸 좋아하고, 그런 것처럼요.




사람도 차도, 할 일도 많고, 매일이 바뀌는 서울은 마치 세찬 파도 같은 곳이다. 반면, 사람도 적고, 조용한 익산은 잔잔한 물결 같은 곳이다. 이렇게나 다른 서울에서 다시 익산으로 내려왔을 때 박진영 대표가 느낀 익산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박진영 대표 |  서울에 있을 때는 내가 살고 있는 데를 벗어나서 시간적인 여유를 누렸다면 익산에서는 할 게 없어서 내가 있는 주변에서 여유를 찾게 됐어요.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사는 곳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곳은 서울보다는 익산이었던 것 같아요. 중앙동을 돌아다니면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자꾸 감동하게 되고.
제가 살았던 서울 양재동이나 성내동에도 똑같은 게 있었을 텐데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익산에서 중앙동 어른들이 수십 년 동안 지나쳤던 걸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지역이 재밌는 거 맞네!” 깨달았어요.




슈퍼스피릿은 익산청년시청에서 운영하는 익산형 청년 창업 팝업 스토어로, 청년 창업가들의 가능성을 응원하고, 청년들이 개발한 제품 홍보와 판매를 통해 성장을 지원하는 청년 교류 공간이다. 이곳에는 루브미담보담키펫모닝팜루시골드헤다보부상바이오팜원마일워터바크데이프루티펀커스텀피스익산기차샌드파머라운지신비초이리  16 청년 창업가가 참여하고 있다.



힌적한 중앙동을 알록달록 밝히는 슈퍼스피릿은 입구부터 익산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슈퍼스피릿의 이름 따라 활기찬 영혼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차분한 익산에 활기 한 방울을 더하는 슈퍼스피릿에 대해 조금 더 물어보았다. 


박진영 대표 |  슈퍼스피릿은 익산 청년 시청의 청년 창업 지원 사업을 통해서 창업한 대표님들 제품을 전시하고 홍보하고 판매까지 하는 곳이에요. 지역 농산물이나 원료를 활용한 차나 다과, 직접 만든 캐릭터를 활용한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해요. 저는 슈퍼스피릿이 이야깃거리가 되게 다양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공간에 인생네컷 사진들이 있어요. 중앙동에는 놀러 와서 기록을 남길 만한 게 없거든요. 이 공간을 만들 때 홍보도 중요하지만 이 곳에 왔던 기억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이 인생네컷 기계를 넣어놨더니 반응이 좋은 거예요. 사람들이 중앙동에서 여기가 제일 재밌다고. 어른들도 많이 오셔서 인생네컷 찍으셨어요. 그 어른들은 처음 경험해 보시는 게 많은 거죠. 




밤 9시만 되면 불이 꺼지는 중앙동을 밝혀보고자 했던 박진영 대표. 박진영 대표는 ‘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계속하는 사람’이 된 것이 익산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익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박진영 대표가 그리는 익산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박진영 대표 |  익산의 사업자분들한테 ‘익산에서 뭘 하고 싶냐?’ 물어보면, ‘내가 나고 자란 곳이고, 내 생활과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익산에서 정말 잘 살고 싶다’라고 해요. 그런 걸 볼 때 윗세대가 밑세대를 끌어주기만 하면 우리 지역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익산을 어떻게 만들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고요, ‘내가 여기 살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항상 생각하면서 지내는 거죠. 
재밌게,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살고 싶어요.










중앙동을 떠나 초이리 브루어리로 향한다.


익산 귀금속단지의 한가운데에 있던 양조장으로 들어가니 고구마 소주를 빚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익산의 특산물들이 향긋한 전통주로 탈바꿈하는 마법 같은 곳에서 초이리 브루어리 최상은 대표를 만났다.


최상은 대표 |  제가 만드는 술은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드는 지역 특산주예요. 익산의 시화인 국화를 메인으로 시작했고, 익산 딸기 막걸리, 시트러스 막걸리, 이렇게 세 가지 술을 출시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서울에서 행정 업무를 하다가 결혼하고 익산으로 돌아왔어요. 남편도 저도 고향이 익산이에요.




최상은 대표 부부는 서울, 거제 등 다양한 지역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그들은 고향 익산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익산’으로 돌아온 이유와, 익산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를 물었다. 


최상은 대표 |  익산이 고향이기 때문에, 익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왜 익산이었는지, 익산과 사업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구상할 필요 없이 제 고향이어서, 익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온전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어요.



많은 분이 ‘익산에 양조장이라고 하면 초이리 브루어리가 있지’ 하면서 알아봐 주시고, 외부 행사를 갈 때마다 저희 브랜드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걸 볼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익산시에서도 맨 처음에 익산을 대표하는 술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관심이 많이 없었는데, 술을 출시하고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금은 익산에서 행사가 있을 때 저희 술을 만찬주로 사용해 주시곤 해요. 그때 가장 뿌듯하죠.




‘우리 익산에도 익산을 대표하는 술이 있어요.’ 

이 한마디가 목표이자 포부라는 최상은 대표. 


그 목표대로 초이리 브루어리는 명실상부 익산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최상은 대표가 생각하는 초이리 브루어리의 매력과 앞으로의 비전을 물었다.


최상은 대표 |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반응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최고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몰랐었는데 여기 괜찮네’ 이런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아요. 그런 이미지로 인식되는 게 기쁜 것 같고요.

제 목표는 업계에 들어온 이상, 10년 후에도 브랜드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게 목표에요. 10년 후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통주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박진영 대표와 최상은 대표는 익산의 청년 창업 지원을 통해 익산에 뿌리내린 청년 창업가들이다. 익산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대표들에게 청년 창업 지원 사업에 관해 물어보았다. 


최상은 대표 |  익산에 청년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많다는 게 일단은 알려져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정책이  청년들을 위한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효용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박진영 대표 |  정책은 훌륭해요. 그런데 청년들이 하는 새롭고, 해보지 않은 사업에 대해 포용력 있는 행정이 필요해요.


박진영 대표와 최상은 대표는 공통으로 청년들의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지자체의 유연한 행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반대로 세 대표에게 익산에 자리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최상은 대표 |  진심이 아닌 일을 단순 1, 2년 동안의 돈벌이 수단으로 접근하고 창업하면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반면에 진심으로 내 아이템에 자신이 있고 애정이 있는 분들은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박진영 대표 |  자기 자본 투자 안 할 거면 오지 마라, 그냥 와서 여기 돈만 가지고 뭔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원을 받고 난 뒤에 사업 확장할 때 ‘내 돈이 들어가야 하네, 그럼 문 닫아야지’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실제로 지원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못 받고. 내 자본을 투자할 마음이 없다면 아예 안 오는 게 나아요.


임재곤 대표 |  처음 열어서 잠깐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근데 지속적으로 유지를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다시 돌아온 익산이 단순 고향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익산에 남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익산의 매력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어보았다.


박진영 대표 |  익산은 누구든지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에요. 이미 개발된 도심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잖아요. 그런데 익산은 색이 매우 많은데 아직 가공되지 않은, 엄청난 원석이에요. 그래서 누구든 와서 의욕 있게 활동하면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임재곤 대표 |  익산은 정거장의 도시에요. 각 지역의 사람들이 와서 활동하고 있죠. 70년대 80년대에 정착하신 분들은 목포나 순천에서 올라오셔서 장사 시작하신 분들도 많고, 중앙시장 안에도 여기가 고향인 분들보다 타지가 고향인 분들도 꽤 있고. 익산은 모든 걸 담아낼 수 있는, 수용하는 곳인 것 같아요. 타지 사람들이 와도 받아들여 주고, 환대해 주고. 이런 분위기가 매력이에요.


최상은 대표 |  저는 고향이 익산이라 당연히 익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익산의 가장 큰 매력은 교통인 것 같아요. 실제로 서울에서 교육받고 막차 타고 내려오면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집에 더 먼저 오기도 하고요. 또 식품 클러스터가 익산에 있기 때문에 식품 산업 식품 사업하기에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라서 좋아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언제든지 바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 

전라북도 익산을 그리는 한 줄의 문장이다.  


물론 서울에서 그려온 삶을 뒤로하고 다시 익산으로 돌아오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 익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원하는 대로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익산의 매력이 서울에 살던 이들을 다시, 익산으로 이끌었다.


만약 지금 익산을 떠나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치열함과 복잡함에서 벗어나 나만의 아이디어로 익산이라는 캔버스를 채워가고 싶다면.


돌아가자

‘다시, 익산으로.’






글: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황수민 에디터

사진: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정회하·황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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