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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헌책방 나들이 : 신촌에서 신촌을 찾다

로컬키트 in 신촌 : 과거

by 로컬키트 localkit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는 길, 벌써부터 책 냄새가 가득하다. 언제 맡아도 여전한 이 냄새가 이끄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반가운 목적지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는 신촌의 공씨책방숨어있는책. 모두 신촌을 대표하는 헌책방이다. 글벗서점도 그중 하나였지만 최근 성산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 더 많은 헌책방이 이 동네를 빛내 주었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새로운 터전으로 떠났다.


대학가를 기반으로 형성된 신촌에서 헌책방은 초기부터 그 역사를 함께 했다. 한 기사*에서는 “헌책방은 하숙집과 함께 대학촌의 디엔에이를 간직한 업종이다.”라고 일컬은 바 있다. 13년 전 쓰인 이 기사는 신촌 헌책방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짚었다. 그런데 10년이 넘도록 이 해묵은 과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신촌의 소중한 공간을 지키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찌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신촌과 홍대 사이, 몇 번이고 걸었던 길을 새롭게 걸었다. 신촌의 과거를 상상해 보기 위해, 멈춰 있는 과거가 아닌, 현재도 흐르는 신촌의 시간과 ‘신촌다움’을 들여다보기 위해.




하나, 신촌 공씨책방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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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은 1972년 경희대학교 앞에서 처음 문을 연 후, 광화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차례의 이사를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신촌에 온 것은 1991년. 현재는 창업자 공진석 씨의 처조카 장화민 대표님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장화민 대표님이 가게를 물려받으실 적 대학이 많은 신촌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故 박원순(전 서울시장) 씨의 권유가 있었다. 그렇게 신촌으로 와 조그만 가게에 터를 잡고 신촌 공씨책방으로서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금세 신촌의 학생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었다. 신문사나 법원, 혹은 근처 직장인들이 주 고객층이었던 광화문과 달리. 신촌에서는 학생 손님이 많았다는 게 대표님의 설명이다. 중요한 점은, 신촌에 온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방에서 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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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강의 교재를 사러 온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이야 웬만한 책은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꼭 서점에 와서 구매를 해야 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사러 온 대학 새내기들이 아니더라도, 저마다 찾는 책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며 온 사람들로 붐볐을 모습이 상상이 된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며, 30년 전 신촌 대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헌책방의 매출 감소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원인 중 하나인 알라딘 중고서점.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헌책의 상태를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배송과 현장 수령 모두 가능하니 편리성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다. 그러나 대표님의 설명에 따르면, 단순히 알라딘의 출현과 보급 자체가 헌책방의 매출에 타격을 준 것은 아니다.


“알라딘이 헌책방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아요. 헌책방에는 알라딘에 없는 오래되고 귀한 서적을 주로 찾으러 오시죠. 그런데 그런 책은 한 권씩밖에 없어서 많이 공급을 해주기 어려워요. 그리고 최근에는 연세 많으신 손님들께서 돌아가시고, 특히 헌책방 단골이시던 교수님들께서도 많이 돌아가시다 보니까 책방을 찾으시는 고객이 많이 줄어든 게 느껴지죠.”


사진3.jpg 빼곡히 쌓인 헌책들이 세월을 가득 머금고 있지만 생기 또한 여전하다.


임대료 문제는 신촌의 헌책방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다. 지상에서는 장사를 하기 어려워 대부분 지하로 내려가는 형편이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촌의 글벗서점도 최근에 신촌 밖으로 이사를 갔다. 다른 책방들도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방문객의 감소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책방에서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계속해서 가게 안을 채워주었던 손님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끌어올린 독서에 대한 관심까지. 기대를 걸어 볼 것은 많다.


“너무나도 감사하죠. 책방 오셔서 한 권씩 사 가시는데, 손님 한 분 한 분 다 정말 소중해요.”

손님 한 명 한 명이 책방을 지키고 신촌의 역사를 잇는 힘이 된다. 책을 고르던 중 ‘공씨책방을 추억함’이라는 수필집이 눈에 들어왔다. 신촌 공씨책방이 추억되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새로운 추억을 만들러 올 수 있는 곳으로서 든든하게 신촌에 있어 주길 바라며, 또 다른 신촌의 헌책방을 방문하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둘, 숨어있는책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30


공씨책방과 더불어 신촌의 대표 헌책방으로 꼽히는 숨어있는책. 지금보다 신촌이 활기를 띠던 1999년에 문을 열었다. 노동환 대표님이 이곳에 책방을 열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부근에 대학이 많다. 둘째, 교통이 편리하다. 지금이야 신촌은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도 아니고, 서울 내 다른 지역들에 비하면 교통이 특별히 편리한 것도 아니지만, 80-90년대만 해도 신촌은 젊은이들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곳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주로 찾았던 곳이다. 손님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것은 대학원생. 더불어 대학생과 일반 성인들도 즐겨 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근 연세대학교의 신입생들이 인천 송도의 캠퍼스에서 생활하게 되며 학생 손님 수가 크게 줄었고, 현재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문을 연 당시에는 인근 대학에서 선배 한두 명이 후배 서너 명을 데리고 와 책방을 소개하고 책을 사 가는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필자도 신촌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그런 문화는 생소하다. 더 이상 학생들은 헌책방을 즐겨 찾지 않는다. 독서 문화 자체가 약화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진5.PNG (출처: 숨어있는책 인스타그램 @hiddenbook_sinchon)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사람이 적어요.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학교 들어가는 길이랑 현대백화점 앞길, 맞은편 길은 과장을 섞어서 말하면 발 디딜 틈도 없었어요. 또 백화점 들어서기 전 시장이 있을 때는 더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많이 한적해진 것 같아요.”


대표님은 당시 신촌이 몇 년 전 가장 붐비던 시절의 홍대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그런 활기찬 신촌을 다시 한번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어있는 책은 인스타그램 계정(@hiddenbook_sinchon)을 운영 중이다. 온라인 책 주문도 가능하고, 게시물로 올라오는 책탑에서 흥미로운 책을 발견할 수 있다. 기업형 및 인터넷 중고 서점의 등장으로 운영이 힘든 실정이지만, 조금이라도 책방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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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책 읽고, 이곳에서 많은 책을 찾기를 바랍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팀원들과 각자의 시선을 끄는 책을 골랐다.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책도 있었지만, 분류가 잘 되어 있어 살펴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꽤 규모가 큰 매장 안에서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척척 찾아주시는 대표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이번 보물찾기에서 내가 찾은 보물은 헌책만이 아니라 이 책방에 방문한 경험 자체일지도 모른다.




신촌다웠던 시간들로부터


헌책방 대표님들께 전해들은 신촌의 옛 모습을 상상해보며, ‘신촌다움’이란 무엇일지 고민해 봤다. 그러나 갈피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장화민 대표는 안타깝게도 지금의 신촌에는 특색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학이 되어 더욱 쓸쓸해진 신촌의 거리를 걸으며, 옛 전성기의 흔적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닿을 수 없는 과거와의 거리감만 느낄 뿐이다.


현재 다양한 기획들이 ‘신촌다움’을 재현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과거의 신촌을, 가장 신촌다웠던 그 시절을 간직한 공간들과 사람들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곳이 다시 특색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지만, 과거 없이 꿈꾸는 미래가 밝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작금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헌책방과 같은 신촌의 귀중한 공간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진7.jpeg 숨어있는책 책장 한 켠에 붙어있던 메모. 글벗서점은 올해 1월 성산동으로 위치를 옮겼다.


어쩌면 신촌을 걸었던 사람들의 수만큼 ‘신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과거의 시끌벅적함을 추억하든, 비교적 활기를 잃어버린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든 모두 신촌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시끌벅적함은 과거의 전유물인 것일까? 절단하기 어려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신촌의 전성기를 구성했던 오래된 공간들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이 공간들이 앞으로도 신촌에서 살아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임종업. (2012년08월08일). 대로변 알라딘 중고서점에 휘청거리는 신촌 헌책방가.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46256.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50208)


글·사진: <local.kit> 김소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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