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촌에서 살아남기

로컬키트 in 신촌 : 과거

by 로컬키트 localkit

에디터의 말) 신촌에서 ‘산다’


신촌에서 산 지 어느덧 3년 차가 되었습니다. 신촌 거리를 걷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남겨둔 기억들이 거리를 메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여전히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먹고, 웃고, 취한 시간과 기회로 풍족한 나의 신촌. 많은 걸 써왔습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한 걸까요.


그렇게 걷다 보니 부동산에 붙어 있는 셋방 광고들이 보입니다. 월 80만, 100만…… 그럼 이 방은 “얼마에 살 수 있을까’”란 질문이 듭니다. 그리고 만일 이 방을 산다면, 이곳은 제 집이 되어 줄까요?


문득 “신촌에서 살 수 있을까”란 질문이 제법 웃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삼’으로 유명한 신촌입니다. 그렇다면 신촌의 ‘삶’은 무엇일까요.



1.jpg (1)


새로운 마을, 신촌(新村) (2)


사대문 바로 앞 넓은 농촌 지대 신촌. 신촌은 옛적부터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발을 딛는 곳이었다. 1920년 경의선 신촌역이 개통하며 기적 소리와 함께 수많은 발걸음이 신촌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서울 사대문 안 지역과의 높은 접근성 덕에 1940년대 신촌은 전원주택 단지로 개발되며 사람들이 머무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살 곳을 찾아 나선 실향민들이 판집을 안식처로 삼았으며, 이후 60-80년대 재건축 시기를 지나며 신촌의 집은 더욱 아늑해지기 시작했다.


1917년과 1935년에는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가 각각 신촌에 자리 잡은 것을 시작으로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이름 높은 학교들이 신촌을 터전으로 삼았다. 상경한 학생들을 위한 원룸과 하숙은 마찬가지로 타향살이를 시작한 외국인에게도 집이 되어주었고, 많은 꿈이 끊임없이 전국에서 신촌으로 찾아들었다.


새로운 마을, 신촌은 그렇게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틔우려는 사람들을 품으며 자라났다.



신촌의 집


신촌에서의 삶을 맞이해준 건 먼저 하숙집이었다. 70년대 초, 기숙사가 없던 시절 창천동, 대현동, 아현동, 신촌동, 대신동, 봉원동의 가정집들은 집을 구해 떠도는 학생들에게 방 한 켠을 내어주었다. 사람 사는 흔적이 물씬한 방,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그 온기는 정든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대학생들의 외로움을 녹여주기 충분했다.


AD_4nXdTXek9wyjgIMHuQlFNFsWwa0BnoL6i-CsP3b7u6T3VBaw8yy6Mg0oN_7RAXsjPjO-Msa_RcXKyj-Ag93pYbRPLINbiGHDxcxy88ff9axlTGmSPN2Si_c9d6Qh2QXX3jssUV2_d2Q?key=odul6yozEybmqRfna5fL4tw8 (3)

그뿐인가,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이 살을 부딪는 소리는 신촌에 색색의 이야기를 꽃피웠다.


“사범학교 학생들이 하숙과 자취를 하면서 주민들과의 소통이 늘어났고 과거와 달리 사범학교를 더 친숙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소비하는 금액도 날로 늘었고, 지역 주민과 학생 사이에 유대도 강화되었다. 또한 공주 지역의 늘어나는 학생들이 하숙집에 기거하게 되면서 하숙집 주인들이 소비하는 산성시장의 물품도 늘어나게 되었다.”

1950년대 ‘학교의 지역화’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 공주사범학교의 사례 – 中 (4)


하숙은 집을 찾아온 학생들뿐만 아니라, 집을 내어준 원주민들에게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계속해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순환하며 새로운 관계를, 독특한 그 지역의 모습을 생산해 낸 것이다. 신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숙에서 든든한 식사를 맛본 입은 독수리다방에서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조잘조잘 제 기능을 뽐냈다. (5) (6)


AD_4nXd8EVyplLGGLzEROn5ENn7lN5IqiIbfBfklB5L0IEsnLs48UWiuKzoHbWLWVf1dEnVYMGR0qkHEdpuDoCO5OcyhRBEfGhibmYDKr92yl-0YeJCkgYArhPJJCMsuuOZnc8_YZTIk?key=odul6yozEybmqRfna5fL4tw8


신촌의 또 다른 집으로는 원룸과 고시원이 있다. 2000년대 들어 개인 공간의 선호가 높아지면서 많은 학생이 자취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대가 바뀌며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레 창조되지 못하고, 신촌의 문화는 사라져 버렸다.


현재 신촌의 주거 환경은 몹시 열악하다. 사실 이는 비단 신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서울 시내 고시원은 대표적인 1인 가구의 주거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안전, 사생활 침해 및 사회적 고립이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서울의 방 크기는 최소와 최대 방 크기 평균이 각각 6.9와 12.9로 최저주거기준의 1인 가구 최소 면적 기준인 14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 샤워실, 식사 제공, 주차 가능, 인터넷 설치 여부를 위주로 분석한 이용 시설 상태 분포에 따르면 서울의 모든 구가 수도권 평균에 비해 주거 환경이 좋다고 평가하기 힘들었다. 또한 신촌 지역의 고시원들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시기인 2009년 이전부터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아 안전 문제에 취약하다. (7)


그러나 신촌 학생들을 더욱 고달프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높은 가격이다. 조사에 따르면 신촌의 평균 월세는 2022년 56만 원에서 2023년 79만 원으로 50.1%의 상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서울 평균 월세 상승폭(23.2%)의 2배 이상이다. (8)


이렇듯 신촌의 공간이 삶을 담아내지 못했기에, 창천에서의 시간은 끝내 뿌리내리지 못하고 흘러간 것이다.


AD_4nXfrJgjDMxlF_5TWs-qsbr90CYNu37ohHto1QtOpwAaGzWV56NsXYL-5r2h8jockKzDKHaoymSJbYFrA1KEMqjVlcXRMxykVzDYhWSIs9VnTJDhXHXc1mGMQqDJslU5UhhIgUI4T?key=odul6yozEybmqRfna5fL4tw8

신촌을 살리고자 한다면


현재 옛 신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활발했던 신촌의 문화를 되찾고자 여러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논의에 대표적으로 높은 공실률이 언급되며, 상권 부흥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효과적이었을까란 질문이 계속해서 남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주거 환경 만족도의 상승은 지역 애착뿐 아니라 주민 참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특히 사회적 환경 만족도의 경우 주민 참여 증대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9)


죽은 신촌을 다시 살리고자 한다면, 소비보다도 그 속에 가려진 주체, 사람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신촌에서 산다는 것에 ‘얼마에’가 아닌 다른 질문을 할 때이다.


글·사진: <local.kit> 오지민 에디터



(1) 서울역사박물관, 『신촌; 청년문화를 품은 개척지』(2017)

(2) tvN, 응답하라 1994

(3) 이와타 신노스케, 김광현. (2015-04-24). 신촌 대학가에 나타나는 시간적 복합성에 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서울.

(4) 전진희. (2023). 1950년대 ‘학교의 지역화’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 공주사범학교의 사례 -. 역사와 담론, 105, 343-381.

(5) 정유미, "(8)서대문구 봉원동 “학생들 나와서 밥 먹어”…제2전성기 꿈꾸는 하숙촌", 경향신문, 2017.02.23, https://www.khan.co.kr/article/201702232123005

(6) 공예솔, "하숙문화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대학보, 2006.05.22,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973

(7) 구형모, 전재훈. (2019). 서울 고시원의 시공간 분포 탐색과 주거 환경 분석. 한국지도학회지, 19(2), 105-118.

(8) 최아름. (2023, 10). 청년 주거 정책 효과 있었나_신촌 원룸 월세 80만원에 육박한 까닭. 더스쿠프,(564), 40-41.

(9) 이경영, 김범석, 정문기. (2018). 주거환경만족도가 주민참여에 미치는 영향 - 지역애착도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 한국정책학회보, 27(1), 89-11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촌의 밤을 수놓던 선율, 희미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