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орейский спортсмен пересекает финишную черту!”
“대한민국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올림픽이 방영되는 텔레비전 너머의 그곳은
내 마음을 훔치기 충분했고,
그렇게 난 강릉을 선택한다.
강릉을 찾았다. 외국인의 강릉 이야기가 궁금해서.
지방에서 외국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왜 서울이 아니고?’ 라는 생각을 하는 나는
수도권의 차가운 현실에 떠밀려 온 것임을 알면서도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이곳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굳게 믿어보곤 한다.
강릉엔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강릉시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3,835명, 강원도의 14.7%를 차지한다.
누군가는 취업을, 누군가는 결혼을, 누군가는 연구를 위해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강릉에 모인다.
하지만 이건 통계 집계를 위한 항목일뿐,
우리 모두 나름의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에서 평창올림픽을 보고
강릉의 바다에 반해
강릉을 선택한
러시아인 굴리아씨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중앙시장에 커피가게를 차리자!”
러시아에서부터 연락하고 지내던 남자,
지금은 남편이 된 사람과 커피가게를 차렸다.
순탄하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만,
시장 안 커피는 경쟁력이 부족하고…
한국말은 서툴러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게 두렵게 느껴진다.
굴리아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강릉에 오게 된 이유부터, 그녀가 강릉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천천히 들으며
자연스레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짚을 수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을 것.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 중 하나일 것이다.
언어 문제는 항상 외국인들이 차별받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곤 한다.
굴리아씨도 슬픈 기억을 건넸다.
그녀의 서툴렀던 한국어는
손님들이 화내기도,
무리한 요구를 하게 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자 다짐했을
그녀의 순간들이 떠올라
이야기 내내 한글자 한글자 소중히 귀에 담았다.
강릉에선 볼 수없는 걸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난 러시아 출신,
곧바로 유튜브에 러시아 전통 케이크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
몇 날 며칠 열심히 연구했다.
처음 해보는 베이커리기에 매일 새벽부터 나와
연습하고 도전했다.
도전한 만큼 실패도 많았다.
인터뷰를 하다 눈을 힐끗 돌리면,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 냉장고에 차곡히 정리된 케이크가 보인다.
그간의 노력이 그려지는 곳이다.
외국인 창업자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차별화를 두기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로 강릉 중앙시장은 눈이 즐거워지는 곳이었다.
저마다 알록달록 특색있는 가게가 나란히 있었고 ,
굴리아씨의 케이크 가게도 하나의 분명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꼭 포기하지 말라며 덧붙였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모두가 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속 편한 조언이라 생각했던 그 말은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들어갔다 오니,
나에게 또 다른 다짐을 주었다.
이제는 관광객도, 현지 사람들도 자주 찾는 가게가 된
자랑스러운 내 이름을 건 ‘굴리아 케이크’가 있다.
매일 여름만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최근엔 친해진 단골 손님도 생기고,
SNS로 홍보를 부단히 한 까닭에
굴리아씨의 케이크를 먹기 위해
강릉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생겼다 한다.
하지만 아직 겨울은 길고 힘들다.
제철 음식이 아니라 케이크가 주력이기에
한 철 장사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관광지 특성상 타격은 마찬가지였다.
사진으로 먼저 본 중앙시장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날도 풀리지 않은 3월에 북적거리는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밤 아홉 시, 남아있는 케이크 진열장의 조각들은
그녀의 걱정을 보여줬다 .
요즘엔 여름을 기다리며 베이커리 일과 육아를 열심히 병행한다.
특히 하루의 행복은 아이와 바다를 보러 가는 것.
강릉에 오게 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바다는
조금은 힘들었던 하루에
여유와 한적함을 느끼게 해주고,
나를 강릉에 머물게 한다.
강릉에서만 살아본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대구에서도 살아본
그녀가 다시 강릉으로 온 것은
강릉의 ‘여유’ 때문이었다.
어디보다 여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덩달아 나도 여유로워지는 곳이랬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모든게 납득됐다.
강릉을 걸으며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끼고 있던
마음 편안해짐의 이유를 말이다.
복잡한 관광지지만,
여유로운 질서가 있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란 곳도,
같은 언어를 쓰는 곳도 아닌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곳의 반짝이는 매력을 알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마주하고 공유하지만
그들의 특별한 관점으로
지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는 조금 더 풍성해진다.
강릉인 굴리아씨는
자신의 방식대로 강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젠,
나도 강릉인이다.
글: <local.kit in 강릉> 장은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