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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점에 선 서부시장

by 로컬키트 localkit


누군가에겐 시끌벅적한 쉼터이자 추억의 장소였고, 다른 누군가에겐 우회해서 지나쳐야 하는 그림자 드리운 공간이었다.


오늘날의 강릉 서부시장은 다시금 기억되고자 한다.


세월의 흐름 위, 새로운 출발점에 선 서부시장에는 어떤 빛이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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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생들의 기억 끝에는 활기로 가득 찬 서부시장이 산다. 화장실 앞에서 50원에 휴지 팔던 할아버지, 줄 서서 사 먹던 할머니의 빵집…. 지하는 맛집과 노래방으로 청년들 놀거리가 즐비했고 위층은 어시장, 신발가게, 방앗간, 만화방과 학원가까지. 오가는 정이 모여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서부시장만의 흐름이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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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세대가 기억하는 서부시장은 사뭇 다르다. 예고 없이 찾아온 화재는 시장의 흐름을 깨버렸다. 강릉의 타 수산시장들의 관광 발전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던 어시장은 씁쓸한 끝을 맞았고 서부시장은 쇠퇴의 길에 들어선 듯했다. 자연스럽게 오가던 곳에 “어둠”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일부러 피해 가야 하는 불편한 길목이 된 것이다.


변화가 절실한 시점, 현재의 서부시장은 새로운 시선 속에 또 다르게 기억되고 있다. “영화와 전시를 보면서 감자전을 먹는 곳.”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어지는 곳,”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

그렇게 다시 한번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은다.


강릉 시민기획단이 전개하는 이벤트 <어바웃 서부>는 관광지와 생활공간이 맞닿아 있는 서부시장만의 고유한 특색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단순 음식만을 팔기보다 전통과 문화예술, 서부시장과 강릉이 갖는 지역성을 시민기획단이 직접 발굴하고 재해석해서 알리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 변화를 앞장 서 이끄는 봄봄 콘텐츠 김자영 대표와 시민 기획단을 만나보자.


Q. <어바웃 서부>라는 콘텐츠의 간단한 소개와 기획하시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그리고 처음 기획 당시에 목표를 달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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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서부>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의 일환으로서, 지역에서 주민들이 ‘시민기획단’으로 활동하며 탄생한 문화콘텐츠 사업입니다. 서부시장의 특색들을 매개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우리 시장의 묘미를 재해석해서 알리는 문화 이벤트들을 개최했습니다.


제가 처음 서부 시장에 오게 된 건 6년 전, 2021년도였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유통적으로 많이 침체해서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시장을 아는 사람만이 시장을 추억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에 영감을 얻어서 서부시장이라는 공간을 알리고자 여러 콘텐츠를 시도했고, 그중 하나가 어바웃 서부였습니다. 서부시장만이 제공하는 경험과 장소성을 어필하고자,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게 됐고요.


첫해를 시장에서 보내며 느낀 점은, 주민들에게 있어서 서부시장은 물건을 사러 오는 곳보다는, 단골끼리 모여 안부 인사하고 담소 나누는 일상의 공간이라는 것이었어요.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특히나 비 오는 날이면, 시장 바깥에 모여있는 감자전 가게에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 시간을 보내는 옛 추억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부시장은 단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그 이상의 이야기와 가치를 지녔어요. 이런 추억 서리고 친숙한 느낌을 컨셉화해서 레트로 감성으로 재구현했죠.


초창기 기획 당시에 어바웃 서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선정된 사업으로, 5년 연속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강릉 하면 서부시장의 이벤트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요. 강릉시 매칭도 성공하며 유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중단됐습니다. 3년 차부터 저희의 목표 달성을 향한 방향성이 어렴풋이 잡힌 듯 보였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Q. 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진 “현대화”는 기존 시장의 전통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점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초반에는 문화 발전을 위한 기획을 할 것이냐, 지역에서 같이 상생할 수 있는 기획을 할 것이냐, 깊이 고민했어요.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해오던 방식대로 상업에만 집중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히 계실 테니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우선하여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서부시장에 선순환을 가져오고자 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사장님들이 이득을 보고 경제적인 모멘텀을 잡을 수 있게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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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감자전이라는 시장의 전통을 주제로, 팝콘 대신 감자전을 먹으며 영화, 전시, 버스킹을 구경하는 사업을 기획 한 적이 있어요. 세 가지 뜻의 전(展煥傳) 들을 인용해서 ‘전전전’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죠. 이렇게 접근성을 낮춘 이벤트들 속에서도 시장의 특색과 전통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부시장에 위치한 전집들과 협업해서 서부시장만의 레시피를 사용하는 등 상권 측면에서도 시장의 색채를 유지할 수 있게 애썼고요.



Q. 강릉 서부시장의 변화가 도시 강릉의 관광과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서부시장을 바라보는 주변 인식이 많이 개선됐고, 상권 분위기도 꽤 활발해졌어요.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써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고 있거든요. 처음 재생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다들 “하다 말겠지” 하는 심정이었을 거예요. 누구를 위한 행사냐는 말도 들었고요. 특히나 주상복합 형태의 시장이기에 행사 할 때면 소음과 뒷정리 관련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컸어요.


그러나 지금은 먼저 들르기도 하며 관심을 보이세요. 그 덕에 전에는 가게와 이웃들이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면, 이젠 서로 지나가며 인사도 해요. 시장 행사들이 로컬 주민들 간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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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릉문화재 야행이라는 규모 있는 축제에서 서부시장이 행사 장소로 쓰인 적이 있었어요. 그날의 기억에 서부시장을 재방문한 청년 관광객들이 축제와는 사뭇 다른, 썰렁한 시장 분위기에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아직은 행사 분위기가 일회성인 느낌이 강하지만, 관광객들이 재방문할 만큼 추억하고 싶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사람을 부르는 분위기를 지속시키면 좋겠다고 느껴서, 크고 작은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공방이나 카페 등이 들어서는 것처럼 주변 상권의 분위기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신청곡 받는 레트로 다방 DJ 컨셉의 다방전, 지역 일러스트 작가들의 강릉시장 그림 전시, 어린이날 사생대회 드로잉전 등등을 통해서 시민들이 색다른 문화 체험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Q. 강릉 서부시장의 사례를 강릉의 다른 시장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아직 서부 시장은 완전히 성공한 사례는 아니라고 봐요. 다른 중앙시장 같은 곳들은 저희보다 훨씬 유명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의 사례를 다른 시장들에 적용하기보다, 되려 반대로 가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워낙 관광 상권이 발달한 시장들이다보니, 저희가 단순 재생 사업으로 그 간극을 좁히기엔 무리가 있어요.


그렇기에 저희가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먹거리 등이 아닌, 문화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시장이 가진 공동체의 힘으로 저희만의 것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유명 시장은 타 지역인들이 와서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반면에 서부시장은 로컬 상인들로만 운영되어서 로컬만의 공동체적 분위기가 잘 형성됐거든요.

각자가 가진 차별점들을 강화하면 좋은 발전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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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의 서부시장에는 협회, 동창회, 철학관이 많았는데, 문화적인 접근을 시작하고부터는 공방들이 들어섰어요. 새로 들어오는 가게들 반 이상이 공방이고요.


퀼트, 뜨개, 주얼리, 구슬부터 쿠킹과 제빵까지… 저희가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잡혀가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공방에 특화된 서부시장의 역할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부시장 공동체만의 특색을 갖게 되는 거죠.



서부시장이 지나온 세월 속에는 세대마다 다른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시민 기획단 각 세대의 시선에서 풀어낸 서부시장을 통해 그 다채로운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1977년 개설 이래 시장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카이빙 사진이 간직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이 몰려들던 식당들, 학생들의 성지였던 만화방과 빵집부터, 지하에는 각종 주점과 노래방까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지만, 주문진 수산시장은 이전에 어시장으로도 크게 활성화된 공간이었다. 또한 시장 입구에 지게꾼들이 줄지어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그 시절만의 독특하고 정겨운 일상을 서부시장은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컴퓨터 초창기 시대가 찾아오자, 서부시장에는 학원가들이 들어섰다. 강릉 외곽에 사는 중고등학생들도 서부시장의 편리한 교통편 덕분에 거리감 없이 시장을 오가며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서부시장 앞 버스 정류장은 학원 차량과 시내로 향하는 학생들이 가득했다고 추억한다. 누군가의 중학생 시절, 기억 끝 자락에 자리한 서부시장은 할머니의 빵집에서 간식을 사오던 소소한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서부 시장은 낯선 곳이 되었다. 화재 이후 서부시장에 그을린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남은 듯했다. 그렇게 쇠퇴하기 시작한 서부시장은 마지막으로 들어간 기억조차 아득해질 정도로 어둡고 불편한 곳이 돼버렸다.


수년이 흐르고 크고 작은 재생 사업을 추진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상복합 형태의 시장이기에, 로컬과 공존하기 위해 끝없는 타협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그런 와중, 서부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데, 바로 김자영 대표와 시민 기획단의 <어바웃 서부> 행사다.


그렇게 시작된 재생 사업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새로운 시선으로 서부시장을 담는다. “영화전 하던 곳.” 야행하는 곳.”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시장의 풍경 보다 행사하고 문화와 경험이 오가는 공간으로 이곳을 떠올린다. 김자영 대표와 시민 기획단이 서부시장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읽어내고, 이곳 지역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다.


로컬의 일상 위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색을 입히며 차별화된 관광지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억 속에 길을 잃었던 서부시장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추억 서린 공간인 서부시장만은 주민들에게는 일상 속 즐거움을, 관광객들에게는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서부시장 앞에 펼쳐진 길은 단순히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닌, 서부만의 흐름 속 새로운 지속가능성을 향한 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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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local.kit in 강릉> 박채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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