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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이유

by 로컬키트 localkit


도시를 선택한다는 것


선택이 삶을 만든다.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과 그 결과의 종합, 인생은 그것으로 구성된다. 인생을 이끌어 가는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살아갈 공간을 결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삶의 배경을 정한다는 건 곧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상을 사는 지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의 도시를 선택하는 것은 복잡다단한 결심의 결과이기 마련이다.


강릉은 언제나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로 주목받아왔다. 정동진의 해돋이, 안목 커피거리, 경포해변과 같은 강릉의 명소들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정작 강릉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수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특히 청년 층의 감소는 더 두드러진다. 최근 3년간, 강릉시 전체 인구는 약 2.4% 감소했고, 20~30대 청년층은 약 7.8%가 강릉을 떠났다. 어쩌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것이 비단 강릉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강릉을 자신의 도시로 선택한 이들이 있다. 관광지를 넘어 삶의 공간이자 일터로서 강릉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을까? 그들의 선택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강릉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또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강릉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다.


첫번째 이야기: 모두, 다 같이

마커스 호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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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호스텔은 관광객이 붐비는 강릉 바닷가가 아닌, 구도심 시내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굽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발을 딛으면, 세련된 인테리어와 함께 은은한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 ‘바스투체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모두’를 뜻하는 강원도 방언 ‘마카’에서 이름을 따온 마커스 호스텔은 지역 주민과 여행객들이 모두 다 같이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대표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 자신의 일을 ‘공간 브랜딩’으로 소개하는 정하영 대표는 2017년 강릉으로 귀향해 ‘마커스 호스텔’과 카페 ‘바스투체어’ 등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정대표는 "마커스가 누군가에게 강릉을 찾아오는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강릉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대표는 2017년 고향 강릉으로 돌아와 이 호스텔을 열었다. “귀향 당시 KTX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의 물리적 거리가 크게 줄었어요. 강릉이 단순히 여름 관광지를 넘어 사계절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여행객 중에서도 ‘N번째 강릉’을 찾는 사람들, 즉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그래서 호스텔은 시내 골목에 자리잡았고, 그 골목이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정대표는 이 공간을 소개할 때 ‘소셜 로컬라이징’이라 부른다. 그는 “모두”라는 뜻을 가진 강원도 방언 “마카”의 의미처럼 마커스를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역민과 여행객이 어울릴 수 있는 ‘바스투체어’를 운영하면서 로컬에도 오픈된 공간을 구성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하는 것, 그게 로컬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강릉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드는 강릉의 상황에 대한 질문에 그는 마커스의 스태프로 머무르다 결국 강릉에 정착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강릉은 주거비가 저렴하고, 개인의 퍼포먼스만 있으면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는 도시에요. 디자이너나 작가처럼 유연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삶의 공간으로 삼기에 괜찮은 선택이죠.”


그에게 강릉은 단순한 고향 그 이상이다. 강릉 외부에 나가 있거나 고향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항상 귀향에 대한 작은 마음들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강릉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이 큽니다. 강릉에 있는 사람들은 타 지역으로 여행도 잘 가지 않아요. 강릉은 저에게 이렇게 큰 매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정대표에게 마커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마커스가 왜 이 도시, 이 동네로 와야 하는 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커스를 통해 강릉의 바닷가나 커피를 넘어 더 많은 매력을 지닌 도시 강릉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정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강릉으로 돌아와 만든 공간에서 ‘모두 다 같이’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강릉이 누군가에겐 돌아오고 싶은 고향이자, 또 누군가에겐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가능성의 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다. ‘마커스’가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이야기였다면, 내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감자라는 평범한 작물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전혀 다른 듯하지만, 나는,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왜 강릉인가?”


두번째 이야기: 감자로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더 루트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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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 인근 거리를 걷다 보면,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익살스러운 감자 캐릭터가 걸린 건물이 보인다. 더 루트 컴퍼니가 운영하는 F&B 브랜드 ‘감자 유원지’의 캐릭터이다. 캐릭터를 따라 건물에 들어서면 이름처럼 온통 감자로 가득한 내부를 마주한다. 감자칩부터 감자가 그려진 티셔츠와 엽서까지, 말그대로 모든 것이 감자다.


감자 농업 매니지먼트로 시작해 F&B 브랜드인 ‘감자 유원지’ 그리고 로컬 브랜드 컨설팅까지,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더 루트 컴퍼니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통해 농업 생태계를 바꾼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더 루트 컴퍼니의 공동 창업자 권태연 대표를 만나 더 루트 컴퍼니와 강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 루트 컴퍼니는 권대표를 포함, 3명의 공동 창업자가 시작한 기업이다. “창업할 당시 강릉의 감자 농업 환경을 상당히 열악했습니다. 감자에 대해 양질의 농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를 해서 수확이 된 감자들을 원물로 판매하는 일을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했죠.” 더 루트 컴퍼니는 감자 농업 매니지먼트를 시작으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감자들을 제 값에 소모할 수 있도록 못난이 감자를 활용하는 F&B브랜드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감자유원지’가 되었다.


왜 사업의 공간으로 강릉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권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릉이 고향이었기에 어느정도 기반이 갖춰져 있었어요. 또 강릉은 강원도 내 감자 재배 면적 2위 도시에요. 하지만 농가의 현실은 열악했죠. 이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게 감자 기반의 브랜딩 사업입니다.”


감자 유원지는 단순한 감자 가게가 아니다. 익살스러운 캐릭터와 트렌디한 분위기의 공간을 통해 SNS에서 젊은 층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강릉에서 감자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감자하면 떠올리는 토속적이고 투박한 이미지가 아닌, 키치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구상했죠. 강릉에 마치 성수동 같은 감자 공간이 생긴 거죠.”


그들에게 ‘로컬’이란, 꼭 서울과 구분되는 공간이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의미가 아니다. “로컬은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이든 강릉이든,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면 그게 바로 로컬이죠.”


더 루트 컴퍼니는 지역 농가와 협력하여 감자의 품종과 농업을 매니지먼트해 왔고, 파트너 농가의 수확량은 평균 18%, 매출은 약 20% 상승했다. 그들의 비즈니스가 지역 문제 해결의 실질적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강릉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입장에서, 강릉이라는 지역이 가진 고유한 매력에 대해 묻는 질문에 권대표는 “강릉이 고향이지만 심심하고 따분하기도 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다시 강릉에 왔는데 인프라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분명히 있어요. 이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라는 솔직한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래도 강릉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 것 주는 도시에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외지인들이 강릉에 창업을 하는 사례가 많이 보일 정도로 창업에 있어 장점이 있죠. 결국 강릉이라는 도시에서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개인이 만들어 나간다면 그만한 매력이 있는 도시일 거에요.”


강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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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릉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강릉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조금씩 찾아갔다. 강릉에서 자신의 일과 일상을 만들어 가기로 선택한 그들은 분명 자부할 만한 삶의 결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어렴풋하게 강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강릉은 삶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맡긴 도시이다. 수도권과 같이 많은 직장은 없어도, 자신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곳이다. 낮은 비용과 진입 장벽 덕분에, 자신만의 명확한 아이템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강릉은 그 출발점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아름다운 강릉의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르며 바쁜 일상 속 숨 쉴 틈을 내어준다.


강릉은 삶의 방향을 개인 스스로에게 맡긴 채, 언제나 기분 좋은 쉼을 준비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강릉의 이유이다.


글·사진: <local.kit in 강릉> 손승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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