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변비 치료제
이상하게도 내가 발표를 해야 하는 아침 회의시간을 앞두고선 직전까지 장 건강이 활발해진다. 매일 적당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아닌 나는 변비인에 가까운데 꼭 그런 날엔 발표 직전까지 식은땀과 후에 찾아오는 평온함 사이에서 아찔한 줄타기를 타야 한다.
7시 즈음부터 출근했고 회의시간은 8시 30분인데, 7시 30분 까지도 콧노래라도 부를 심산으로 커피도 내리고 테이크아웃으로 받아온 아침 식사도 즐겼다. 발표자료는 지난번 거에서 복사만 하고 날짜만 바꿔둔 상태.
아침부터 즐긴 찐 한 커피 때문일까. 아님 어제 '나는 솔로'를 보면서 먹은 매운 국물 닭발 때문일까.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신호가 온다. 오늘은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작은 것 아니고 큰 것임이 분명한 이 신호는 배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님 뇌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제 슬슬 PPT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선사하는 모니터 구석에 있는 시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직은 화장실에 가면 안 되는데.’ ‘아니야 지금 빨리 다녀올까? 지금은 사람도 없을 거야. 후딱 해치우고 올까?’
이렇게 고민하는 찰나. 급똥의 파도가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후. 한숨 돌릴 수 있겠다. 언제 다시 몰아칠지 모르니 빨리 준비하도록 하자. 이제 30분 남았다. 벌써 8시다. 간사에게 자료를 전달하려면 최소 25분 안에 끝내야 한다. 집중하자.
그래야 하는 데 하나둘 씩 동료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었다. 스몰 톡도 해야 한다. 그러다 그러다. 이제 15분 남았다. 발표 자료에 쓰고 싶은 말 몇 줄은 써 두었다. 표를 붙여 넣고 강조할 빨간 박스 정도만 붙여두면 될 것 같다. 발표 연습은 안 한지 오래다. 앞사람 어젠다 하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된다. 일단 나머지를 완성하자.
그런데 다시 두 번째 파도가 몰아친다. 이젠 정말 가야 할 것 같다. 5분 안에 끝내고 돌아오면 간사에게 자료 보낼 시간도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매번 발표하는 시간 때마다 나를 극한에 몰아세워도 괜찮은 걸까. 제발. 이젠 정말 가야 한다, 가자. 하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났는데 났는데 옆 파트 박 부장님이 오셨다. 망했다. 저분이랑 대화하면 3분은 그냥 지나간다. 이런저런 업무 얘기에 건성으로 호응을 한다. 식은땀이 난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답이란 것을 하며 발표 자료를 저장하고 간사에게 보낸다. 진짜 3분 남았는데 화장실에 갈 시간이 도저히 안 된다. 다 포기했다. 몇 마디 더 하다가 괜히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부장님 이제 회의 가시죠. 하면서 끌어낸다. 한 발짝 떼고 나니 어느새 파도도 가버렸다. 이상하게 회의 시간엔 파도가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도 다시 변비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 순서의 어젠다만 하고 나왔다. 화장실에 못 가서 얼굴이 누렇게 떴을 것 같아 아이스라테를 사러 내려가야겠다. 아닌가, 바닐라라테를 마셔야 되나? 내일 발표하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