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인류애에 대하여
나의 일터는 성비로 따지면 남자 쪽이 더 많지만 요즘엔 여성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주위를 둘러보고 느낀다기보다는 점심식사 직후 양치할 때나 금요일 오후 4시 즈음 슬 퇴근준비를 위해 몸을 가볍게 하러 화장실에 가 보면 느낄 수 있다.
점심시간엔 세 칸의 수전 앞에 이미 한 명씩 독차지하고 있는데 벽 쪽에도 둘 셋 이미 양치질이 한창이다. 나 역시 그 무리에 껴서 칫솔질을 하고 헹굴 타이밍을 잘못 잡을 때는 입 안 가득 치약 거품을 물고 눈이 빨개지고 콧물이 차오를 때까지 참고 있다가 수전에서 입을 헹구던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크게 한 발짝 다가가 쿠릉쾅쾅 뱉을 때, 해방감을 느끼며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지? 다음엔 밥을 일찍 먹고 일찍 양치해야지 한다.
금요일 오후 4시경엔 화장실 모든 칸이 다 차 있어서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한 줄 서기를 하고 있을 때, 퇴근 준비 시간이 겹친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내 차례를 기다린다. 누군가 화장실 잠금 열쇠를 풀고 나오는 경첩 소리가 들리면 비로소 고개를 들고 지금 막 빈칸에서 나온 사람과 무언의 눈길을 주고 받는다. 마치 ‘이 냄새는 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랄지 아님 ‘좀 미안합니다’ 류가 느껴지는데, 내 다음 사람도 나와 같은 것을 느낄까 문득 궁금해진다.
여자 화장실도 이 정도인데 남자 화장실은 모든 순간이 빡셀 것 같다. 아무리 남자가 많다지만 동료들에게 들어보니 수전이나 화장실 칸이 여자보다 겨우 두 배 정도 많은 것 같았다. 그럴 땐 어떡하냐 물어보니 다른 층 화장실을 간다는 동료도 있고 같은 층의 다른 쪽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디 건물 몇 층에 갔더니 남자 화장실에 종이 있다고 했다. 이름하여 ‘살려종’. 남자 화장실 모든 사로가 풀 방일 때 줄 서 있다가 진짜 지금 당장 변기에 앉아야 하는 사람을 위해 달아 놓은 종이랜다. 진짜 그 종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나? 물어봤더니 정말 종을 치면. 누군가 칸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사람이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 일지, 유튜브를 보고 있었던 것 인지 모르지만 종을 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며 나와준 그 사람에게 인류애를 느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일 다 보고 빨리 나와주는 편이 더 좋겠지만. 유일하게 나 혼자 있는 그 공간을 잠시지만 즐긴다는데 누가 머라할 수 있을까. 언젠가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진다면 종을 설치할까? 그때 나라면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