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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과장 Sep 05. 2023

사내식당 칸막이에서 헬스장까지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 있었던 점 반성합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사내 식당 테이블 위에 있었던 투명 칸막이가 영 싫었다. 점심시간을 동료들과 수다 떨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학창 시절부터 몸이 기억하고 있는 4교시 후 점심시간에 대한 행복감인 건지 모르겠지만. 밥알이나 국물이 서로의 식판에 튈지언정 동료들과 업무 아닌 얘기들을 나누며 식사하는 시간이 유일하기도 했고 새로운 메뉴가 나올 때면 내가 서 있는 줄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설렘은 커져갔더란 말이지.

  그런데 그 기간 동안 팀이 두 배로 커지면서 밥 먹는 멤버들도  두 배로 늘어났는데 독서실 책상에서 밥 먹는 느낌으로 묵언수행하며 조용히 식사만 하다가 식당 문 밖에서 십여 명이 헤쳐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성격 급한 나에겐 영 고역이었다. 게다가 어느덧 띠동갑급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밥 먹고 사내 캠퍼스를 산책하는 게 힘들었다. 빈 공기를 대화로 채워야 한다는 것에 책임감과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던 나는 무언가 대화를 해야겠는데 적당한 주제를 찾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가장 기다려졌던 점심시간이 어느새 불편한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입사원 땐 혼자 식사하는 과장, 차장님들이 이해가 잘 안 갔었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연차가 돼버린 걸까. ​


  칸막이가 없어지게 되면서 사내 헬스장/수영장도 재 개장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러 가는 멤버들이 하나 둘 생기게 되었는데 3년 가까이 불어난 살도 뺄 겸, 무엇보다 점심시간만큼만이라도 온전한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 하는 마음에 끌려 부서 동료와 함께 쭈뼛쭈뼛 헬스장으로 가게 되었다. 살면서 헬스장이라곤 8년 전, 낙마 사고로 십자 인대 수술을 하면서 재활하러 다닌 게 전부인 나는 수많은 기계 앞에 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로잉머신을 선택했다. 처음에 운동하러 가자던 동료가 어떤 여자분이 혼자서 운동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고 조언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마침 한혜진 씨가 TV에 나와서 실제 물 감성 낭낭한 로잉머신을 하는 걸 보고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터. 10분 20분 하다 어느새 30분도 너끈하게 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사내 체육복을 입어야 하긴 하지만 어쩐지 나의 무다리를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던 나는 어디 가고 운동을 하다 보니 근육에 대해서 더 욕심나기 시작했다. 부서에 근육몬 형님들께서도 살 빼려면 근육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길래 PT도 신청했다. 여자치고 덩치가 큰 편에 속하는 나에게 쥐어주신 덤벨이 한없이 가벼워 번쩍번쩍 잘 들어 올렸는데 그저 칭찬만 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더 힘을 내어 운동을 바짝 하게 되었고(회사에서 칭찬을 들은 적이 언젠가), 운동을 처음 시작하고 1년 기념으로 인바디에 올랐는데 체지방 6kg 감량, 근육량 3kg 증가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칭찬해 주자.

  주 1회는 그래도 쉬어가야 한다며 헬스장도 주 2~3회만 다니다가(뭘 했다고 쉬느냐고 질타한 동료 감사) 요새는 거의 출근도장 찍듯 매일 나갔더니 헬스장에 계신 매니저 분들과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혼자 운동하고 있으면 아주 가끔 지나가다 요렇게 하면 좀 더 자극이 잘 온다고 조언을 해 주셨는데, 한 번은 케이블로 운동하던 중 말씀해 주신 대로 손목만 살짝 틀었더니 삼두에 자극이 빡! 옴을 느끼고 홀리듯 다시 PT를 신청했다. 지금의 PT 선생님은 다소 맑눈광에 가까운 눈빛을 소유하고 계신데 ‘회원님 아주 좋아요~’라는 칭찬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조금만 더 운동하시면 오버헤드프레스 리프팅 대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탐나는 인재 입니다’ 라고 하신걸 칭찬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면 지금보다 일이 바빠져 점심시간에도 일 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점심시간에 운동대신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작년, 올해 술을 줄이거나 극단적인 식단 관리를 통해 바디 프로필을 찍을 심산으로  운동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단단해진 내 몸, 땀 흘려 벌게진 얼굴을 보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졌던 이때를 떠올리며 언제라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뱃살이 흘러내리지만 고구마처럼 튀어나와있는 내 전완근이 좋으니(쟉은 고구마) 내일도 점심시간에 운동하러 가야겠다.

아, 오해가 있을 수 있을까 봐 굳이 첨언을 해 본다.

점심시간에 운동하고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다. 운동하고 밥 먹으면 얼마나 꿀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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