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받는 인생 수업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

by 이행순

바람이 분다. 가녀린 줄기들이 서로 합을 맞춘 듯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가 귀에 박힌다. 사각사각, 스걱사각. 바람과 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놓칠세라 길바닥에 주저앉아 얼른 펜과 엽서를 꺼냈다. 그리고는 다 쓴 엽서를 나뭇가지에 살짝 걸어두었다.



그날 아침도 오늘처럼 그랬다. 바람이 창문을 뚫고 나를 깨우는 시간, 책과 문구 가방을 챙겨 들고 가족들 잠든 틈을 비집고 집을 나섰다.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설렘이 느껴졌다. 방의 개수가 부족하다 보니 잠잘 때 거실은 방 대용이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쓰고 싶은 마음에 집 앞 맥도널드로 출근을 한다.



24시간 운영하는 그곳은 언제부턴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매일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 작은 시작은 하루를 잘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오늘도 모닝커피 한잔을 주문해 놓고 마음에 드는 펜을 골라 하루를 적어 내려간다.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나를 격하게 환영해 주는 듯한 착각을 하며, 걸어올 때 따라오던 생각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나는 산책길이 떠올라 발걸음을 옮겼다. 작년 이맘때쯤 만난 이곳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곳곳에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어, 가끔 주먹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나들이를 가곤 했다. 길게 이어진 흙길은 마치 고향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이 있어 유난히 좋아하는 길이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 수줍은 내 마음을 건네듯 엽서를 걸어두고, 그렇게 30~40분이 지났을까? 순식간에 하늘이 까만색으로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빗방울이 엽서 위에 꽃처럼 “툭” 떨어졌다. 꽃과 마주한 마음이 번졌다. 서둘러야 했다. 비에 젖는 나보다 문구 가방 속에 있는 종이가 걱정이었다. 여유롭던 마음이 순식간에 바빠졌다. 걸음이 빨라지자 온몸이 땀으로 한 겹 한 겹 걸쳐졌다.



빠른 걸음으로 뛰어들 듯 집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세상에나…. 조금 전에 내가 무얼 본 건지….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었다. 정말 야속했다. 아니지 어쩌면 내가 또 서둘렀는지 모른다. 잠시 마음을 가만두어도 괜찮았을 텐데…. 매사에 여유가 없다. 결국,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나의 속소리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바람에 휘어져도 중심을 잡고 서 있던 분홍 배롱 나무가 눈에 밟힌다. 길에서 자연을 만나면서 삶의 희열과 깊이를 배우는 요즘이다. 태양이 뜨겁다고, 바람이 혹독하다고 자기 몫을 저 버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며, 핑곗거리를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글 한 줄과 자연이 만나는 지점, 그 사이에 인생 2막을 엮어내는 50대 여자가 서 있다. 나는 지금 길 위에서 인생 수업을 받는 중이다.


-이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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