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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정 Jun 07. 2023

재택근무 / 하이브리드 / 오피스 출근, 승자는?

재택근무만 2년 만의 첫 출근!

6월 6일 화요일, 새 회사에서 첫 단추를 끼웠다! 


새로 시작한 회사는 재택과 오피스 출근을 섞어서 하는 hybrid 모델이다. UX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이래로 오피스로 출근하기는 처음이다. 2년 전 처음 일을 구하기 시작했을 때는 재택만 고집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는 게 힘들긴 했지만 health anxiety가 있는 나에게는 안전한 집에서 일을 하는 게 마음 편했다. 부동산 일을 하면서 항상 차를 타고 돌아다니던 것에 지치던 때이기도 해서 재택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재택근무의 외로움을 달랜다는 핑계로 그동안 노래를 부르던 강아지도 입양했다. 9주 된 쉬파두들(sheepadoodle)이었다. 어린 강아지가 있으니 더더욱 출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아주 어릴 때는 한 시간에 한번, 그 후에 점차적으로 4시간에 한번 꼭 밖에 나가 배변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8시간 동안 출근을 한다는 건 이 조그만 털뭉치가 8시간 동안 배변을 참아야 되는 것인데, 어린 강아지들은 절대 불가능하다. 지난 2년간 재택근무가 아닌 회사는 쳐다도 보지 않았고 힘들지 않게 재택 일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재택근무를 할 때 일과는 이랬다. 매일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세수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대충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리면서 양치를 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한 후 옆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면 출근이었다. 이렇게 편안한 삶이 없었다. 아침 미팅이 끝나면 강아지를 데리고 30분 동안 걷고 돌아와서 3시간 동안 일을 했다. 동부와 서부, 중부, 그리고 심지어 인도와 독일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직원들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미팅은 아침 시간에 포진되어 있었다. 미팅을 마치고 나면 잠시 물을 마시고 목을 축였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요가 스튜디오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점심을 사서 오후에는 천천히 점심을 먹으면서 일과를 마무리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그대로 방을 나와 부엌에 들어가서 군것질 거리를 집어먹는 게 내 퇴근 시간 루틴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강아지와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남자친구의 퇴근시간이었다. 보통 6시에서 8시 사이인데, 이때 보통 같이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곤 했다. 우리가 하루 중 유일하게 같이 얘기하고 함께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 완벽한 일상을 꿈꾸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람 없이 여유롭게 일어나는 주중이라니. 새벽 5시 반이면 집을 나서는 남자친구 덕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매일 아침 6시 반에 ‘도비 주니어’라고 이름 붙인 로봇 청소기가 돌아가고 천천히 눈을 뜨면 블루(강아지)가 눈과 귀를 다 뒤집은 채 옆에 누워있다. 블루를 꼭 껴안고 마구마구 뽀뽀를 하면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품 안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렇게 뽀뽀 세례가 끝나고 나면 야외배변을 하는 블루 덕에 눈을 뜨자마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산책하는데 덕분에 아침잠 많은 내가 해 뜨는 모습도 보고 아침 새소리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블루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배변을 하고, 그 후에 우리는 이웃집들을 지나 큰 대로변으로 나가서 항상 같은 장소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30분 동안 걸으며 온 동네 강아지들과 다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러운 하루의 시작이다. 여유를 부리며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 오는 날도 있었다.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고 컴퓨터에 앉으면 8시 반, 하루의 첫 미팅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머지 아침 일정을 끝내고 일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면 15분씩 큰방에 가서 낮잠을 자고 나오곤 한다. 귀찮다는 이유로, 사 먹는 점심이 맛이 없어서, 매일같이 밥을 굶던 때와 달리 집에는 냉장고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가득 차있다. 덕분에 4년 동안 살을 찌우라는 의사의 말에도 그대로이던 몸무게도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남자친구와 같이 사는 것도 큰 역할을 한다. 혼자 먹을 때보다 둘이 먹는 게 맛있고, 같이 전날 요리한 저녁을 다음날 점심시간에 데워먹으면서 같이 대화했던 내용이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고 있는 거다.


지난 3월 일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당연히 재택을 선호했다. 이미 내가 익숙해진 일상이 있었고 그 루틴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던, 낮잠을 자던, 강아지와 공원에 가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도 중요했다. 하지만 일이 없어진 후에 2주 동안 여행을 가고, 돌아와서도 몇 주간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던 턱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당장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일주일간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이력서를 다듬었다. 그리고 공격적으로 네트워킹을 하고 연락이 좀 뜸했던 인맥들에게도 안부를 전하고 나의 사정을 알렸다. 다행히 예전부터 여기저기 오지랖을 부려둔 덕택(?)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소개로 오픈 포지션이 있는 회사의 hiring manager 들과 바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그렇지만 하필 메타, 아마존, 스포티파이 등 이름만 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대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대량으로 사람을 해고하는 바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저 사람들이랑 경쟁해야 하는 거네. 아찔했다. 그래서 재택만 고집하지 말고 좀 더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고 일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새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던 회사들 중에 내가 고른 회사와 다른 스타트업 한 곳만 오피스로 출퇴근을 요구했다. 현재 회사는 월요일 금요일은 집에서 근무하고 화수목은 20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로 출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사실 오피스 출근하기 싫어서 이 회사를 맨 아래 순위에 두고 고민했다. 그런데 오퍼를 받은 후 연봉을 얘기하다가 생각 이상으로 더 높은 연봉으로 연봉 협상을 하게 되었고, 연말에 연봉 10%가량의 보너스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출퇴근 여부를 생각하지 않고 고려하면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다.


당장 물가가 높은 캘리포니아주나 뉴욕 등 더 크고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많이 몰려있는 동네로 간다면 힘들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연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앞으로 2-3년은 아리조나주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나의 지역까지 고려한다면 정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어린 강아지 때문에 화-목의 출근 날 동안 8시간을 꽉 채워서 오피스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했을 때, 편안하게 집에 일찍 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재택근무를 선호하던 가장 큰 이유는 강아지 때문이었는데, 이 얘기를 듣고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UX 디자이너로서 짧은 지난 2년간의 경력 중 최초로 오피스 3일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켜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와, 나 운전해서 오피스 가는구나! 가면 동료들도 만나고 내 책상도 생기는 거네. 길을 나서자마자 꽉 막혀있는 트래픽을 보고 한숨이 났다. 그래도 첫날의 들뜬 마음에 짜증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정작 오피스에 출근을 하고 매니저를 만나고 나니 든 생각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듀얼 모니터 셋업과, 회사에서 보내준 랩탑과 두 번째 모니터, 랩탑과 연결하는 dock까지, 책상 한가득 4-5개 넘는 모니터들로 꽉 찼고 개인 컴퓨터와 회사 컴퓨터, 각종 노트들이 섞여서 항상 너저분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입구 쪽에 tech 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친구 소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PM(Product Manager)과 내적 친근감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내 자리 바로 마주편에 앉아있었다. 실제로 만나기는 처음이었는데도 괜히 반가웠다. 널찍한 스탠딩 데스크에 높이가 잘 맞춰져 있는 모니터 두 개와 맥북 랩탑을 놓고 나니 책상은 깔끔하고 자리가 넉넉했다. 집에 있는 내 책상도 덕분에 모니터 두 개와 아이패드 한 개, 그리고 유튜브 용 카메라를 올려놓으니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었다. 


재택근무와 오피스 출근 환경을 비교하는데 책상이 정리정돈이 된다는 게 가장 처음 얘기하는 장점이라는 게 웃기긴 하지만 정말로 머리가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일과 나의 일상이 구분되는 느낌. 지난 2년 동안 내게 없던 구분이었다. 오피스 출근이 반 강제적이거나, 8시간을 꽉 채워 근무하느라 강아지는 데이케어에 맡기고 허둥거려야 했다면 굉장히 다른 경험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동료 중 한 명도 여자친구가 집에 없어서 강아지 때문에 일찍 가봐야 한다며 2시 반 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그래도 얼굴을 보고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것 외에는 유동적인 스케줄이라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책상을 배정받고 팀원들과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고 난 후 2시간 정도 필요한 어플과 컴퓨터를 세팅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고, 나머지 한 시간을 로그인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뒤에는 회사 계정을 통해서 셀프 페이스로 수료하는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매니저가 보내준 온보딩 다큐먼트들을 리뷰했다. 30분가량 매니저와 전반적인 회사 프로젝트 진행상황들과 내가 맡게 될 일은 무엇 일지에 대해 high level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고, 4시쯤 일어나 집으로 왔다. 얼굴을 직접 보고 인사를 하니 확실히 더 빨리 친해지는 게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저마다의 성격도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라던가 나한테 인사할 때 보인 표정이나 에너지를 보고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것도 장점이라면 아주 큰 장점이다. 


아직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지 않아서 내가 쓸 수 있는 차이점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앞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글을 계속 써나가다 보면 인사이트가 더 생기겠지만, 지금까지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했던 내용들과 오늘 하루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하이브리드가 생각보다 재택근무와 오피스 출퇴근의 장점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그래도 100프로 재택근무 여건을 선택할 것이고 오피스로 주 5일 내내 출퇴근을 하라고 하면 안 할 것이다. 매일 왕복 50분가량 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재택근무의 정말 큰 메리트이다. 오피스가 집과 가까워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면 되려 하이브리드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의견일 것 같고, 회사와 고용주들도 이런 트렌드를 인지하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적응하고 변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오피스 워커들이 집에서도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증명해 냈다. 나의 이유는 강아지이지만, 사고나 장애로 몸이 불편하거나, 무수히 많은 다른 이유들로 오피스로 출퇴근이 힘든 많은 인재들이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처럼 유동적인 working arrangement 가 많아질수록 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재택근무 옵션은 accessibility의 관점에서도 큰 이점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좋은 인재들을 더 쉽게 데려올 수 있으니 이득이다. 


나로 말하자면, 새로 시작한 회사에서 하이브리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오피스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도 더 큰 시너지를 내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가능할지, 일의 효율성이 팀원 간의 개인적인 시너지인지, 하이브리드라는 특성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일을 더 하고 겪어보며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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