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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정 Jun 12. 2023

6개월만에 억대 연봉, 나도 할 수 있을까?

초봉만 8천만원에서 1억원대라는 UX 디자인, 과연 진짜일까

미국에서는 지난 몇년간 적게는 8천만에서 1억원대의 초봉을 보장하는 UX 디자인 관련 부트캠프들이 판을 쳤다. 전통적으로 연봉이 아주 높기로 유명한 월스트리트와 금융 관련 직종들이 휘청이고, 테크놀로지 관련 주식들이 각종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 유명한 럭셔리 부동산 중개업자는 한 미디어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주 클라이언트가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 직종이었다면 요즘에는 모두 테크놀로지 종사자들"이라며 디벨로퍼 및 각종 테크놀로지 관련 종사자들의 경제적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이 지난 5년간 만들어낸 억만장자의 수가 지난 50년동안 탄생한 억만장자의 수보다 배로 많다고 한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서비스, 각종 어플과 웹사이트들, 컴퓨터, AI 등 지난 몇년간 급 성장한 다양한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 테크놀로지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마존(Amazon.com), 구글(Google.com) 등이 속한 알파벳, 애플(apple.com),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메타(about.meta.com), 캔바(Canva.com), 넥플릭스(netflix.com), 심지어 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com)까지, 소프트웨어 애즈 서비스(SaaS, Software as Service)를 바탕으로 몸집을 키운 거대 기업들만 봐도 테크놀로지와 그 서비스들의 수요와 스케일을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전세계적으로 격변의 시대를 겪은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 산업도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대부분 산업들과는 반대로 엄청난 붐을 겪게되면서 온라인 채용 공고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UX 디자이너, 시스템 엔지니어, 솔루션 설계자, 보안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등 테크놀로지 관련 직업 공고로 매일 가득찼고 2019년과 2021년 사이에 무려 810,000명 이상이 테크놀로지계에 취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른 산업에 종사하다가 직업을 잃었거나, 헤드라인 뉴스에 혹한 많은 이들이 테크놀로지 산업으로 커리어 전향을 꿈꾸게 되었고, 이 트렌드를 직감한 교육 프로그램과 부트캠프들은 너도 나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초봉 8천만원 보장, 선 수강 취업 후 후 결제, 90%의 수강생이 1년 이내에 취업한다는 통계(미국 기준) 등 보기에만 해도 엄청난 공략들이다. 필자도 이런 높은 초봉에 기대를 걸고 UX 디자인으로 커리어 전향을 선택한 사람 중에 한명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공략들은 얼마나 현실적인 내용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을까? 일단 가장 쉽게 대답하자면 "할 수 있다"는게 내 견해이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고 영어는 "but" 이후의 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듯 "할 수 있다 [하지만]"의 뒤에 어떤 말이 나오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하고자 한다.  


나는 높은 초봉을 약속하는 부트 캠프 중에 가장 잘 알려지고, 또 가장 비싼 프로그램인 General Assembly 에서 3개월 간의 User Experience Design Bootcamp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3개월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 직장인과 동일한 스케줄로 점심 시간 전까지는 UX 관련 방법론, 다양한 이론과 역사, UX 관련 중요한 인물들, 케이스 스터디들에 관한 강의를 듣고 점심 시간 후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조별로 나누어 함께 디자인 프로젝트를 완성해나갔다.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들과 온갖 줄임말들, 회사를 다니게 되면 실제로 사용하는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소프트웨어들을 찾아보고 다양한 리서치 툴들을 다뤄보면서 3개월동안 UX로 온 세상이 꽉꽉 채워져갔다. 친구들과 주말에 잠깐 만나 점심이라도 먹는 날에는 우리가 쓰는 어플, 메뉴판, 심지어는 주문부터 음식을 받을때까지의 손님으로서, 유저로서의 경험을 분석하며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을 찾는 날에는 "Bad UX!"라며 깔깔거리곤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부트캠프에서는 포트폴리오에 사용할 수 있는 케이스 스터디 프로젝트들을 계속 던져주었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포트폴리오에 꼭 써보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과제를 마무리해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무작정 지원한 회사들에서는 전화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다 낙오되었다. 현역 디자이너들의 포트폴리오들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결과는 "맙소사"였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케이스 스터디를 가지고 취업 문을 두드리다니. 부트 캠프 졸업생들은 다 쿠키 커터(cookie cutter)같은 웹사이트에 딱 봐도 허술한 케이스 스터디들을 가지고 덤비는데 딱 봐도 부트캠프 인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웹사이트를 보고도 나한테 전화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 했던 회사들이 오히려 천사로 보였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전화 인터뷰에서 계속 실패한 이유였다. 일해본 경험이었다. 분명히 이력서에는 UX 관련 일을 해보지 않은게 명백히 써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전화해서 "VR 관련 디자인 경험이 있으신가요?" "게임 산업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등의 질문을 던지고, 당연히 "아니요"라는 내 대답에 항상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일을 하지 못하면 경력이 쌓이지를 않고, 경력이 없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취업을 준비해 본 많은 취준생들이 겪어 본 딜레마일 것이다. 이런 똥같은 상황이라니! 화가 나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든 경력을 쌓고 그 경력을 가지고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택은 pro bono 서비스였다. Pro bono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대가 없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UX 디자이너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부족하여 사람을 고용하지 못하는 비영리 단체를 공략하기로 했다. 가장 처음 접한 일은 아리조나 주에 있는 한 단체였는데 언어 장벽으로 인해서 미국의 건강 보험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라틴계 이민자들을 상대로 보험 어플리케이션 작성을 도와주는 단체였다. 아주 작게 시작해 열명 남짓되는 직원들이 운영하는 단체였는데 입소문이 퍼지며 점점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고, admin 일 쪽으로 일손이 딸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번째 미션은 직원들이 새 고객의 정보를 받고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시키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쓸수 있는 간단한 플렛폼을 디자인 했고 재능 기부를 하던 다른 개발자와 만나 나의 디자인을 구현했다. 아주 기본적인 기능들만 있는 플렛폼이였지만 내가 부트캠프를 나와서 처음으로 스스로 찾아서 한 일이자, 개발자와 함께 일을 한 첫 걸음이었다. 수많은 전화 인터뷰를 실패하고 깨달은 것은 일한 경험 중에서도 개발자와 함께 디자인한 프로덕트가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적용된다는 것인데, 이 일 덕분에 “개발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단체는 뉴저지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로 학습 장애 (learning disability)가 있는 아동 및 성인들에게 취업 교육 및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단체장은 개발을 맡길 대학교 학생 단체를 알고있는데 디자인을 해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며, 회사의 웹사이트의 전반적인 UX audit을 부탁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네비게이션 바라고 부르는 상단 메뉴바였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사방 팔방에 흩어져있어 어디서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많은 내용의 텍스트 기반 서류들은 PDF 형식으로 첨부되어 있어 로딩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한 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전체적인 브랜딩도 어둡고 칙칙한 색깔로 우울하고 오래된 2000년대 웹사이트들을 연상시켰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운영해온 단체이니 만큼 온라인 상의 브랜딩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훨씬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단체였다. 한달 반 정도에 걸쳐 메뉴들을 정리하고 웹사이트 내에 있는 콘텐츠들을 간략하게 재정비한 디자인을 보내주었다. 돈은 받지 못했지만 좋은 미션을 가지고 일하는 비영리 단체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또 이력서에 UX 관련 경력을 쓸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이 두 단체에서의 일을 케이스 스터디를 작성하여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올리고 이력서도 그에 맞게 고쳐서 쓰고 나니 어느 한 보험 회사에서 두달간의 계약일이 있는데 해볼테냐고 연락이 왔다. 랜딩 페이지와 회원 가입, 로그인 페이지 세 개의 UX를 리뷰하고 회사에서 가져다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세개 웹페이지들을 모던화하고 사용하기 쉽게 재디자인했다. 엄청난 일은 아니였지만 제법 큰 규모의 회사에서 개발자와 아키텍쳐 디렉터 등과 함께 일을 해본 경험은 그 당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비영리 단체 두군데와 보험 회사에서 일한 경력들을 가지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재정비 한 뒤에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하루에 열개 이상 회사에 지원을 하고, 지원한 회사들은 엑셀 파일에 넣어두어 회사 이름, 포지션 이름, JD(job description), 지원 날짜, 합격여부, 회사 내 결정권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지 등을 기록하고 트랙했다. 그렇게 준비한지 한달 째 되던 날, 그리고 보험회사 일을 끝내가던 막바지에 네 군데 회사와 인터뷰가 잡혔고, 그 중 세 회사는 final round까지, 그리고 마지막 두 회사에서 offer letter를 받게되었다. 각각 아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회사들이였는데 같은 연봉이라면 대학교 동기들도 많고 내가 익숙한 피닉스(아리조나 주)에서 일하는 게 훨씬 좋아 보였다. 이미 몇년 간 엘에이 생활 이후로 그곳 생활은 흥미가 없기도 했었다. 전반적인 생활비나 물가도 아리조나 주가 훨씬 저렴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조나 주의 엄청난 여름을 걱정했지만 추위를 극도로 많이 타는 나에게는 오히려 천국이 따로 없는 곳이였다. 그렇게 나는 부트 캠프 3개월, 취업 준비 3개월, 총 6개월만에 UX 디자이너로서의 첫 취업에 성공했다.


그럼 다시 이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서, 6개월만의 1억 연봉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을 해보겠다. 특히 연봉에 관련해서는 온라인상에서 투명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 나는 누군가 나한테 확실하게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혹시 그때의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최대한 숨김없이 정확하게 나의 경험을 적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부트캠프를 8월 중순에 졸업하고 바로 몇주 후 8월 말에 어느 회사에서 오퍼를 이미 받았었다. 이 회사를 포함하면 사실상 3개 회사에서 오퍼를 받은 것이였는데, 내가 거절했던 이유는 $65,000이라는 낮은 연봉 때문이였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분명히 최소 연봉에 대한 어느정도의 기대를 하고 뛰어든 일인데, 특히나 많은 부트 캠프 마케팅에서 듣던 오퍼와는 너무 다른 숫자였다. 정작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부트 캠프에서 매칭해준 커리어 코치와 얘기를 하는데도 기대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일이 있는게 없는 거 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반응이였다. 대출까지 받아서 시작한 일인데 이건 아닌것 같았다. 심지어 텍사스주로 이사까지 해야 했고 이사 비용도 내가 부담해야했다. 편안하고 익숙한 아리조나 생활을 포기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텍사스로 대출도 갚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사 비용을 감당하고 이사를 감행한다? 당장 가지고 있는 가구들도 전부 팔거나 처분을 해야했다. 어스틴 지역의 렌트도 많이 올라서 매달 렌트비와 월 700불의 대출금만 생각해도 빠듯한 삶이었다. 구글에 검색을 해봐도 $65,000은 초봉 범위 중에서도 아주 낮은 곳에 속했다.언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지 당장 알수 없는 일이였지만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거절을 했고, 그 이후 3개월간 무급여로 비영리 단체 일과 보험회사 일을 찾아서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다른 회사들에 지원하면서 초조함도 컸었고, 두달이 지나는 시점에서는 후회도 많이 했다. 그냥 일 한다고 할걸, 무슨 자신감으로 거절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여기저기 일을 하고 다니면서 나름대로 짤막짤막한 경력도 생겼고, 첫 오퍼를 거절하고 3개월 후, 짧은 시간동안 몸값을 나름 올려 1억원 오퍼를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미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같이 부트 캠프를 졸업한 동기들 중에는 이미 10년간 개발 경력이 있던 한명 다음으로 내가 두번째 취업이었고, 한달 후에는 건축 디자이너에서 UX으로 전향한 다른 동기도 취업에 성공했다. 문제는 온라인 상에서 말하는 성공 스토리와 특히 부트 캠프에서 강조하는 해피 엔딩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부트 캠프 졸업 거의 2년이 다되가는 시기 아직도 일을 찾고 있는 동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한 두달 지원하다가 포기한 동기도 있고, 실질적인 경험은 쌓지 않으면서 아직도 부트캠프에서 만든 케이스 스터디를 들고 똑같은 방법으로 회사에 지원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하는 동기도 있다. 부트 캠프에서 광고하는 1억 연봉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부트 캠프에서 해주는 떠먹여주기 식 포트폴리오 준비로는 조금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반 발짝만 앞서서 조금 노력해도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어차피 몇달간의 시간을 투자하여 만드는 포트폴리오인데 조금만 노력해서 인터뷰 때 어필할 수 있는 경력들을 쌓고, 자신의 경험들을 잘 포장해서 알맞게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 텔링과, 디자이너로서의 브랜딩을 잘 하여 공략을 한다면 1년 이내로 좋은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른 산업이나 직종에서 있던 경력도 브랜딩만 잘 하면 다 힘이 될 수 있다. 경력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급여로 비영리 단체들과 일을 하는 것도 열정과 성의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툴이 될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잘 살려서 스토리 텔링을 잘 할 수만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이직 혹은 취업준비는 무난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위 내용은 미국 UX 디자인 채용 관련된 필자의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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