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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19. 2023

밤에 빛나는 15개월 나가요병



나나 남편 모두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이니 아이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태아수신증으로 인해 대학병원 출입을 일반 소아과보다 많이 했던 아기

일상생활이 안정될만하면 대학병원으로 통원하여 수신증 추적검사를 해야 했던 터라 먹고 놀고 잠자는 패턴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았던 결과인지 깊은 잠을 자지 않았고 몰입도와 집중력이 매우 짧았다.

이제 걷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때론 빨리 뛰어보기도 했던 생후 15개월

아기가 말이 느려서 그런지 사회적 활동이나 상호작용에는 영 관심이 없고 그저 내 옆에서 붙어서 내가 무얼 하는지 쳐다보거나 참견해 본다.

블록도 한번 만져보고, 인형도 한번 만져보고, 책도 한번 만져보고...

책을 읽어주려 하면 말하지 말라고 내 입을 막아버렸는데 내 입조차 막지 못하는 조막만 한 손이 사랑스럽지 그지없다.

단순발달지연이었던 우리 아기를 이해하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지만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그저 기다림으로 인내심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맞춰줬다.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불면증이 심했다.

그래도 이맘때 15개월 아기보다 더 많이 잤던 건 확실하다.

아기는 밤에 일어나고 울고 자고를 반복하며 쪽잠을 잤는데 스마트폰으로 통계를 보자니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만약 평범했던 보호자였다면 새벽에 깨서 엄마를 흔들어 깨우는 아기의 어깨를 붙잡고 이제 그만 자라고 소리쳤을지 모른다.

우리 아기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나가자며 잉잉 거린다.



안돼, 지금은 너무 추울 거야
잉잉
다시 자려고 노력해 보자, 이리로 와봐
흐엉으앙앙
엄마가 안아줄게
잉잉



말이 느렸던 아기는 손가락으로 현관을 가리킨다.

마음이 답답한지 고개를 위아래로 처박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억지로 눕혀서 토닥거리면 금세 몸을 뒤집어서 현관으로 달려간다.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바닥에 서서 현관문을 낑낑 거리며 돌려본다.

어디를 가고 싶어서 저리 간절하게 세상을 찾을까?







아이의 겉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겨준다.

나가는 채비를 하는 아기는 기분이 좋은 가 보다.

연신 발을 통통 거려서 신발을 신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도 새벽 1시, 새벽 4시에 울며 나가고 싶다고 하니, 나중에는 새벽 1 시병 도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나가면 새벽녘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날이 추운 날은 새벽녘 바람에 찔린 코끝이 아프기도 했다.

아기는 아장아장스럽기도 하고 엉금엉금스럽기도 한 걸음으로 놀이터를 향하기도 하고, 편의점을 향하기도 한다.

때론 불 켜진 동네 파출소로 들어가기도 하고 가로등을 별빛 삼아 무작정 따라가기도 했다.

나는 그 뒤를 묵묵히 걷거나 문득 외로워질 때는 아기를 안아서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새벽 4시의 놀이터를 깨우는 자명종이 우리였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놀이터 한편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도 화단 끄트머리에서 오줌을 싸던 강아지도 없다.

아기는 낮은 계단을 올라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고 차가운 놀이 기구들을 손으로 쓱 만지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유령 같기도 하고 놀이터에 떨어진 별똥별 같기도 했다.

벤치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울컥 거리며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지만 한 편생 우울감속에 살았던 나에게 다양한 감정과 불필요한 자극을 주는 이 순간이 오묘히 신기하고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생애 미련 없다며 당장 사라질 것처럼 살다가도 이 시간을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불안하고 긴장감 높은 아기는 바깥에서 이것저것 만지고 땅을 디디며 안정감을 찾았고 오르내리던 우울감에 휩쓸려서 나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던 나는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우리 두 사람을 지키고 있다.






나가요병은 6개월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나가요병이 줄어들었던 이유중에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 등등 아기에게 필요한 발달을 위해 치료적 개입을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아기가 성장하면서 충동적인 행동과 불필요하다 생각했던 행동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불안도를 낮추기 위해 바깥에서 불빛을 찾아 떠돌아다니거나 이것저것 만져 보는 게 아니라 엄마에게 안겨서 다독거림을 받는다든지, 따듯한 우유 한잔을 마시며 속을 달랜다든지...



우울장애를 앓으면서 '내가 과연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 제대로 아기를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많았는데 나의 우울장애는 아기를 꽤 잘 지켜줬다 생각한다.

충동적으로 화낼 수 있던 순간을 우울감으로 가라앉혀 주기도 했고 아기 때문에 힘들다고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려는 현재에 과거의 트라우마를 덧씌우니 현재의 불만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나에게 힘들게 아기 키웠다 했지만 생각해 보면 우울했던 어린 시절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 않았다 한다.



우울장애는 힘들 수 있었던 나의 육아일상에 잔잔한 족쇄였고 과거 열등감의 승리였다.

덕분에 반년 간의 나가요병을 자알 보낼 수 있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내 앞에서 걷던 아기의 모습, 벤치에 앉아 새벽하늘과 아기를 번갈아 보던 순간은 나에게 꽤 소중하게 남아있는 나가요병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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