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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Oct 19. 2024

2. 프라하의 그늘 속에서

슬픔 속에 피어 난 작은 꽃

2화를 쓸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일단은, 가는 데까지 가볼까 합니다.  몇 걸음만 걷더라도요.

                                                                                                          - 이 작가-



2화 로그라인: 프란츠는 오띨리에의 존재에 사로잡혀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아침 카페 슬라비아로 향한다. 프라하의 도시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연결이 더욱 깊어지기 시작한다.




카페 슬라비아의 아침은 여전히 분주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프란츠의 눈에는 단 한 사람만 눈에 들어왔다. 오띨리에였다. 한스와 나누던 불안한 대화를 마친 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은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묘한 강인함이 느껴졌다. 프란츠는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페 문을 나서는 순간,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싸늘한 공기였다. 프라하의 겨울은 아직 깊지 않았지만, 아침 공기에는 날카로운 차가움이 있었다. 오띨리에는 카를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어떤 결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를 피하려고,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한 걸음이었다. 프란츠는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따라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힘이 그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강변을 따라 걷던 오띨리에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텔라강의 물결이 낮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 물결 위에 비친 회색 하늘은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쓸쓸해 보였다. 프란츠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섰다.


오띨리에는 그가 옆에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흐르는 강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프란츠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강물처럼 깊었고, 그 안에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피로가 서려 있었다. 잠시 동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 침묵 속에서, 프란츠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뎌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슬픔과 피로 속에 피어난 작은 꽃 같았다. "당신은 카페에서 나를 보셨던 그분이군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떨림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프란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는... 그냥... 당신이 괜찮은지 궁금해서 따라왔어요."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렇게 걱정해주시는 건 고마워요. 하지만 프라하에서는 이런 친절도 조심해야 해요." 오띨리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무언가 깊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 프란츠는 그녀의 그런 눈빛에 매료되었다.


"그냥... 저는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래요." 프란츠는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놀랐다. 너무 솔직한 말이었다. 그는 왜 이 여인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오띨리에는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행복이라... 지금 이 도시에선 너무 먼 이야기 같아요." 그녀는 천천히 난간에서 손을 떼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프란츠도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말없이 카를교를 걸었다. 강 위로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고, 그들이 걷는 다리 위로 은은한 빛이 내려앉았다.


카를교를 지나 광장에 이르렀을 때, 오띨리에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프란츠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글 쓰는 사람 같아요. 맞나요?"


프란츠는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오띨리에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당신의 눈빛에서 느껴졌어요. 무언가를 기록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의 눈빛이었거든요."


프란츠는 그녀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글을 쓰는 이유를 누군가에게 설명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 보였다. "맞아요. 저는 글을 써요. 그리고... 아마도 당신에 대해 쓰게 될 거 같습니다."


그녀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영광이네요. 하지만 제 이야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아요. 어쩌면 당신의 글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죠."


프란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행복한 이야기만이 가치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신의 이야기는 분명히 중요해요. 당신이 겪어온 모든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예요."


오띨리에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려 했지만, 그녀는 억지로 그 눈물을 삼켰다.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요. 하지만 이 도시에선 좋은 사람들이 먼저 사라져요. 그것만은 알아두세요."


프란츠는 마음이 저릿해졌다. 그녀의 말 속에는 이 도시를 지배하는 억압과 두려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그녀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카를교를 완전히 벗어나 좁은 골목길에 이르렀을 때, 오띨리에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었다. 그녀의 숨이 약간 가빠져 있었다. 프란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에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무리하게 따라온 건 아닌지… 죄송해요."


오띨리에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고맙네요. 이 도시에선 이런 작은 산책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거든요.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소중해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프란츠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잠시 동안의 평화와 안정이 보였다.


프란츠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압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의 고통과 두려움이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크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조용히 살아남고자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순간 프란츠는 더 이상 그저 관찰자가 아닌, 그녀의 삶 속에 발을 들인 동료임을 느꼈다.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프란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그녀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녀와의 대화가 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오띨리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언젠가는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프란츠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멀어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강한 그리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날 아침, 프란츠는 그녀와의 짧은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녀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녀의 이야기야말로  이 도시에 남길 수 있는 작은 저항이자, 희망의 조각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프란츠는 다시 카페 슬라비아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가 자리에는 여전히 그의 커피잔이 남아 있었다.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펜을 들었다. 오늘의 만남, 그녀의 눈빛, 그리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는 오띨리에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바삐 펜을 움직였다.  


프라하의 거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프란츠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였다.


그가 펜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프라하의 고즈넉한 아침 풍경 속에서 오띨리에의 존재가 그의 마음을 점점 더 사로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가진 아픔의 깊이는 글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자신이 이렇게까지 몰두할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그녀는 그저 지나가는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만남이 남긴 흔적은 분명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와의 짧은 교류는 프란츠에게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의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글은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고통이, 그녀의 불안이,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려는 작은 희망이 그의 글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프란츠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다시 펜을 들었다. 그는 오띨리에와의 다음 만남을 상상하며 글을 이어 나갔다. 프라하의 거리, 그곳에서 다시 마주할 순간을 그리워하며,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카페 슬라비아에서, 그녀와의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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