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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줍기

문학처럼, 대화도 독해가 필요하다

by 명진 이성숙

한 편의 시도, 한 권의 소설도 결국은 ‘듣고 말하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문학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듯, 대화 역시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리는 순간이 있다. 언어가 의미 전달 수단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때로는 마음을 감추고, 때로는 마음을 꿰뚫는다. 언어로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러니 그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말을 주고받는다. 같은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그 차이는 종종 오해를 낳고, 때로는 관계의 깊이를 만든다.

여자가 하루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남자는 재빨리 결론을 찾는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라는 말에 여자는 숨이 턱 막힌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말하는 과정 자체다. 감정을 나누는 것. 반면 남자는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이 간극은 오랜 진화의 흔적일지 모른다. 원시 시대, 남자는 사냥을 위해 빠른 판단과 명확한 결론이 필요했다. 여자는 공동체를 돌보며 관계 속에서 생존을 도모했다. 목표 중심의 남자, 관계 중심의 여자. 이 패턴이 현대의 대화 방식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회사에서 일이 있었어.”

라는 말에 남자는 해결책을 꺼내 들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여 주길 바란다. 한 사람은 문제를 풀고 싶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을 풀고 싶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상사가 너무 힘들게 해.”

라고 말하면, 남자는,

“그만두는 건 어때?”

라고 답한다. 여자는 위로를 원했을 뿐, 대안을 물은 게 아니다. 여자는 ‘듣지 않는다’고 느끼고, 남자는 ‘왜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라며 피로해진다. 말은 오갔지만, 마음은 닿지 않은 대화다.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그것은 ‘듣는 법’일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천천히 읽고, 곱씹는다. 좋은 관계를 위한 대화는 빠른 결론보다 천천히 듣는 데서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말없이 걷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위로가 되는 대목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고통 속에 있는 나오코와 함께 산책하며 긴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곁을 조용히 걷고, 조심스레 호흡을 맞춘다. 그 침묵 속에서 나오코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와타나베는 말을 아끼되 마음을 기울인다. 진심 어린 경청은 말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비슷한 감정의 결을 어린 왕자에게서도 발견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직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거야.”


길들여진다는 것은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기울이며, 조용히 기다려 주는 일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듣고, 말보다 더 큰 책임과 애정을 배운다. 듣는다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일이며, 함께 시간을 쌓아 가는 행위다.

남자가 여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동의가 아니라 동행이 된다. 함께 걸어 주는 감정의 동행. 때로는 듣는다는 행위 자체가 가장 큰 응답이 되기도 한다.

이 대화의 차이는 연인 사이를 넘어 사회 전반에도 드러난다. 여자는 친구들과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하루를 공유하고, 남자는,

“밥 먹었어? 응, 잘 자.”

로 끝낸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만 산같이 쌓여 간다.


사회학 연구도 이 차이를 뒷받침한다. 남성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명확하고 단호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여성은 공감과 협력을 바탕으로 대화에 접근한다. 이러한 차이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가 더 옳은 게 아니라, 누가 얼마나 다르게 말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감정적인 남자도 있고 실용적인 여자도 있다. 중요한 건 상대의 스타일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문학처럼, 대화도 독해의 기술이 필요하다.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사랑이고 관계다.

중요한 건 ‘다름’의 인정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본다. 그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대화는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징검다리다. 때로는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인다. 말 없는 미소 하나가 오해의 벽을 허물고 대화의 강을 건너게 한다.

(문예바다 2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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