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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Oct 18. 2023

<도적:칼의 소리>, 민폐를 싫어하는 ISFJ들을 위해

ISFJ의, ISFJ에 의한, ISFJ를 위한

전직 영화 기자의 가끔 오는 영화 리뷰... 인데 드라마도 해보는 리뷰. <나는 왜 연인 폐인이 되었나>에 이어. 


(이 글에는 <도적: 칼의 소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지금 바로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연인>도 뒤늦게 쓰고, 어쩌다 보니 <도적: 칼의 소리>도 뒤늦은 리뷰를 쓰게 되었다. 나름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자부하는 나인데(특히 연예계에 있어선!) 백수 주제에 왜 이리도 바쁜지 밀려 밀려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를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다. 


본 작품들을 모조리 리뷰를 남기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만큼은 글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민폐 끼치는 걸 죽도로 싫어하는 ISFJ인 나에겐 꽤나 괜찮은 작품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ISFJ가 아닌 분들도 재밌게 보셨을 수 있다. ISFJ임에도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ISFJ 언급은 <도적: 칼의 소리>를 조금 더 재밌게 표현해 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넷플릭스

<도적: 칼의 소리>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총 9부작 시리즈다. 1920년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여든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이 기본 시놉시스이다. 


시청자들은 주인공 이윤(김남길)의 시선으로 극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이윤은 과거 노비로 천한 신분이었지만 주인인 이광일(이현욱)에 의해 면천된다. 노비에서 그저 평범한 양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마냥 고마워할 수만은 없다. 일본 군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광일이 자신의 성과를 위해 세운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기 때문이다. '친구'라는 허울 좋은 말로 이윤을 이용하고자 하는 광일 앞에서 이윤은 못 본 척, 그의 말에 따라준다.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도 이제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므로. 


하지만 이윤은 죄 없는 민간인, 그리고 같은 민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 앞에서 무너져 버리고 만다. 자신의 손에 묻힌 피는 결코 씻을 수 없으니 누군가 자신에게 복수해 자신의 숨통을 끊어주기만을 바라며 유가족이 있는 간도로 향한다. 


그렇게 찾아간 충수(유재명)는 오히려 이윤을 용서하고, 충수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벌어진 마적들의 횡포를 보며 이윤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이윤은 도적이 되었다. 


넷플릭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인가. 이러니 시청자들은 이윤의 입장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기구한 운명, 그를 용서해 준 대인배, 그를 위해 싸움을 결심하는 주인공까지. 자연스럽게 이윤을 응원하게 된 시청자들에게 <도적: 칼의 소리>는 그 응원을 더욱 부추긴다. 민폐 없는 캐릭터들로 말이다. 


드라마에서 민폐란, 자고로 적이 아닌 내부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적은 민폐일 수가 없다. 적은 주인공을 처단하기 위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니 그는 그저 '빌런'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내부 사람들을 돕고자 하나 그 행동이 오히려 내부 사람들의 발목을 잡을 때, 우리는 이런 캐릭터를 '민폐 캐릭터'라고 한다. 


<도적: 칼의 소리>에서 마음 놓고 이윤을 응원할 수 있는 건 이런 민폐 캐릭터가 없는 덕분이다. 이윤이 이끄는 도적 무리에서 싸움을 못해 동료들의 발목을 잡는 이가 있던가. 없다. 저격수 강산군(김도윤)의 아편 중독이 계속해서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게 만들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민폐가 되는 일은 없다. 


넷플릭스

간혹 남희신(서현) 캐릭터가 민폐라는 말들도 보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남희신은 간도선 부설 자금을 빼돌려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다. 예상하셨듯 이윤과 멜로 라인을 형성하며, 조선 총독부 철도국 과장이라는 신분으로 위장한 독립 운동가이다. 


그런 그를 두고 '민폐'라 이야기하는 건 아마도 <미스터 션샤인>의 애기씨, 고애신(김태리) 캐릭터와 비교되기 때문일 터다. 지체 높은 양반 가문이라는 배경에 숨어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고애신은 장총을 들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솜씨 좋은 저격술까지 뽐낸, 활동적인 독립 운동가 캐릭터였다. 하지만 남희신은 어떤가. 총이면 총, 싸움이면 싸움, 무엇하나 제 몸 건사할 방법이 없다. 때문에 간도선 부설 자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이윤과 그의 도적 무리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때문에 '민폐' 소리를 듣지만, 남희신을 위해 항변을 해보자면 그때 그 시절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이들은 고애신도, 남희신도 모두 다 있다. 싸움으로 제 몸을 지키며 일본인들을 처단한 사람도 있고, 신분을 위장해 정보를 빼내는 것으로 목숨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도적: 칼의 소리>의 감독은 그런 남희신을 선택한 것뿐이다. 또한 독립 운동가임을 알고 도와주는 이윤과 그의 무리들은 그때 그 시절 모두가 동지였던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동지가 위험하면 동지가 나선다. 독립 운동가 모두의 노력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되었엄을 새삼 상기시키게 해 감정 충만한 ISFJ로서는 뭉클하기도 했더랬다. 


넷플릭스

언년이(이호정)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도적: 칼의 소리>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캐릭터 중 하나로, 언년이는 소위 말해 돈 받고 사람 죽여주는 킬러다. 이윤은 그의 타깃이었으나 충수에게 받은 호의 덕분에 충수에 대한 감사함을 품고 있던 언년이가 이윤의 목숨을 살려주게 된다. (충수 손에 죽으라고) 하지만 이후 우연히 이윤이 살아있음을 알고 그를 죽이려 하지만, 애초 이윤을 살해하라 의뢰를 했던 이광일의 배신으로 이윤과 손을 잡게 된다. 


사실 광일 못지않게 언년이는 이윤 팬의 입장에선 굉장한 방해 요소다. 이윤이 가는 곳마다 마주치며 이윤을 어떻게든 죽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민폐인가? 그것은 아리송하다. 앞서 말한 빌런에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민폐 캐릭터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후에 이윤과 손을 잡고 나면 천군마마를 얻은 것 같은 든든함까지 준다. 돈 받고 다 죽여주는 킬러가 우리 편에 섰으니, 이보다 더한 아군이 어디 있으랴. 


넷플릭스

ISFJ라 그런가, 유독 민폐 캐릭터가 나오는 답답한 작품에 힘들어하는 나다. (아마 누구나 다 민폐를 싫어하시겠지만...) 그래서 오래간만에 시원한 작품이 나와 반갑다. 민폐 없는 ISFJ들이 사는 세상, <도적: 칼의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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