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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Oct 29. 2023

3. 뭐지? 두 남자의 정체는...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3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거문리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조용한 시골해변, 초록색 작은 문이 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정원은 아직도 신비로운 구석이 있었다. 겨울이라 꽃은 없고 나무들도 가지가 앙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메마르고 추운 느낌이 없는 정원이었다. 달라진 건 새로 생긴 작은 박스 같이 생긴 건물밖에 없는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이현이 속으로 안도하고 있는데 재이가 소리를 쳤다.

"엄마 저기 봐요."

 재이의 짧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은 할머니의 집 안이었다. 집안 대청마루 오른쪽에는 작은 방 하나와 부엌이, 왼쪽으로는 큰 방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방에 있던 책들이 대청마루 쪽으로 모두 옮겨져 있었다. 책은 언뜻 멀리서 봐도 만화책이었다. 재이는 만화책을 보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영업을 시작 안 했어요.”

 “아...”

 거문마을에서 볼 수 있는 얼굴 타입은 아니었다. 이현은 키가 큰 청년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작은 꽃 집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혹시 뭐,,, 찍고 있나요?”

 “네, 찍다니요?”

 “아, 요즘은 뭐 티브이에서 시골에 카페 하는 연예인을 촬영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저희 여기 카페를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연예인도 아니고요.”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나요?”

 “여긴 카페 할 만한 곳이 아니에요.”

 “음, 어떤 면에서요?”

 “게다가 음,,, 당신들같이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재이가 말하고 있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뭐 거문마을이 그렇게 구리다는 건 아니에요. 여긴 외지인들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니거든요.”

 “그거라면 저희도 알아요.”


 하얀 스웨터가 쌓인 눈에 반사되어 그의 얼굴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보통 남자들보다도 더 큰 키에 군살도 없지만 마르지도 않은 그의 몸에 걸친 하얀 스웨터 위로 눈이 조금씩 떨어졌다. 

 “그리고 이 집은...”

 “작은 꽃 할머니가 살던 곳인데...”

 이현이 하는 말을 재이가 받아쳤다. 재이의 말에 낯선 사람들의 방문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던 하얀 스웨터의 남자가 드디어 놀라는 듯했다. 


 “할머니를 아세요?”

 남자가 이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거문마을에서 이런 남자를 볼 줄은 몰랐고, 게다가 그런 남자랑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현은 세수도 안 한 얼굴에 커다란 뿔테안경, 아무렇게나 털모자를 눌러쓴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

 한숨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외마디의 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지는 순간, 거문마을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쏴아...

 “제가 처음 왔을 때 길을 물어봤죠. 이 집주인할머니에게 요. 아... 그런데... 돌아가셨으니까, 집이 팔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등뒤에서 재이가 조심스래 말을 걸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급진 외모의 소유자께서 아직 뭐라고 답을 안 했으니까 그 남자로부터 대답을 들어보고 싶었다.

 “엄마...?”

 그새를 못 참고 재이가 재차 물었다. 

 “왜 그래 꼬마야?”

 고급진 외모의 남자가 재연이에게 물었다.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나 발이 추워요.”

 재이는 재빨리 말을 했다. 

 '아차. 재연이 발, 재연이 털신이 작아져서 새로 사 주려던 참이었는데...'

 가을에 신던 얇은 운동화를 신고 눈 밭에 서 있자니 재이의 두 발이 꽁꽁 얼 것만 같았다. 재이는 두 어른의 대화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얼른 말을 내뱉었다. 

 “미안, 재이야. 이제 자전거 타. 가자.”

 이현이 두 청년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려던 참이었다. 



 “저, 커피 좋아하세요?”


 커..... 피....라고 했다. 방금. 하긴 카페라고 이름도 붙였으니 커피를 안 팔 리가 없겠지. 


 “아니요.”


 그런데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쌩한 대답을 날려버렸다. 재이의 발을 생각하니 더 머무를 수도 없었고 커피 한잔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들킬까 봐 얼른 대답을 하면서 입꼬리를 내렸다.

 “코코아도 있어요. 아이는 코코아를 마시면 될 텐데. 어디로 가시는지는 몰라도 잠시 있다 가시면 추위도 가실 거예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 친절함은 내가 닮아야 하는 건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의 말투는 그다지 호스트 답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게스트하우스 후기에는 늘 깨끗하고 해변에서 거리도 가깝고 필요한 물품이 잘 구비되어 있지만 호스트는 무뚝뚝하고 말겁기가 무섭다는 평이 많았다. 

  '이 고급진 외모의 소유자가 만약 호스트였다면? 나의 게스트하우스는 평점 5점을 달성했을 텐데.'

 쓸데없는 잡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벌써 재이는 신발을 벗고 마당에 지어진 유리 건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재이야...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가면....”

 “우와... 엄마 여기 봐요.”

 “오....”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건물 전면에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커피 바가 있었다. 뒤편에는 커피 기계가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었고 왼쪽 벽으로는 작은 싱크대, 그리고 상부장에는 짙은 나무색으로 만들어진 찬장이 있었다. 찬장에는 빼곡히 찻잔들이 들어가 있었다. 유리컵부터 가지각색의 잔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 자체로 인테리어가 되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쪽이 아니었다. 바로 입구에서 왼쪽으로 진열되어 있는 만화책들이었다. 만화책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얼핏 봐도 구색 맞추기 위해 책들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주인장이 책을 어지간히 사랑해야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재이가 읽을만한 책들도 몇 권 있었다. 책들이 있는 곳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한옥의 대청마루 같았다. 재이는 얼른 신발을 벗도 총총걸음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와 따뜻해." 

 아마 바닥에 난방이 돌아가고 있나 보다. 

 "멋지네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와버렸다. 

 "괜찮나요?"

 고급진 외모의 남자와 이야기를 하던 또 다른 남자였다. 엇비슷하게 큰 키, 날카로운 콧날에 비해 아래로 처진 눈은 누가 봐도 착하고 순한 인상이었다. 모카색 조끼를 입고 밤색 비니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예술가의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네 괜찮아요. 썩,,, 괜찮아요."

 '왜 그랬을까. 굳이 썩이라는 말을 갖다 붙여야만 내 마음이 놓이는 이 우라질 성격 같으니라고.'

 이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만화책을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요즘은 다 핸드폰으로 책을 읽으니까요. 굳이 카페에 와서 만화책을 찾는 사람은 없겠죠?"

 "있지요."

 썩 괜찮다고 할 때의 자신 없는 목소리는 어디 가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조용한 카페 안을 울리도록 소리친 사람은 바로 이현이였다. 

 "여기..."

 이현은 얼른 손가락으로 재이를 가리켰다. 이미 재이는 구석진 자리에 뱀이 똬리를 틀 듯 자리를 뻗고 두 손으로 책을 감싸 안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한테는 자연도 문명도 모두 감사하죠."

 "아 그렇군요! 정말 다행이다." 

 "저, 커피 지금 마실 수 있나요? 혹은 원두라도 구입이 가능할까요?"

 "아! 아직 정식 오픈은 안 했어요. 그래도 커피는 드실 수 있어요." 

 비니를 쓴 예술가 청년이 말했다. 주로 커피를 만들 사람은 이 청년 같아 보였다. 아까부터 커피 기계 쪽에서 떠나질 않고 뭔가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정말." 

 '너무 크게 말했나? 나는 때론 속으로 삭여도 될 말을 한다니까...'

 그날, 이현은 우유거품이 하얗게 내려앉은 커피 위에 시나몬향이 그윽한 카푸치노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부드러운 우유거품이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내려앉은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신 그 순간, 이현은 이 거문마을에 더는 바랄 게 없다고도 생각했다. 

 '완벽해! 아 근데 대체 이 청년들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녀는 더 묻고 싶었지만 창밖으로 바라보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곧 다시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날씨였다. 눈이 더 오면 길이 미끄러워지니 얼른 라니집으로 가던지, 카페에 머물던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이현은 얼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재이는 못내 아쉬워서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아저씨, 여기 계속 있어요?"

 "재이야, 아저씨는 무슨. 이렇게 젊고 멋진 청년님들에게..."

 "아, 저희 아저씨 맞는데... 재이?"

 재이가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깐 미완성의 카페 안에 정적이 흘렀다. 

 “당분간은 있을 거야. 아저씨가 있는 동안은 언제든 만화책을 보러 와도 좋아.”

 “아, 감사합니다.”

 “이 근처 사세요?”

 하얀 스웨터의 고급진 외모의 아저씨가 이현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거문 약방 뒤에 있는 집이요. 여기서 십분 거리정도 돼요.”

 “아. 거문 약방...”

 청년이 뒷말을 흘리는 걸로 보아 그 약방과 무슨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희동이가 아직 있나요?”

 “어, 어떻게 희동약사님을 아세요?” 

 이현은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청년들은 이 마을을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거문마을을 지켜온 거문마을 약방의 약사 이름을 알고 있고, 이 마을에서 가장 사랑받던 이 집을 허물고 카페를 만들고 있다.'



'이 사람들은 분명, 이 작은 꽃 집 할머니의 아들이다.'




p.s 브런치 연재 소식을 모르고 올린 글 두편은 몽글몽글 카페 prologue 1,2이라는 소제목으로 저의 브런치 글에서 볼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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