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누 Nov 02. 2023

4. 첫 알바생은 야구부학생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4


 “아니, 우리야. 애들을 위해서 들어왔다 쳐. 그 젊은 사람들이 여기 카페를 열다니. 대단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특이하다니까.”


 이현과 라니엄마의 대화는 대부분 새로 지어지고 있는 카페와 두 청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근처에 자리한 가시리 바다가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외지고 작은 거문바다마을까지 사람들이 올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거문마을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바닷가에 비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이 거문 마을의 정취라고나 해야 할까. 그 흔한 카페하나 없는 바다마을. 하지만 거문바다에도 카페가 지어지고 있었다. 

 옛 기와집이 뜰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고 대문을 통과하면 바로 왼쪽으로 커다란 유리 통창의 카페가 있었다. 유리창으로 반짝이는 카페의 맞은편 쪽에 있던 낡은 창고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정사각형의 박스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졌다. 그 박스 같이 생긴 건물에도 카페와 같이 커다란 통창이 달렸고 통창 안으로는 동그랗고 네모진 탁자들이 드문 드문 놓여 있었다. 새로운 청년들에 대한 소문은  몽글몽글 카페가 지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퍼졌다. 처음에는 작은 꽃 집이 팔렸다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작은 꽃집 할머니가 유언으로 이 집을 카페로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와서 카페를 차렸다는 이야기까지. 실은 이 카페를 차린 두 청년이 도시에서 잘 나가던 사업이 실패해서 시골로 찾아 들어왔다는 ‘카더라’ 소문은 발도 없이 마을 곳곳에 퍼졌다. 소문보다는 느리지만 계절이 변하는 속도보다는 빠르게 카페는 완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카페 관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페 영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현과 재이였다. 첫 만남때 만화책을 언제든 봐도 된다는 청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재이는 매일매일 카페에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붙임성이 좋은 이현이라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카페에 갈 수는 없었다. 그럴 때는 카페에 가서 한동안 읽을 만화책을 몇 권 빌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 이상하게 마음이 근질거린 사람은 재이가 아니라 이현이었다.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놓고서 글을 쓰면 유독 글이 잘 써졌다. 이현은 게스트 하우스 홍보글을 쓰고 각종 sns에 올려놓는 일을 수시로 했다. 재이가 만화책에 빠지고 나면 이현은 비니총각이 내려주는 커피를 기다렸다가 창문 옆에 있는 탁자에 앉아 부지런히 노트북의 타자를 두드리곤 했다. 오늘도 느긋한 두 청년과는 달리 이현은 분주해 보였다. 팥죽색의 비니를 비스듬히 눌러쓴 채 커피를 내리는 예술가 포스의 기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시골에 저런 색의 비니를 쓰고 다니다니. 혼자 보기엔 아깝다.’ 

 이현의 눈길을 느꼈는지 예술가 총각이 이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뭐가 매일 그리 바빠요?"

 비니총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랐다. 

"씨앗을 뿌려야 추수할 수 있죠. 곧 비수기도 끝나고 손님들이 올 시기가 오거든요. 농부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듯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도 게스트가 없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거든요."

 기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책을 읽고 있던 재이가 거들었다. 

 "우리 엄마는 손님이 있으면 손님 많아서 바쁘고요, 손님 없으면 없어서 바빠요."

 재이 옆에서 같이 만화책을 읽던 고급진 외모의 청년, 수호가 재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거문마을에도 내리던 눈이 그치기 시작했고, 마른 가지에는 촉촉한 푸른 싹이 나기 시작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몽글몽글 카페도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현의 예상과는 달리, 아니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이 카페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입소문이라는 것이 무섭긴 했다. 게다가 요즘은 입소문도 아닌 사진 한 장이 퍼지면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기도 했다. 누가 올렸는지 모를 몽글몽글 카페의 정원과 그 앞에 펼쳐진 거문바다의 사진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적 없는 거문마을에까지 찾아왔다.

  카페에는 맛있는 커피와 더불어 잔잔한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다. 그 흔한 횟집 하나 없고, 모텔 하나 없는 바다 앞에 작은 마을이었던 거문마을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이현의 게스트 하우스도 예약 문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록색 잎사귀 위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봄바람이 몇 차례 더 불더니 연분홍의 꽃잎이 나왔다. 봄의 어느 날이었다. 재이는 카페의 정원에서 만화책을 읽고, 이현은 재이의 곁에서 연분홍의 겹벚꽃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이현이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짧은 머리를 한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학생이 서있었다. 

 "어머, 신동고?"

 신동고는 가시리 해변 근처에 있는 가장 큰 고등학교다. 그리고 그 고등학교의 검정 트레이닝복, 야구부의 것이었다. 신동고의 야구부는 꽤나 유명해서 서울에서도 학생들이 전학을 오곤 했다. 이현이 거문마을로 왔을 무렵 신동고의 감독이 한국 야구 국가대표 선수 출신 김동휘로 바뀌었다. 학창 시절 김동휘선수를 좇아서 야구를 보러 다닌 기억이 있는 이현으로서는 더없이 설레는 소식이었다. 

 

"어머 학생, 야구부야?"

 "네."

 "어머, 그럼 김동휘 선수도 알아?

 "감독님이신데요."

 "어머, 어머."

 "아세요?"

 "그럼, 내가... 그러니까... 내가 팬이야."

 "아... 네... 그럼 아줌마만 아는 거네요."

 '아무리 그래도 초면에 아줌마라니...'

 이현이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느라 입을 씰룩댔다. 그때 카페 안에서 비니를 쓴 예술가 청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이 학생."

 "네, 저요?"

 "들어올 건가요?"

 기훈이 얼음을 가드찬 얼음잔을 들고 유리창 카페 안에서 머리를 빼꼼히 냈다. 

 "거기 아줌마도요?"

 "어머 기훈사장님까지..."

 옅은 브라운색의 비니를 쓴 기훈의 얼굴에 짙은 장난기가 가득 서려있었다. 기훈의 이런 장난에 이현은 들어가려던 입을 다시 삐죽 내밀고선 이현의 옆에 선 야구부 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학생도 키가 꽤나 컸다. 하지만 키에 비해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여기 빵도 굽나요?"

 야구부학생이 이현에게 물었다. 

 "음. 아니? 하지만 간단히 먹을 스낵류는 있어. 예를 들어..."

 "아하 잘됐다."

 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구부 학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카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건 무슨 캐릭터 터지?'

 이현은 하루종일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방을 혼자 손보느라 커피 한잔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현이 겹벚꽃이 아직 피지 않은 나무를 뒤로 하고 성큼성큼 뛰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하얀 스웨터의 고급진 외모의 카페 주인, 수호는 베이지 색에 민트색이 들어간 스트라이프 티셔츠 차림으로 카페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뭐 하세요?"

 이현은 대뜸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매일 카페를 내 집같이 오다 보니 고급진 외모 덕에 놀랐던 첫인상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거문마을에서 고등학교까지 자란 그는 거문마을 토박이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너무 커서 온 그의 얼굴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게다가 거문마을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다. 돌아가신 분도 많았고, 그 자녀들은 대부분 거문마을을 떠났다. 거문마을을 지키던 사람들은 무덤으로 돌아갔고 몇 안되는 젊은 사람들도 이현과 라니엄마처럼 최근에 이사온 사람들이었다.

 "뭐 하긴요. 그냥 있어요."

 "뭔가 찾는 것 같은데요?"

 "아 재이가 바람의 검심 9권이 없다고 해서요. 그 책을 어제 제가 읽다가 잠들어서 여기 어디쯤에 놔둔 거 같아서요."

 "오, 바람의 검심. 재미나죠. 그걸 아직도 읽는다고요?"

 "요즘 얼마나 재미있는 웹툰이 많은데요. 웹소설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치킨 생각도 안 날걸요? 그 삼십 분이면 배달 오던 도시의 치킨이요."

 "저도 알아요."

 수호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해도 수호의 퉁명스러운 눈빛에는 퉁명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꽃집할머니 아들이 아니랄까 봐... ' 이현이 보기에도 그는 작은 꽃집 할머니를 많이 닮아 있었다. 

 "어이 학생."

 바에서 아이스를 가득 넣은 유리잔에 진한 에스프레소 두 잔을 연거푸 따라 붓던 기훈이 고개를 들고 학생을 불렀다. 

 "손님인 거 맞죠? 커피 못 마시면 주스도 있어요. 아니면 아이스크림도요."

 "야구부 학생이 나무로 만든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빵은 없나요?"

 "아하. 빵을 좋아하는구나. 빵은 없는데..."

 "그럼 제가 여기서 일해도 되나요? 빵 만들 수 있는데..."

 창가의 테이블에 한쌍의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몹시 피곤한지 나란히 창 밖을 보고 앉아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조용한 카페에 잔잔히 흐르는 재즈음악은 그들의 쉼을 부추기는 듯했다. 야구부학생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카페에 있는 두 손님을 제외한 모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바람의 검심 8권에 빠져있는 재이도 물론 제외였다.

 "빵을 구울 줄 알아요?"

 "네, 좋아하고 잘 구워요."

 "빵이야 있으면 좋지만, 여긴 베이킹할만한 공간도 없어. 그리고 학생은 학생이잖아?"

 "이제... 학교는 관둘 거예요."

 야구부 학생의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아니 말도 안 돼."

 기훈과 학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구부를 관둔다고? 안 돼. 김동휘 선수가 감독인, 서울에서도 전학 올 정도로 유명한 신동고 야구부를 관둔다고?"

 "그건 말도 안 돼." 

 "야구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거무잡잡한 학생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현은 왠지 학생의 몸에서 곧 연기가 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관두는 것과 빵을 굽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때 카페의 한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호가 말을 했다. 지구 온난화도 단숨에 끝 낼만큼의 냉철한 말투였다. 

 "저는 빵을 잘 만들어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일이에요. 돈 안 주셔도 돼요."

 "빵을 잘 만다는 다는 것은 보면 알겠지. 그런데 여긴 빵을 구울만한 곳이 없어."

 "집에 빵을 만들만한 기기들이 있어요. 가지고 올게요. 내일이요. 저기, 저기서 만들면 돼요." 

 "그래, 우리 카페가 뭐, 카페같이 안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돈을 받는 가게야. 손님들에게 집에서 만드는 것 같은 빵을 팔 수는 없어. 그냥 괜찮은 맛의 스낵을 사 오는 것이 나아."

 "이 스낵이요?" 

 야구부학생이 카운터 옆에 있는 길쭉한 과자가 담긴 투명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한눈에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과자는 아니었다. 

 "이런 건 우리 학교 앞 편의점에도 팔아요. 그리고 이런 건 시내에 널린 카페에서나 파는 거라고요. 여긴 좀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 왜 꼭 달라야 하지?" 

  수호는 어느새 카운터에 성큼 다가와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이 눈썹의 뼈 아래로 적절히 들어가 있었고 얼굴의 중앙을 잘 받쳐주고 있는 있는 정직한 콧날. 그리고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 그 위로 흘러내리는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처음 만난 날부터 수호의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웠다. 수호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또한 그 신비로움에 한 몫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또박또박 들리는 수호의 낮은 목소리가 카페 안에 퍼졌다.

 "왜 달라야 할까요?" 

 하지만 긴장되는 물음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야구부 학생이 말을 받아쳤다.

 '당돌한 녀석 같으니라고... 요즘 애들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이현에게 기훈이 커피를 재빨리 건넸다. 이현은 커피를 마시면서 야구부학생의 설명을 들었다. 아니 감상했다고 하는 말이 나을 것이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왜 빵을 구어야 하며 직접 구운 빵이 있는 카페에는 손님들이 더 많이 올 곳 것이라는 간단한 말을 길게도 설명했다. 커피 한잔을 다 마시는 동안 모두는 야구부학생의 긴 설명을 감상했고 그 감상이 끝날 무렵에 이현은 자신이 마시는 이 훌륭한 커피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갓 구운 빵이 없었다! 

 '이런, 이 야구부 학생이 나를 설득시켰어!'

 "하지만 우리는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아도 돼."

 수호가 말했다. 이현과 기훈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둘 다 실망한 얼굴이었다. 기훈도 이미 나처럼 설득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호의 얼굴은 달랐다. 냉정한 수호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야구부 학생은 말을 이었다.

 "손님 없는 카페는 관객 없는 야구장 같지 않나."

 "글쎄, 나는 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거든."

 이현은 귀를 의심했다. 수호는 가끔 냉정한 얼굴을 보이긴 했어도 첫인상부터가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와 정원을 살피고 있을 때에도 그는 짜증 나는 기색 없이 이현에게 친절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재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재이는 언제나 이곳에서 아무 대가 없이 책을 보고, 빌려가기까지 한다. 사실 아직 가지고 오지 않은 책도 꽤 있다. 매일같이 만화책이 꽂힌 책장을 정리하는 수호는 분명 만화책이 몇 권 비어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로 성가셔하지 않았다. 그러니 카페를 통해 돈을 버는 것에 욕심은 없을지 몰라도 그저 자신을 위해서 이 카페를 지었다는 생각은 뭔가가 맞지 않았다. 

 "그럼, 본인을 위해서라도 좋은 건 해야 하지 않나. 커피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순 뻥."

 야구부 학생의 말에 수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잘 뻗은 눈썹이 움찔거리더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날이 덩달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분홍색 도톰한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는 웃고 있었다. 크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명 웃음을 참다가 포기한 것이 분명했다. 기훈이 접시를 닦다 말고 수호를 보면서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야구부 학생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기훈이 가져다준 복숭아 맛 아이스티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훈과 수호는 서서히 웃음을 거두고 야구부 학생을 창가의 작은 테이블로 데려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바람이 꽤 부는 저녁 날씨였다. 길게 늘어 뜨린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다 재이의 얼굴에 닿자 재이는 말없이 이현의 좁은 등에 머리를 파묻었다. 자전거를 길에 세우고 이현은 긴 머리를 파란 체크무늬의 머리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가방에서 갈색 스웨터를 꺼내 재이에게 입혔다.

 "머리카락이 닿으면 말을 하지."

 "엄마 운전할 때 방해하면 안 되니까."

 꼭 맞는 스웨터를 껴입은 재이를 이현이 힘차게 안아주고는 다시 자전거에 앉았다. 핸들을 꼭 잡고 페달을 힘껏 밟기 시작했다. 거문바다에도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아직 해가지지 않은 거문바다에 노을이 퍼지기 시작했다. 진한 주황색의 노을이 저 바다 건너편을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현이 고개를 돌려 바다를 쳐 자 눈이 부셨다. 이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곧장 뻗은 집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엄마. 오늘 온 그 야구부 형은 카페에 왜 온 거야?"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지. 아마도?"

 "아마? 그럼 일을 못할 수도 있어요?"

 "엄마는 카페 사장님이 아니니까."

 "그런데 엄마도 카페 사장님 같아요."

 "응? 왜?"

 "기훈이 아저씨랑도 친하고 수호 아저씨랑도 친하잖아."

 재이가 두 손을 번쩍 들어 하늘로 만세를 불렀다. 

 "재이 눈에 엄마가 카페 사장님과 친해 보였구나. 하지만.... 엄마는..."

 재이가 계속해서 만세를 해대고 있었다. 노을로 물든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현은 말없이 페달을 더 세 개 밟았다. 

 "그럼 엄마는 누구와도 친하지."

 이현은 거문바다의 끝자락에 다 달아서야 페달 속도를 줄였다. 고개를 돌려 노을로 꽉 찬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 아름다움에 한동안 사로잡혀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거문바다. 엄마는 거문바다가 참 좋아." 

 "나도."

 집으로 달리는 동안 해가 그새 저물었다. 어둑어둑해진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바닷바람에 귀신처럼 풀어진 머리를 보고는 이현이 깜짝 놀랐다는 듯 우스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현을 본 재이도 덩달아 웃었다. 



 이현과 재이의 게스트 하우스 앞마당에도 벚꽃이 하얗게 피고 있었다. 재이가 어렸을 때 이현은 종종 그 겹벚꽃이 떨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주려고 돗자리를 펴놓고 정원에 앉아 오래도록 벚꽃 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봄이 오면 언제나 겹벚꽃 나무에 가서 키가 한 뼘 자란 재이를 바라보곤 했다. 이현은 나른한 봄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벚꽃 잎을 쳐다보게 되고, 그리고 그 벚꽃 잎 뒤로 두 모자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해사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날 작은 꽃집 할머니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3. 뭐지? 두 남자의 정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