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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Nov 05. 2023

5. 올해의 첫 손님이 하필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가방을 통째로 집어넣고 난 후 지퍼로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재이가 안장 위에 타려고 기다리다 말고 소리쳤다. 

"우와 비다. 우비를 챙겨서 가요. "

 이현은 내리는 비를 쳐다보았다. 

 "당장 그칠 비는 아니야."

  거문마을에 사는 동안 이현은 자연의 변화에 아주 예민해졌다. 이현이 경험한 바로는 자연은 언제나 예고를 했고, 그리고 그 예고는 이제까지의 패턴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몇 번 당해보면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쫙쫙 시원하게 쏟아 내리듯 내리는 장대비는 늦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자전거를 게스트 하우스 현관 처마 밑에 세운 후 재이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둘은 말없이 비가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비가 계속 올 것 같아. 들어가자."

 "에잇." 

 실망한 재이가 먼저 집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 후, 이현은 홀로 자전거 안에 있는 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끼익.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현은 대문을 활짝 열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며칠은 못 잔 듯 퀭한 얼굴이지만 꽤나 앳된 보였다. 그녀는 덩치에 안 맞게 큰 트렁크를 끌고 처마 밑으로 있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현은 그녀가 우산도 없이 비를 쫄딱 맞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녀의 좁은 어깨에 맨 가방이 꽤나 버거워 보였다. 허리춤까지 오는 커다란 트렁크를 질질 끌고 오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은 기이해 보였다. 흠뻑 젖어버린 빨간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청바지아래로 뚝뚝 흐르는 물들이 마치 자연의 한 풍경 같았다. 이현의 눈에 비친 그녀는 마치 비에 흠뻑 젖어서 흐느적거리는 나무 같았다.



 "아, 여기 우산 드릴게요."

 "됐어요. 다 왔는걸요."

 "아, 죄송해요."

 젖은 나무 같은 그녀가 이현의 코 앞까지 걸어올 때까지도 이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니에요, 제가 우산이 없었잖아요. 그리고요... 거기도 다 젖었어요."

 이현은 등을 돌려 ‘거기’를 향해 보았다. ‘거기’는 바로 이현을 말한 것이었다. 이현은고개를 돌리다가 ‘아차’했다. 

 “아, 저 말이에요.”

 손님은 이현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 듯 질문을 했다.

 “혹시 저 말고도 다른 손님이 있나요?”

 “어....”

 "지금은 없어요."

  이현은 조금 망설이다 대답하곤 멋쩍은 듯 덧붙였다.

 “원래는 많아요. 그런데 손님 오시는 날짜에는 다행히 예약이 많이 없네요.”

 “아... 다행이에요.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아, 사람이 많이 있는 게 조금 피곤해서... 요즘은요.”



 '요즘 이상한 손님도 많다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것도 찜찜해...' 

 이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여자손님은 얼른 숙소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내 표정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가. 그녀는 일단 몸을 눕힐 곳이 필요한지 몰라. 그래 그녀는 사실 해외 입양되어 왔는데 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며칠간을 울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결혼을 한다던지... 아니지... 너무 진부한 시나리인가? 모든 게 왜 남녀 간의 로맨스야. 그녀는 나랑은 다를지도 모르지..."

 "재이야."

 이현이 이름을 부르니 재이가 거실에서 고개를 빼꼼히 들어 이현과 새로운 손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님이 오면 재이는 조용해졌다. 이현에게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이현은 손님을 응대하다가도 늘 재이가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이 많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네요.”

 이현의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해서 내부를 확인한 후에도 이렇게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손님은 드물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전 주인은 건축가이자 예술가 부부였다. 이현이 처음에 이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을 때 부부는 이 집을 팔고 도시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현은 그 말을 듣고 이 집을 어떻게든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이 이현의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집을 사랑한 사람은 이현뿐만이 아니었다. 이현이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후 어떠한 손님도 이 집의 내부에 대해 불평한 사람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1층 거실은 마치 유럽의 어느 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높은 층고, 거실 한쪽을 꽉 채운 책장, 그리고 엔틱가구들, 특히 커다란 빨간색과 갈색 체크무늬의 테이블보가 가지런히 덮인 짙은 색 나무 식탁은 이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집주인이던 건축가와 예술가 부부가 이현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넘겼을 때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2층의 아내의 방을 그대로 보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외 나머지 방들은 다 알아서 바꿔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1층에 방은 게스트 룸으로 바꾸었다. 아무래도 부엌과 거실이 가까우니 손님들은 1층 방을 편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 손님은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현과 재이가 쓰는 방은 자연히 가장 높은 3층으로 배정되었다. 물론 비수기에는 모든 방을 다 쓸 수 있지만 청소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닫아두고 1층에 방은 재이를 위해 열어두었다. 오늘 묵는 손님은 2층으로 배정할 예정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2층이 조금 더 조용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빨간 머리 앤이 썼던 방이 이렇게 생겼지 않을까.' 

 부부가 이현에게 꼭 처음처럼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던 2층 아내의 방은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이 방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이현은 한 소녀를 떠올렸다. 초록 지붕아래 양갈래로 곱게 딴 살던 빨간 머리의 소녀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떡갈나무 침대에 푹신푹신한 침대 매트, 바람에 살랑거리는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순백색 침대 스프레드, 마치 눈밭 같이 하얀 침대 위에 J라는 이니셜이 배게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길게 뻗은 투명한 창문에 거문마을이 비쳤다. 긴 창으로는 산과 개울이, 침대 맞은 편으로 난 큰 창은 거문마을의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가 보이는 큰 창문 아래에는 나무의 나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오래된 조그마한 둥근 탁자가 있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하얀 종이와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벽 쪽으로는 섬세한 나무 장식이 들어간 옷장과 서랍장이 놓여있었다. 

 '빨간 머리 앤이 쓰기엔 너무 고급스럽나?'

 하지만 이현이 처음에 앤을 떠올렸던 것처럼 많은 손님들도 그랬다. 

 "마치 앤이 튀어나올 것 같네요!"

 이 방에 들어오면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처럼 놀라와했다. 이현은 슬슬 손님들의 각양각색의 감탄사를 즐길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엔 어떤 말을 할까.' 

 호스트인 이현으로서는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 손님은 달랐다. 거실로 들어왔을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덤덤한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이다.

 “좋네요.”

 “아, 네... 그럼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세요. 전 요 밑에 거의 있고요, 제가 없으면 전화 주시면 돼요. 주로 카페에 가 있거든요.”

 “카페도 하세요?”

 “아, 아니에요. 요 근처 카페에 가곤 해요. 아이가 거기 만화책을 좋아해서요.”

 이현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말까지 하고 난 걸 알고 괜히 머쓱해했다. 예전에 누군가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정신으로 엄마들은 애 보내놓고 매일 카페 와서 죽치고 있는 거야. 대체.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던지, 아니면 집이나 정리를 하지 말이야.'

 이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귓속에 맴돌았다. 이현은 얼른 좌우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럼 좋은 여행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가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현은 친절한 웃음을 남발하며 계단을 총총거리며 내려왔다. 계단 옆으로 난 자그마한 창 밖으로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재이는 커다란 창가 앞에서 로봇 장난감을 들고서 세상을 구출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현은 재이가 잘 놀고 있는지 곁눈질로 확인하며 재빨리 부엌 수납장에서 고형카레를 꺼냈다. 



 "음, 이거면 충분해."

 저번에 요리하고 남은 고형카레가 몇 조각 남아 있었다. 알이 굵은 흙투성이 감자를 창고에서 꺼내 차가운 물에 빡빡 씻었다.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고 카레도 껍질을 얇게 깎아내었다. 넓은 나무도마에  맨몸이 된 야채들을 올리고 하나씩 하나씩 칼로 조각을 내기 시작했다. 아까 흠뻑 젖은 얼굴의 손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손이 핏기 없이 새파란 것도 모자라 보랏빛 건조한 입술도 경미하게 떨렸다. 많이 추워 보였다. 이현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현은 손님에게 묻지 않고 늘 음식을 만들어 놓곤 했다. 이런 나에게 라니 엄마는 늘 말했다. 

 "아니 밥 해주는 것까진 좋아. 그런데 밥을 먹을지 말지는 물어보고 만드는 게 그게 어려워?"

 "아니, 그건 안 어렵지. 묻는 건 쉽지만 대답하는 건 어려울지 모르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쉽게 이야기하라고."

 "아니, 여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일정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라니엄마에게는 그렇데 둘러댔지만 사실 이현에게 요리는 그냥 습관 같은 것이었다. 여분으로 음식을 충분히 만들어 두면 왠지 든든해졌다. 본인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일인데 손님들은 그것도 모르고 매우 후한 점수를 주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음식을 준비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못 먹고 나가서 너무 죄송했지만...'

 '시골이라 뭐 사러 나가기 힘든 점은 단점이지만 대신 주인아주머니께서 매일 음식을 해주시니 걱정 없음'


 이런 후기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서비스 체질은 아니지만, 사부작사부작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이현은 그런 후기를 보면서 지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한다는 것은 꽤나 큰 감동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익숙해지면 감동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곤 한다. 그녀는 양파를 써느라 흐르는 눈물을 소매춤으로 닦아냈다. 

 '그런데 2층의 수상한 여자 손님도 카레를 좋아할까?' 

 '그녀의 얼굴은 꽤 지쳐있었어. 지금 그녀는 감자와 양파, 당근이 가득 든 따뜻하고 묵직한 소고기 카레에 거품이 풍부한 차가운 맥주 한잔이 필요해. 거문마을의 첫 저녁식사가 그녀의 기운을 북돋을 거야'



 그 순간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위층 손님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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