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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Nov 30. 2023

8. 내가 여기 온 건 비밀로 해줘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니 탁 트인 해안도로가 나왔다. 자전거 길은 없었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해안도로를 조금 가다가 보면 샛길로 빠져서 정말로 바다 옆 길이 나 있었다. 바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쭉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더 빨리 달리고 싶었다. 해안은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이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를 타며 흘긋흘긋 본 바다에는 은빛 물결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다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도, 사람도, 무리지은 갈매기들이 종종 보였다.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며 우는 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졌다. 비가 오고 난 다음이라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지만 앞선 이현의 머리카락도 해안의 머리카락도 바람결에 길게 늘어뜨렸다. 해안의 머리칼을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어제는 머리를 묶고 있어서 이현도 몰랐을 뿐 그녀의 머리는 꽤나 짧은 단발머리였다. 앞선 이현은 생각했다. 



 '여하튼 손님 얼굴이 어제보다는 생기 있어 보여. 좋아.'


 이현을 따라가며 해안은 주인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어제저녁도 그렇고. 난 사실 사람이 싫어서 왔다. 

 그런데 지금 난 또 어딜 가는 거지?


 "잠깐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해안은 이현을 멈춰 세웠다. 


 "네? 불렀어요"


 앞서가던 이현이 자전거 브레이크를 밟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고요? 여긴 카페하나 없다고 들었는데."


"아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원래는 당연히 없었죠. 이런 시골에 카페가 있었겠어요?"



 머뭇거리는 해안의 얼굴은 어제 처음 그녀에게 방을 소개할 때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현은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고 얼른 말을 지어냈다.



 "여긴 조용해요. 아무도 없어요. 나도 책만 보러 가요."


 이현은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해안의 뒤편에 펼쳐진 거문리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정말 예쁘다고요. 커피맛도 죽여요."


 해안은 마지못해 자전거에 올랐다. 


 '거봐. 난 이렇지. 난 거절하나를 못해서 이지경까지 된 거야.'

 

속으로 그녀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여기까지 자신을 이끌고 온 주인의 성의에 마지못해 왔지. 그뿐이야.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얼른 돌아오면 돼.'


 실은 그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을 보는 그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아직 없었다. 교실의 학생도,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회의실에서 마주한 그 많은 학부모들도, 병원에 환자들도, 카페에 사람들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해안은 거문바닷가를 달리며 경치가 아닌 자신이 그간 마주쳤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현이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낮은 돌담 옆에 세워두었다. 해안도 이현을 따라 자전거를 나란히 세웠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 곳에나 놓아도 괜찮을 법했다.. 하지만 해안은 줄을 맞추어 자전거를 세웠다. 



 "여기예요."







 자전거를 세운 낮은 돌담 안에 시골집 풍경의 카페가 보였다. 돌담 앞에는 몽글몽글 카페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대문 안에는 정면에 보이는 집 양쪽으로 통유리창으로 된 통자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왼쪽 건물로 들어서자 두 남자가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키가 큰 남자와 보통 체격의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키가 큰 남자가 꽤나 잘 생긴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체격의 남자는 진파랑색 비니를 쓰고 있었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보통 체격의 남자가 사장님이고 키가 큰 저 남자는 직원이겠지. 이렇게 왜진 시골마을에 카페라니. 저 사람들은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어. 굿모닝."


 "굿모닝, 사장님들."


 뒤따라 들어오는 해안을 보고 두 사람은 동시에 이야기를 했다.


 "아직 영업시간이.."


 "아 제 손님이에요. 미안해요. 영업시간 전에 와서. 그냥 동네 구경해 줄 겸 왔어요. 커피 있으면 한잔 마시고 가려고요."


 "아하. 어서 오세요. 커피 냄새가 그대들을 불렀나 보네요."



 기훈이 웃으며 말했다. 기훈이 볶아내고 블랜딩 한 몽글몽글 커피 향이 카페 안에 가득했다. 

 문가에 머뭇거리고 있는 해안을 보고 수호가 말했다. 기훈은 이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의 커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우리도 커피 한잔 마시고 시작하려고 했어요."


 기훈이 직접 블랜딩 한 원두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었다.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두 잔을 뽑아냈다. 

 

 "자 컵은 각자 골라오세요."


 "음 여긴 특이하게 컵을 각자 골라요. 깨지만 말아요."

 


 바 옆으로 놓인 그릇장 안에 각양각색의 컵들을 가리키며 해안이 말했다. 이현과 해안은 각자 골라온 컵 안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따라 붓고 또 에스프레소 두 잔을 뽑아 또 다른 컵 두 개안에 넣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이 쭉 흘러나왔다. 



 "몰라요? 기훈 씨. 나는 나는 차가운..."


 "알죠, 알죠. 아이스! 아주 차갑게. 여기 새로운 친구는요?"


  "저도 같은..."


  "아하! 아침부터 열불 나는 일들이 많은가 봐요?"



 기훈의 너스레에 해안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다시 웃음기를 빼려고 입을 오물거렸다. 해안이 아무런 대답도 없자 멋쩍은 듯 기훈이 대답했다.

 


 "아, 그럼 뜨거운 커피는 나뿐이네."



 기훈은 컵 안에 얼음을 잔뜩 넣은 세 컵을 바 앞에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수호가 두 잔을 들어 이현이 앉은 탁자 위에 컵을 놓았다. 



 "우와! 향이며 색깔이며 완벽해요. 그냥 맛있는 커피네요."



 해안이 보기에도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정말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커피잔 안에 있는 커피를 이리저리 관찰하더니 다시 내려놓고 90도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커피님. 오늘도 저를 영접해 주셔서.





 그녀의 엉뚱한 모습에 나만 빼고 모두 웃음이 터졌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다 끝날 무렵에야 이현은 고개를 들고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씩 웃을 뿐이었다. 이현은 그런 해안의 얼굴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키가 크고 콧날이 날카로운 남자는 창 밖을 보면서 벽에 기대어 커피를 마셨고 다른 세명은 모두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완벽하게 고요한 아침이었다. 카페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거문바다의 잔잔한 파도가 찰싹찰싹 소리가 간혹 들릴 뿐이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게다가 봄이었다. 이른 봄비가 내려서 잎이 하루 만에 더 풍성해지고 벚꽃이며 다른 꽃들도 개화 직전이었다. 이미 개화한 꽃도 있었다. 어제는 모든 것이 뿌옇고 흐렸다.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선명하고 맑았다. 네 사람은 모두 어제의 날씨 이야기부터 오늘 핀 꽃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안은 어느새 곧추세운 허리에 힘을 빼고 의자의 쿠션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 책장 쪽으로 걸어갔다. 주로 만화책들이었다. 해안이 몇 권을 꺼내어 펼쳤다가 다시 집어놓기를 반복하는 걸 바라보던 수호가 넌지시 말했다. 




 "가지고 가서 보고 주세요. 아니면 뭐 여기서 봐도 돼요. 만화책은 저 안에 더 많아요."


 "아... 만화 가세요?"


 "아니요! 만화가는 기훈이죠. 저기 저 친구가 만화를 잘 그려요. 그림도. 커피도 만들고요."


 "그럼 사장님은 뭘 하세요?"


 "사장님은 원래 놀죠."



 앉아서 커피잔에 코를 박고 있던 이현이 고개를 들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분이 이 집주인이에요. 음. 이 집주인의 아들이죠. 엄밀히 말하면. 그러니까 자신이 살던 집에 와서 카페를 만들었다 거죠. 어때요? 해안 씨? 멋지죠?"



 "그러네요. 멋져요."



 해안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 카페에 들어왔을 때부터 어쩐지 이 집의 모든 곳이 누군가의 손길이 오래도록 닿아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길쭉한 물체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야구부 청년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정식으로 빵을... 어! 선생님."


 한주는 해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맞아요?"



 한주는 자신보다 깜짝 놀라는 해안을 보고도 재차 물었다. 이현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한주에게 눈짓으로 그만하라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한주는 이현의 사인을 읽지도 보지도 못했다. 



 "선생님하고 똑같이 생기신 분인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그제야 해안이 또박또박 한 글자마다 힘을 주어 말을 했다.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만화책을 내려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체 천천히 걸어서 카페를 빠져나갔다. 



 "내가 여기에 온건 비밀로 해줘, 한주야."



 해안은 말을 하면서도 한주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이현을 바라보았다. 



 "저는 먼저 가볼게요. 동네 구경도 하고요. 여기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이제 제가 알아서 다닐게요."



 알 수 없는 표정이지만 확실한 건 그녀의 기분이 아주 나빠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해안의 얼굴에는 간혹씩 비추던 웃음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정원을 통과해서 곧장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모두 다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조용히 재빨리 움직여서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나갔다. 



 놀란 한주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고 차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거나 말을 덧붙일 용기는 없어 보였다. 그건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현은 이 상황에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쌀쌀맞고 엉뚱한 사람은 나의 손님이고, 내가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니 내가....'



 앉아 있던 탁자를 밀어내며 재빨리 일어서는 이현에게 손님이 말했다. 



 "제가 알아서 갈게요, 혼자서. 더 이상 저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이현은 엉거주춤하게 선채로 손님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미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무렵에야 이현도 따라갈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더 이상 김이 나지 않는 자신의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너무 식은 탓인지 아까 그 황홀한 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가 않았다. 카페 안에 있는 모두가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현이 데리고 온 젊고 힘없어 보이는 한 여자손님이 한 고등학생을 우연히 만나자 얼음장같이 차가워져서는 그 길로 모두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짧은 단발머리의 그녀가 모두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카페 안에 남은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한주에게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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