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해안의 이야기)
곧장 해안은 게스트하우스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다.
'제길.'
빨리 나오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탄 자전거가 아닌 그 고물 자전거를 집어 들어 탔더니 삐익 삐익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심해져서 결국 페달을 천천히 밟아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아까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했다. 길을 찾는 건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왔던 길이잖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일이 뭐가 어려워.’
그녀는 특이한 게스트하우스 여자 주인이 앞서 갈 때 충분히 길을 봐두었다고 생각했다.
여기 이 낡은 고물 자전거도 그 정도 길은 찾아갈 수 있을 거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 그녀는 생각했다. 거문리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다가 잠시 자전거에 내려서 바다 위에 누웠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쳤다. 이런 날들을 보낸 게 얼마만이지. 그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는 학교가 문을 닫는 방학에는 틀어박혀 공부를 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빌리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혼자 어딘가를 떠나본 적도 떠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루는 늘 모자랐고 할 일은 다음날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일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오늘도 아무 할 일이 없고 내일도 아무 할 일이 없는 날들을 꿈꿔본 적도 없다. 어렸을 때 아빠는 종종 이야기했다.
"학교 선생님만큼 좋은 직업은 없어. 그치?"
해안이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은 해안의 뺨을 때렸다. 자신이 조례시간에 책을 보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 일을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 정도 일로 선생님에게 항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해안도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학을 가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사를 해야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아빠가 평생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일할 제철소를 떠날 수는 없었다. 혼자 앉아 책을 읽곤 하던 교실에도 더는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혼자 검정고시를 쳐볼까 생각도 했지만 매일 작업복을 입고 제철소로 향하는 아빠의 얼굴에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매일같이 아빠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도시락을 싸고 아빠를 보내고 내 아침을 준비해서 먹이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해안이가 대학 가고 아빠보고 밥은 이제 직장 가서 사 먹으라고 할 거야. 이놈의 도시락."
"아니 아빠가 싸달라고 했어? 지금부터 사 먹으라고 하면 안 돼?"
엄마는 아빠를 보내고 동네 김밥집 일을 도왔다. 아는 동생을 도와준다고 말하면서 매 월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 집 형편은 다 같이 매일매일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나아지는 날이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한 거라고 말하는 아빠의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했다.'
해안도 그렇게 믿었다. 행복은 믿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니까. 나는 행복하다고 믿어야 했다.
해안의 유일한 취미는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마을의 유일한 도서관에 갈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칸이 막힌 자리를 차지하려면 새벽에 서둘러야 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들어가서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나야 마음 편하게 잠이 들었다. 한잠 자고 나면 해안은 그날의 위안이 되는 소설 하나를 가지고 왔다. 너무 재미있어서는 안 돼. 적당히 안 졸릴 정도로만 재미있으면 돼. 소설을 읽으면서 해안은 하루의 피곤함을 풀어내면서 동시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좁은 도서관 한 자리, 언제나 만원인 버스,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부엌 옆의 좁은 내방, 변화라곤 없는 구석진 마을 한켠의 집에서도 소설이 있으면 걱정이 없었다. 하루에 한 권씩 소설을 읽는 재미로 도서관에 가다 보니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사서 언니와 친해졌는데 그 언니가 하루는 해안에게 자신이 하는 일은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날 이후로 해안은 시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며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꿈을 꿨다.
상상만 해도 멋진 삶이다.
그런 삶을 그리면서 해안은 시골길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해안의 아버지는 해안이 국어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다. 선생님은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내 딸은 선생님이야.라는 그 말은 일종의 아빠의 오랜 꿈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은 그런 의미를 지닌 듯했다.
내 딸은 바르게 자랐고 공부를 꽤나 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누구나 존경할 수 있고 사회에 보탬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없지. 부자는 아니지만 나처럼 가난에 허덕이지는 않을 거야. 남편도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교사인 여자를 마다할 집안도 남자도 없지. 내 딸의 삶은 찬란하게 빛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아주 무난할 거야. 무난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
해안의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 어린 해안은 생각했다. 그녀는 그럭저럭 공부를 잘했고 이름 있는 대학의 국문과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중에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해안의 결심은 단단했다. 자신은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해안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해안의 첫 남자친구 진우는 해안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왜 되고 싶어? 지루하기만 한 직업이지. 너는 선생님이 좋았어?"
" 글쎄. 그다지... 뭐 좋은 선생님도 있었어. 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나 넘어졌다고 우리 집에 전화를 해준 선생님도 있었어. 나는 그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학교에 가고 싶었으니까."
"멋진 선생님이네. 그런 선생님이 있었네?"
"그런데 아닌 선생님도 있지. 고등학교에 선생님이 그 극단적인 예야. 그 선생님이 나를 본보기로 아이들 앞에서 때렸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거든."
" 뭐야. 그 새끼. 내가 잡아서..."
"됐어. 지난 일이야. 나에게 아무 의미 없어."
해안은 자신을 위해 불같이 화를 내던 남자친구와 결국엔 헤어졌다. 모두가 헤어지는 그런 평범한 이유였다. 해안은 그 이후로 임용고시에 매진했지만 번번이 시험에서 떨어졌다. 결국 해안은 취업시기를 놓치고 말았고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취업을 했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해안은 기간제로 시작한 학교생활이 생각 외로 잘 맞았다.
이게 행복인 걸까?
해안은 교단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해안은 교단 위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 행복했다. 다행히 해안을 따르는 학생도 많았다. 특히 해안이 맡은 작가와 독자라는 동아리는 늘 서로 가입하겠다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시간이나 때우다가 종이 치자마자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동아리 시간이 아니었다. 해안은 그 시간을 위해 전날 밤을 새워서 책을 읽고 생각할 거리들을 정리해 두었다. 그날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두고 이야기하려고 두꺼운 벽돌책의 사이사이에 갈피를 여러 장 꽂아두었다. 벽돌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은 학생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남학생이 그 여학생에 반해서는 따라 내렸었다. 다행히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지는 않는다. 가끔씩 자리가 났는데 오늘은 자리가 없었다. 책을 꼈던 겨드랑이에서 책을 꺼내 왼쪽 손으로 들고 오른손은 버스에 달린 동그란 손잡이를 잡으려고 팔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규진이었다.